[청사초롱] 소아암 병동의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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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근무하는 곳은 소아암 병동이다.
암으로 치료받는 아이들에게도 크리스마스는 소중한 연례행사다.
소아암이라는 큰 어둠 앞에서 이 아이는 항암치료와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견뎌내야 한다.
"그럼, 우리 이틀만 집에 갔다가 크리스마스 다음 날 다시 입원할까? 그 대신 씩씩하게 치료 잘 받아야 해." "네!" 아이는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선물을 한가득 안고, 또 그만큼의 희망과 용기를 안고 병원으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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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근무하는 곳은 소아암 병동이다. 암으로 치료받는 아이들에게도 크리스마스는 소중한 연례행사다. 어제 회진을 도는데 여섯 살 꼬마 환자가 진지한 표정으로 묻는다. “교수님, 크리스마스 전에 퇴원할 수 있어요?” 달력을 보면서 계산해 보니 쉽지 않아 보인다. 남은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마치려면 족히 한 달은 더 걸릴 것 같다. “크리스마스 때 왜 집에 가고 싶어?” “산타 할아버지는 병원에 못 오시잖아요” “크리스마스 때 병원에 있으면 선물도 많이 주는데?” 아이의 표정이 슬프게 변한다. “산타 할아버지한테 받고 싶은 선물 소원 빌었는데….” 아이의 눈망울이 진심이다. 이걸 어떡하나.
크리스마스는 아이들에게는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나눠주는 날이고, 연인들에게는 데이트를 위한 날, 아빠에게는 케이크를 사 들고 집에 들어가야 하는 날이다. 요즘 국내의 크리스마스는 터무니없는 가격의 호텔 케이크와 고가의 세트 메뉴만 판매하는 레스토랑의 상술로 상업화돼 있지만 다들 아는 것처럼 크리스마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이다. 엄밀히 말하면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예수의 생일이 언제인지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가 12월 25일이 된 이유에 대해서는 몇 가지 유래가 전해진다. 그중 하나가 고대인들이 태양의 탄생을 기념하던 동지 축제에서 기원한다는 설이다. 대략 12월 20일 무렵인 동지는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시기다. 1년 중 가장 어두운 날이지만, 동지 바로 다음 날부터는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므로 희망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다. 북유럽에서는 동지에 해가 뜨는 시간이 겨우 3~4시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정말 태양이 죽었다가 부활하는 느낌이 들 법도 하다. 이런 이유로 고대인들은 동지를 태양이 다시 탄생하는 날로 생각해서 큰 축제로 기념했다고 한다. 로마에서 기독교가 국교로 정해지면서 동지 축제가 크리스마스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사실 복음서에서 예수가 태어날 때 양치기들이 밤에 양을 지키는 모습이나 아기 예수를 포대기에 싸서 말구유에 눕히는 장면들을 근거로 생각하면 예수가 태어난 시기가 겨울은 아니었으리라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요한복음 12장에서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라고 선포하시는 모습을 보면 어둠을 뚫고 이 땅에 오신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동지도 적절한 시기인 것 같다. 예수의 탄생일을 역사적, 문헌적으로 추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지만 정확한 날짜를 잡아내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가 태어난 날은 이미 2023년 전이고 그날 이후로 이미 70만 번 이상 해가 뜨고 졌다. 그날이 매년 다시 돌아온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냥 인간이 만들어낸 의미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예수가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의미를 기억하고 되새기는 것이다.
다시 아이의 눈을 바라본다. 눈물이 글썽인다. 이 아이에게 크리스마스는 어떤 의미일까. 아이에게 크리스마스는 마음속 꼭꼭 담아둔 소망을 이루는 날이다. 소아암이라는 큰 어둠 앞에서 이 아이는 항암치료와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견뎌내야 한다. 아이는 빛으로 오신 예수께서 전해준 커다란 희망과 용기로 이 어둠을 이겨낼 것이다. 소아과 의사라면 이 지점에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그럼, 우리 이틀만 집에 갔다가 크리스마스 다음 날 다시 입원할까? 그 대신 씩씩하게 치료 잘 받아야 해.” “네!” 아이는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선물을 한가득 안고, 또 그만큼의 희망과 용기를 안고 병원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어둠이 물러나고, 다시 해가 뜨기 시작할 것이다.
고경남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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