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폴 “공사장 소리로 새 음악 만들어…꼭 재활용하는 마음”

어환희 2023. 12. 13. 00: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2일 발매한 엠비언트 앨범 ‘비잉-위드’ 제작 과정 중 다양한 장소에서 소리를 채집하는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 [사진 안테나]

공학박사 출신이자 ‘노래하는 음유시인’으로 불리는 루시드폴(조윤석·48)이 엠비언트 앨범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정규 10집 발표 후 1년 만이다. 12일 발매한 그의 새 앨범 ‘비잉-위드(Being-with)’는 총 5개의 엠비언트(Ambient) 곡으로만 구성됐다. 엠비언트는 자연이나 악기의 소리를 활용해 잔잔하고 사색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전자음악의 한 종류다.

이번 앨범에서는 사람의 소리는 물론 수중 마이크로 녹음한 바닷속 소리, 풀벌레의 합창 소리, 공사장에서 채집한 굉음 등 다양한 소리에 그의 생각과 감정을 녹였다. 지난 7일 그를 만나 얘기를 들었다.

루시드폴

Q : 엠비언트 음악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A : “2018년 여름, 농약 치는 기계에 왼손 약지가 끼어 크게 다쳤다. (※루시드폴은 제주도에서 귤 농사를 하고 있다) 기타 치며 하는 곡 작업에 제약이 생기니, 불안한 마음에 안 듣던 음악을 마구 듣기 시작했다. 유독 관심이 생겼던 분야가 소리로 만든 음악, 엠비언트였다. 돌이켜보면, 운명적이었다. 누가 농기계에 손이 끼어서 엠비언트 음악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겠나. (웃음)”

Q : 엠비언트의 어떤 점이 마음을 잡아끌었나.
A : “엠비언트는 36.5도의 체온 같은 음악이다. 음악이 스피커나 이어폰을 통해 내게 다가온다기보다는 마치 향초처럼 내 주변으로 흩어지는 느낌이다. 과수원에서 일하면서 듣기도 하고, 혼자 감상하기도 좋고, 실생활에서 가장 많이 듣는 음악이 돼 버렸다.”

Q : 작업 과정이 일반 곡 쓸 때와 많이 다를 것 같다.
A : “철저하게 사운드(소리)의 완성도에 집착한다. 텍스트(가사)가 없으니 질감이나 공간감, 청각적 체험에서 승부가 나는 어려운 작업이다. 제1조건은 누구의 귀에도 거슬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웅웅거리는 저음, 귀를 자극하는 클락션 소리처럼 조금이라도 불쾌하다면 소리를 억누르고 뽑아내고 정리하는 식의 믹싱 작업을 한다. 더 나아가 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번 앨범을 한 마디로 ‘2023년의 루시드폴’이라고 했다. 그만큼 최근 자신의 관심사가 녹아 있다. 타이틀곡 ‘마테르 돌로로사(Mater Dolorosa)’는 ‘고통받는 어머니’를 뜻하는 라틴어다. 철근을 자르거나 육중한 중장비가 움직이는 등 공사장에서 채집한 굉음을 재료로 만들었다. 그는 “제주는 1년 내내 공사를 한다. 날카롭고 듣기 싫은, 이른바 ‘소리 폐기물’을 업사이클링하는 마음으로 음악을 만들었다”면서 “1차적으로 스스로 치유받고 싶었고, 인간이 만들어 낸 소음을 음악으로 만들어 세상에 다시 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전쟁, 동물 학대, 환경 파괴 등 인간의 죄에 대해 속죄하는 의미도 담았다고 한다.

곡 ‘마이크로코스모(Microcosmo)’ 제작 과정에선 재래시장, 바닷속, 풀벌레 등 자연과 일상의 소리를 녹음한 테이프를 일일이 면도칼로 잘라 끝과 끝을 이어 루프(loop)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무한 반복되는 소리를 만들어냈다. 루시드폴은 “제주 바닷가에서 10년을 살면서 한 번도 똑같은 바다 색을 못 봤다”면서 “자연이 뭐냐고 묻는다면 ‘반복 없는 반복’이라 답하겠다. 이러한 속성을 지닌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