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칼럼] 거꾸로 가는 대한민국의 정책들
최근 우리나라는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의 부산 유치에 실패했다. 소위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가 아니라 그냥 초장에 끝난 완패였다. 애석하고 안타깝다. 큰 기대를 걸었을 부산 시민들은 물론 일반 국민에게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국민의 아쉬움과 불만이 조금 누그러지긴 했으리라. 그러나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국민을 납득시키기에는 미치지 못한 듯하다. 국제정세를 조금이라도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애초부터 게임이 되지 않으리라는 건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일을 기약하는 우리의 원조·협력 약속이 당장 오늘 사우디가 내보이는 빵빵한 ‘오일머니’의 힘을 이길 수 없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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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력 부재 드러낸 엑스포 실패
정부와 한국은행의 정책 엇박자
금리 인상의 적절한 시점도 놓쳐
윤 정부의 ‘시장 존중’ 선언 무색
」
이번 엑스포 ‘작전’은 우리나라의 정보력과 외교력 부족을 만천하에 드러낸 부끄러운 사건이었다.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누가 대통령과 국민에게 허황한 꿈을 키워주었는지, 또 누가 사우디에 이길 확률이 49:51까지 근접했다면서 대통령과 국민을 거의 막판까지 오도했는지 밝혀야 한다. ‘하면 된다’는 도전정신은 우리나라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이제 어엿한 경제 대국이다. 도전정신의 오·남용을 이참에 정리하고 국제사회에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경제학도로서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부산엑스포의 비용과 편익이 과연 정확히 계산된 것이었는지, 지난 여름의 새만금 잼버리 대회처럼 ‘내실 있는 행사’ 보다는 ‘잿밥’에 주된 관심을 가진 대회 유치로 흐른 것은 아니었는지 말이다.
또한 이번 대회 유치 과정에서 정부가 어느 정도의 대외 협력 혹은 원조를 약속했는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번 대외적 약속이 “우리가 선정되면 이런저런 것들을 해 주겠다”라는 조건부 약속이었는지, “상대국의 지지 여부 혹은 우리의 선정 여부와 무관하게 무조건 지원하겠다”라는 약속이었는지 정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부산엑스포 유치는 물 건너갔으나,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한 약속은 국민 어깨 위에 그대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엑스포 유치 노력 과정에서 나타난 어처구니없는 일들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좌우할 국가의 경제정책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일례로 정부의 경제정책과 한국은행의 금융정책 간 엇박자가 심각하다. 올 초 상황을 떠올려보자. 한국은행은 2022년 4월 이후 수차례 기준금리를 올려 올해 1월에는 3.5%가 되었다.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이때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금리 인상의 불가피한 여파에 대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업이나 개인 채무자의 질서정연한 구조조정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거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희생되는 국민의 삶을 보살피는 것이 바로 그런 대처다. 그러나 정부는 엉뚱하게도 시장금리 자체를 왜곡시켰다. 은행 등을 압박해서 금리를 인하하도록 지도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금융감독과 공정거래라는 칼날을 내보였다. 이것은 잘못된 금융개입이다.
한편 한국은행은 지난 2월 이후 상반기 동안 세 차례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그럴 때마다 긴축기조를 유지한다는 한은의 현란한 ‘선언’이 으레 뒤따랐으나, 그 ‘행동’에 해당하는 연이은 동결 결정은 한은의 금리 인상 포기를 시장에 점점 더 확고하게 각인시켜줬을 뿐이다. 때마침, 완만하게 하락하던 물가상승률이 지난 8월을 기점으로 반등했다. 9월부턴 부동산 관련 대출도 급증하면서 가계부채 팽창이 다시금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다. 한은이 금리 인상의 적정 시점을 놓친 결과다. 그럼에도 하반기 내내 거듭된 네 차례의 동결 결정으로, 한은 기준금리는 연말인 요즘도 3.5%에서 요지부동이다. 결국 한은은 시장의 신뢰를 잃었고 금융정책은 무력화됐다.
그러는 동안 한미 간 기준금리(미국은 5.5%) 격차는 사상 최대폭인 2%포인트에 달했다. 금리생활자를 빼고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국제 수준과 동떨어졌다면 작은 일이 아니다. 위기 상황이 닥치기라도 하면 이런 금리 격차는 한국경제의 아킬레스건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것은 또한 사회 일각에서 한국은행의 ‘정부로부터의 독립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물가상승과 관련하여 몇몇 주요 소비품목을 정해놓고 ‘물가지수관리’에 들어섰다. 그러자 업계는 가격 인상 대신 용량 축소로 대응하고 있다. 그 결과 국민이 체감하는 물가는 전혀 안정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실물에 대한 정부의 잘못된 개입이다. 시장을 존중한다는 윤석열 정부에서 경제정책들은 왜 거꾸로만 가는가.
경제정책이 정상적으로 집행되기 위해서는 각 부처가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고 해야 할 일을 사심 없이 수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자, 경제정책이 방향감각을 상실했다. 이제는 하루빨리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서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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