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혜의 마음 읽기] 나를 어루만지는 타인의 손
일본 예술품을 수집하는 알렉스 커는 호주머니가 얇은 청년 시절부터 예술 보는 눈을 키웠고, 남들이 탐내지 않는 블루오션을 발견해 컬렉터로서 나름 일가를 이루었다. 처음에 그는 예술품에 매혹되면 이런 의문을 품었다. 이 물건은 객관적으로 아름다운 건가, 아니면 그냥 내 마음이 끌리는 건가? 확신이 안 들어 선배 수집가 데이비드 키드에게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먼저 아름다운 집을 소유해. 그 집을 아름다운 물건들로 둘러싼 다음 새로 산 물건을 올려놔 봐. 거기에 어울리지 못하면 별로인 거지.” 알렉스 커처럼 이 구절에 꽂힌 나는 키드의 조언을 이렇게 새겼다. 탁월한 형식을 갖춘 뒤에는 외부의 사물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수월하게 분별할 수 있다.
■
「 올 한해 꾸준히 읽은 하이데거
나를 끌어올린 도움닫기 경험
새해엔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
」
그런 차원에서 내게는 올해 아름다운 집이 한 채 생겼다. 한 해 동안 매달 분량을 정해 1600쪽짜리 『하이데거 극장』을 읽었는데, 하이데거의 철학은 내가 오랜 세월 한 번도 떨쳐내지 못한 질문에 실마리를 주었다. 해결의 실마리라기보다 암흑에 던져진 한 줄기 빛 정도이지만, 사물의 가치를 좀 더 투명하게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이처럼 평균을 훨씬 웃도는 기준점 하나는 범상한 것 여러 개보다 낫다.
조지 손더스의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는 저급한 품질을 거부하기 위해 힘겹게 싸운 작가들을 기록한 책이다. 줌파 라히리는 언어로 평균성을 뛰어넘는다. 모국어를 뒤에 버려둔 채 외국어인 이탈리아어로 글쓰기를 한 수년의 전말이 『나와 타인을 번역한다는 것』에 드러나 있다. 다른 언어로 글을 써본 사람과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해 있을 것이다. 자기 정체성을 새로운 언어로 말끔히 세척해본 사람과 고인 물에서 첨벙거리고 있는 사람의 차이다.
자신이 ‘독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이런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나는 어떤 독자인가? 라히리가 건넌 깊은 언어의 강, 그와 유사한 자발적 시련에 발조차 담가보지 못한 건 아닐까. 평범함이라는 안개에 둘러싸인 보통 사람들에게도 이따금 도움닫기 할 기회는 종종 주어진다. 허들을 넘을 각오가 된 사람은 천천히 세밀하게 곱씹으면서 강 저편으로 건너갈 수 있을 것이다.(천천히, 자세히가 중요하다. 많은 비밀은 다른 시간의 패턴에 숨어 있다.)
요즘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친구들을 응원하고 신간을 내면 첫 독자가 돼주는 풍경이 일상화되어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저자가 윤리적인 문제에 휩싸이거나 자신과 다른 주장을 펼치면 전광석화처럼 지지를 거둬들이는 ‘취소 문화’도 보편적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것은 인지도·인정·권력에 이끌려 뭔가를 소비·향유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잘된 준거틀을 갖고 있으면 자기 삶에 어울리거나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더 잘 알 수 있다.
내 경우 좋은 작품을 읽고, 철학 공부를 하고, 걸작을 수집하는 것은 자기 결심과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차린 게 올해의 또 다른 수확이었다. 알렉스 커는 자신이 가부키나 다도를 어렸을 때부터 봤으니 웬만큼 안다고 자부해 같이 배워보자는 친구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다 막판에 억지로 끌려들어 갔는데, 거기서 예상치 못한 세계가 열렸다. 이것은 그의 삶에 큰 획을 그었다.
1년 전 한 선배는 내게 철학 공부를 같이하자고 제안했고, 나는 원래 거절할 생각이었다. 제대로 하려면 달마다 철학책을 읽어야 하는데, 이는 얕은 냇가를 매주 퐁퐁 건너다니며 트렌드를 수집해야 하는 책 기획자에게는 너무 무거운 옷이라 여겨져 불안했던 것이다.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선배가 은인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시 말해 많은 좋은 것을 우리는 현재의 자신에게서 찾을 수 없고 대체로 타인의 권유로 만나게 된다. 새로운 물줄기는 밖에서 유입되는데, 수문을 조금 열어놔 다른 물줄기가 침입할 때 그것은 큰 강을 이루어 물속 생명체든 주변 농토든 풍성하게 할 수 있다. 삶에서 행운은 종종 우연히 끼어들고, 그건 대체로 나 아닌 타인에게서 비롯된다.
당신의 새로운 해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나는 올가을부터 문을 더 열어놨더니 누군가는 니체를 같이 읽자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같이 그림을 그려보자고 했다. 그것이 내게는 새로운 수원이다. 이 둘은 진보나 도전을 뜻하지 않으며 조금 다른 뉘앙스를 지닌다. 남들이 나에게 흘러들어오고, 내가 남들에게로 들어가는 느낌이 더 짙다.
나는 한 번도 그림 그리기를 배우고 싶다거나 니체를 독파하겠다는 욕구를 갖지 않았다. 이런 일들은 어느덧 다가와 일상을 어루만지면서 부드럽게 손을 내민다. 할 일은 그들의 손이 툭 건드릴 때 자기 안의 어떤 부분이 잘 반응하도록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지난날 살아온 세월에 의해 자기 안에 칼날처럼 날카롭게 벼려진 부분을 갖고 있을 가능성은 충분할 것이다.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말소리 시끄러워" 이웃여성의 귀 잘랐다…일본 70대 엽기행각 | 중앙일보
- “혼자 죽으면 얼마나 듭니까?” 70대 싱글남의 ‘고독사 예약’ | 중앙일보
- 암투병 중인 장모 몸에 불 붙였다…사위의 충격적 퇴마의식 | 중앙일보
- "엄마들 모임은 동물의 왕국" 정신과 의사가 본 '서열 비밀' | 중앙일보
- 면역력 떨어진 사람 90% 이상 감염…코로나 지나자 급증한 병 | 중앙일보
- 드레스 은밀한 부분 더듬는 손…세상에서 가장 슬픈 패션쇼 | 중앙일보
- '이승만 기념관 기부' 이영애, 한미동맹재단에도 5000만원 쾌척 | 중앙일보
- "그녀라면 OK"…이효리, 창사 39년 풀무원 첫 연예인 모델 됐다 | 중앙일보
- "우리 옷 사지마" 충격 광고…직원 만족도 91%, 이 회사 비결 [브랜드로 본 세계] | 중앙일보
- 배우 권해효, 통일부 조사 받는다…"조총련 인사 무단접촉"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