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세상엔 장애 없어”… 장애·비장애인 편견의 벽 허물고 힐링

유경진 2023. 12. 13.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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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쯤은 만나야 틈이 생깁니다’ 부산 북콘서트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12일 부산 동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북콘서트에 참석해 토크 진행자와 소통하고 있다. 정 목사 제공


12일 부산 동구의 한 카페에서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하는 북콘서트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하나부터 열까지 장애인을 위한 맞춤 이벤트로 진행됐다.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과 시각장애인, 비장애인 45명의 참석자들은 이날 만큼은 장애인을 위해 마련된 공간에서 삶의 이유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장애인·비장애인 작가는 서로의 존재에 대해 이해하고 대화하면서 편견이라는 벽을 부수고 화합과 상생의 길을 모색했다.

장애인·비장애인, 소통의 장

이날 소개된 책은 각기 다른 장애와 삶의 아픔을 지닌 저자 세 명이 공저한 ‘열 번쯤은 만나야 틈이 생깁니다’였다. 홍성훈 목사는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지체장애를 갖고 있다. 시각장애인인 박송아 전도사는 어릴 때 앓은 ‘ABO식 혈액형 부적합’으로 혈액 90% 이상을 빼내고 새로운 피로 수혈 받는 교환수혈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부작용으로 시신경이 손상돼 오른쪽 눈은 실명했다. 그는 오른쪽 눈으로는 희미하게 빛과 색깔만을 감지할 수 있다. 또 다른 저자 소재웅 목사는 장애인은 아니지만 자살 유가족으로 삶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이들이 북콘서트를 마련한 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원활한 소통을 바랐기 때문이었다.

AL미니스트리가 지난달 지저스커피트럭선교회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시각장애인 전도 사역을 하는 모습. 정 목사 제공


저자들은 북콘서트를 준비하면서 부산 흰여울교회에서 시각장애인 목회를 하는 정민교 목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정 목사는 목회뿐 아니라 AL미니스트리를 통해 국내 최초 시각장애인 전용 기독교 전자도서관인 ‘AL소리도서관’도 운영하고 있다. 이번 북콘서트는 정 목사와 위드애인 유한영 목사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소 목사는 이날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대화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북콘서트를 준비했다”며 “이 자리를 통해 장애인이 위로를 받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북콘서트 기획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겸손하게 우리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삶으로 보여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이 책이 장애를 가진 분들의 어려운 일상 중 극히 일부분이라도 대변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첼로 연주와 낭독을 맡은 박 전도사는 장애를 떠나 사람으로서 대화를 나누는 장이 사라지는 현상에 대한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그는 “장애 유무를 떠나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서 대화를 할 수 있는 장소나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며 “서로 편히 만나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나가고 싶었다”고 했다.

‘하늘의 별따기’ 친 장애인 공간
정 목사와 교인들이 지난 3월 주일 예배를 마친 뒤 교제를 나누는 모습. 정 목사 제공

준비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장소 선정부터 높은 벽이었다. 장애인이 편히 오고 내부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친 장애인’ 공간을 찾는 게 쉽지 않아서였다.

다양한 장애가 있는 이들이 대중교통으로 찾아오기 편한 곳이어야 했고 장애인 화장실도 있어야 했다. 승강기나 경사로 등 장애인 편의시설도 필요했다. 하지만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공간을 찾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교회와 카페 등 수십 군데 문의를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 같이 준비팀의 힘을 빠지게 했다.

정 목사는 “정작 장애인이 맘 편히 모일 공간이 여의치 않아 준비하면서 마음이 무거웠다”면서 “이게 우리 사회의 현실인가 생각하니 답답했다”고 했다.

이날 북콘서트에 온 장애인 중에는 휠체어를 사용해야 하는 지체 장애인 비율이 높았다. 이들은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다가도 때때로 표정에 그늘이 지기도 했다. 시각장애인들도 시종 귀기울이면서 북콘서트에 빠져들었다. 행사장에는 시종 공감과 위로, 사랑이 가득했다.

박 전도사는 “장애인은 항상 도움만 받는 존재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시도”라며 “장애인도 베풀고 나눌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음악과 책을 통해 알리고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됐길 바란다”고 밝혔다.

정민교(앞줄 오른쪽) 목사가 지난 7월 부산 흰여울교회에서 열린 ‘AL소리도서관 개관 기념예식’에서 교인들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정 목사 제공


정 목사는 책은 장애가 없는 가장 평등한 매개체라고 했다. “책은 장애인이 누릴 수 있는 유일하면서도 지속가능한 콘텐츠”라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접촉점을 늘려가고 시각장애인도 점자로 번역된 책을 손끝으로 읽으며 보이지 않는 차이를 좁혀나가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AL소리도서관을 통해 장애가 있는 성도와 목회자의 신앙교육 및 목회 지원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장애인용 기독서적을 제작해 무료로 보급하고 있다. 시각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을 통해 사회 통합을 앞당기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믿음 안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가 허물어져야 한다는 것이 정 목사가 강조하는 바다.

그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서도 더 많이 출판된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라며 “책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연결해주는 다리와 같다. 앞으로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가 허물어져 모두가 평등을 누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새로운 목표”라고 밝혔다.

유경진 기자 yk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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