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의 시인이 사랑한 단어] 진은영, 사랑

2023. 12. 13.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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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시인

유사 이래 사랑을 노래한 시인은 숱하다. 그 많은 시인은 저마다 자신으로부터 사랑이 다시 탄생하고 재발명되기를 염원했을 것이 틀림없다. 자신이 노래한 사랑이 협소한 의미로 전달되지 않기 위해서 시인은 자신이 부르는 사랑 노래의 스펙트럼을 한없는 인류애로, 가없는 우주로까지 넓혀간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스펙트럼을 넓힐수록 시는 독자에게 가닿아 초점이 다소 흐려진 낭만성으로 흐물흐물해지고야 만다. 그래서 사랑 노래는 시인이 욕망했던 바대로 구현되기가 유독 어렵다.

[일러스트=강일구]

진은영은 자신이 사랑 노래를 협소하게 줄인다. 더 정확하게 초점을 맞추는 쪽을 선택한다. 단 한 사람에게 바치는 시를 쓴다. 이니셜을 사용한다거나, ‘한 노동운동가에게’라는 부제를 단다거나,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이름을 부르며 ‘천칭자리 위에서 스무 살이 된 예은에게’라는 제목으로 사랑을 노래한다. 사랑의 방향이 이만큼이나 구체성을 갖출 때 독자는 알게 된다. 단 한 사람으로서 단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이 노래 속에서 단 한 사람은 바로 내 자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사랑은 고통을 나누는 사이에서 싹이 튼다. 신음처럼 시작되지만 종내에는 합창과 같아진다.

진은영은 인간이 회복될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발현되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시인일 것이다. 시인이 사랑을 노래할 때, 사랑을 느껴서 노래할 때, 사랑을 느끼는 것이 사랑의 책무를 알아차린 것과 동일할 것임을 인지했을 때에, 사랑의 책무가 양어깨에 무겁게 드리워진 사실에 무겁다는 감각보다 힘을 내고 싶다는 욕망이 선행될 때에……. 그때의 아름다움은 오로지 사랑일 수밖에 없다. 숨 쉴 수 없는 영혼에 숨결을 불어넣는 목숨과 동급인 사랑이 피어난다. 세월호 참사에 집중된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는 이 숨결로써 애도가 곧 사랑임을 알게 한다. 진짜 사랑 노래를 들려준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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