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퍼’ 박도현의 길었던 2023년 [쿠키인터뷰]

김찬홍 2023. 12. 12.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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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에 성적 부진으로 인한 월즈 진출 실패
새로운 멤버들과 함께하는 2024년에 기대 드러내
어느덧 6년차…미래에 대한 심경도 솔직히 밝혀
한화생명e스포츠 원거리 딜러 ‘바이퍼’ 박도현. 사진=차종관 기자

‘바이퍼’ 박도현에게 2023년은 아쉬움이 가득한 한 해였을지도 모른다. 유독 운이 따르지 않은 한 해였다. 야심차게 한국 무대로 복귀했지만 기대 이하의 성적을 냈다. 이 과정에서 팀원이 사생활 문제로 인해 엔트리에서 제외되는 초유의 사태도 겪었다.

결국 박도현과 한화생명e스포츠는 국내에서 열린 ‘2023 LoL 월드 챔피언십’ 무대에 나서지 못했다. 박도현은 2년 만에 월드 챔피언십 무대에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셈이다. ‘꿈의 무대’에 나서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을 터.

하지만 박도현은 언제나 그랬듯 다시 마음을 다잡고 2024년을 위해 폼을 끌어올리고 있다. 새로운 팀원들과 함께하게 되면서 어느 때보다 기대치가 높은 상황이다. 지난 11일 한화생명 캠프원에서 만난 박도현은 그 어느 때보다 밝은 표정이었다.

야심차게 복귀했지만, 실패로 끝난 2023년

박도현은 지난해 12월 2년 동안 뛴 중국 무대를 뒤로 하고 다시 한국 무대로 복귀했다. 행선지는 2020년에 뛰었던 한화생명e스포츠. 한화생명 복귀에 많은 팬들은 기대감을 모았다.

하지만 ‘2023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스프링 스플릿과 서머 스플릿 모두 최종 4위에 머물렀다. 선수단에도 팬들에게도 ‘희망 고문’과도 같았다. 약팀들을 상대로는 승리를 따내지만, 최상위권 팀들을 상대로는 속절없이 패배했다. 반복의 연속이었다.

박도현은 “아무래도 올 한해를 돌이켜보면 아쉬운 마음이 든다. 우리도, 팬들도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성적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면서 “반복되는 결과에 대한 감정은 없었지만, 결과 자체가 우리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 보니 아쉬움이 더욱 컸다”고 전했다.

2023 LCK 서머 스플릿이 한창이던 지난 6월 팀원 1명이 사생활 문제로 팀 로스터에서 제외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2군에 있었던 ‘그리즐리’ 조승훈이 갑작스레 경기에 나서기도 했다. 팀의 핵심 선수였던 박도현의 어깨도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박도현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많이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시즌이 계속 진행 중이라 우선은 당장 눈앞에 있는 경기를 잘 치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것에 많이 집중했다”면서 “다 같이 힘든 상황인 만큼 더 힘을 내서 잘해보자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려 노력했다”고 돌이켜봤다.

한화생명e스포츠의 원거리 딜러 ‘바이퍼’ 박도현. 라이엇 게임즈

갑작스러운 팀원의 이탈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한화생명이었지만, 최종적으로는 ‘LoL 월드 챔피언십’ 선발전 마지막 경기에서 디플러스 기아(DK)에 패배하며 시즌을 마쳤다. 당시 DK전이 끝난 뒤 박도현은 “누군가 책임을 지려는 모습이 없었다”고 인터뷰에서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경기 내적인 부분을 지적하는 거였다. 경기 안에서 우리가 몰리게 되면 그런 상황을 극복하기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런 연습이 덜 돼 있었다. 반면 상대는 우리보다 용기 있고 과감했다. 그래서 결국 패배했고 당시에 그런 말을 남겼다”면서 “게임 안에서 벌어진 일은 누구 하나의 잘못이라 말할 수 없다. 모두의 잘못이다. 나아가 선수단 전체가 미리 해결했어야 할 숙제를 해내지 못해고 패배했기 때문에 나 역시 책임감을 느낀다”고 솔직한 심경을 털어놨다.

‘2023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무엇이냐’고 묻자 박도현은 “기억에 남는 순간이 많은데, 2023 LCK 스프링 플레이오프에서 KT 롤스터전이 굉장히 아쉽게 느껴진다”고 답했다. 당시 한화생명은 3라운드 패자전에서 KT에 1대 3으로 패배하며 최종 탈락했다.

이어 박도현은 “당시 경기를 뚫고 (상위 단계에) 올라갔다면 ‘다른 결과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길만한 경기였던지라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면서 “아쉬웠던 한 장면을 꼽을 수 없을 것 같다. 전체적인 파워도 상대에게 밀렸는데 분기점이 되는 순간에 상대보다 한 발짝 느렸고, 상대는 확실한 플랜을 들고 게임을 했다”고 돌아봤다.

그는 “올해를 보내고 자극을 받으면서 (앞으로도) 훨씬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올해 팀 성적을 제쳐두고 개인적인 퍼포먼스도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았다. 올해를 토대로 내년이나, 내후년에도 앞으로 계속 프로 생활을 한다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올해 내 경기력은 5점 정도다. 그냥 그랬다. 내가 생각하기엔 보통 정도였다”고 자평했다.

2024년 완성된 한화생명e스포츠의 로스터. 한화생명e스포츠 SNS

2024년, ‘다시 슈퍼팀’

2023년 스토브리그가 시작하기 전이던 지난달 17일 한화생명 구단은 박도현과 재계약 사실을 밝혔다. 당시 팀원들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박도현은 재계약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박도현은 “가장 먼저 생각했던 건 게임에 완전히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한화생명은 환경 측면에서 가장 잘 부합하는 팀이었다. 내년에도 뛰는 게 스스로 좋다고 생각했다”면서 “내가 팀에 있는다면 나를 보고 찾아오는 선수들도 있지 않을까 싶어 빠르게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실 (외부로 나갈)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항상 시즌이 끝나면 많은 방향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올해는 빠르게 정리가 잘 됐다”고 덧붙였다.

박도현이 재계약을 체결한 이후 미드라이너 ‘제카’ 김건우도 잔류를 택했다. 이후 2023시즌에 젠지e스포츠에서 뛴 ‘도란’ 최현준, ‘피넛’ 한왕호, ‘딜라이트’ 유환중이 한화생명으로 이적했다.

박도현은 처음 팀원들이 구성됐을 때를 돌이켜보며 “굉장히 잘하는 선수들이라 같이 해보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이 많이 기대가 되고 재밌을 것 같다”고 말했다. ‘우승 가능성이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엔 “늘 우승은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서 당연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이 중 최현준과는 약 4년 만에 같은 팀에서 뛰게 됐다. 2019년에 최현준과 박도현은 그리핀(해체)에서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다. 박도현은 최현준에 대해 “성격 같은 부분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다만 게임적인 부분에서는 많이 발전했다. 최고로 잘하는 선수 중 하나가 됐다는 게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싶다. (최현준과) 처음 만났을 때는 둘 다 초창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선수였다”면서 “지금은 많은 경험을 쌓으면서 커리어로 증명해 지금은 잘하는 선수가 됐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새로 합을 맞춰보는 한왕호와 유환중에 대해선 “게임적으로나 게임 외적으로 상상했던 이미지와 잘 맞아 떨어지는 선수들”이라면서 “말도 잘 통할 것 같았는데, 실제로 그랬다. 합을 맞추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표출했다.

많은 이들은 박도현과 유환중의 라인전에 기대를 걸고 있다. 라인전과 한타 능력이 모두 뛰어난 두 선수의 호흡에 많은 팬들은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박도현은 “(유환중이) 확실히 좀 전 시즌 리그 우승자인지라, 플레이에 본인 확신이 있고 철학이 있다. 잘 맞춰주려고 해서 좋다. 아직은 많이 해보지 않았지만, 앞으로 잘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한화생명이 강력한 로스터를 꾸리면서 2024년 LCK에선 치열한 순위 경쟁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LoL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T1도 그대로 로스터를 구축한 가운데, 젠지e스포츠는 ‘기인’ 김기인, ‘캐니언’ 김건부 등을 영입하면서 변화를 택했다.

박도현은 “내년은 올해보다 더 치열하고 재밌을거라 확신한다”면서 “가장 경계하고 같이 맞붙어보고 싶은 상대는 역시 T1이다. 이길 자신은 분명히 있다. 승패를 떠나 재미있는 경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얻는 게 많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다음 시즌에 임하는 각오를 묻자 박도현은 “모든 경기, 모든 시즌이 끝나면 나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도 똑같이 원점으로 돌아와 도전자의 입장이 된다. 그래서 우리 팀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새롭게 아래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가서 우리의 목표치까지 올라가야 한다. 정상까지 갈 수 있을 거라 예상한다”고 전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LCK가 분명히 굉장히 치열하고 경쟁력 있는 최고의 리그이기 때문에 쉽지 않겠지만, 항상 목표를 우승으로 생각한다. 매번 말하지만 내 목표는 우승이고, 그 우승을 넘어 국제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이라면서 “올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내년에는 하루 하루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살아보려 한다. 항상 포기하지 않고 응원하는 팬들이 계시기에 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경기하겠다”고 당찬 포부를 전했다.

한화생명e스포츠의 원거리 딜러 ‘바이퍼’ 박도현. 사진=차종관 기자

어느덧 베테랑이 된 ‘바이퍼’…“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박도현보다 4~5살 어린 선수들이 프로 무대에 데뷔를 하기 시작했다. ‘눈에 띄는 신인 원거리 딜러가 있냐’고 묻자 박도현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는 “아직도 잘한다고 생각하는 선수들이 내가 데뷔하기 전에 뛰었던 선수들”이라면서 “신인 선수 중에서 얘기하자면 ‘페이즈’ 김수환(젠지) 정도다. 어린 선수인 만큼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지 더 궁금한 선수이기도 하고 앞으로도 더 좋은 모습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여전히 스스로에 대한 경쟁력이 있다고 자부한다. 박도현은 “그렇지 않았다면 계속 선수 생활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2017년 12월 케스파컵에서 처음 모습을 보인 박도현은 어느덧 데뷔한 지 6년이 지났다. 아직 2000년생이지만 프로게이머 씬에서는 중고참급이 된 셈이다.

“시간이 굉장히 빨리 흘렀다”고 돌이켜 본 박도현은 “생각보다 내가 (프로게이머) 생활을 많이 했다. 앞으로 또 지나고 보면 시간이 훌쩍 가 있을 듯하다”면서 “어느덧 (프로게이머 생활을) 마무리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조금씩 한다. 슬슬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긴 한다”고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자칫 오해를 살 수도 있지만, 당장에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이제껏 선수 생활을 했던 시간보다 남은 시간이 적을 수도 있는 만큼, 앞으로 남은 시간에 더욱 불을 태우겠다는 뜻이었다.

박도현은 “스스로 신체적이나 정신적인 변화에 대해선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시간이 지났을 때 ‘내가 같은 마음가짐과 같은 자세로 임할 수 있을까’란 걱정도 한다. 신체적, 정신적인 피로도는 시간이 지나가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 지금 당장 판단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만큼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했다”고 심정을 털어놓았다.

‘페이커’ 이상혁이나 ‘데프트’ 김혁규 등 박도현보다 여전히 오래 뛴 베테랑 선수들이 LCK 무대에 즐비하다. 박도현 역시 이들처럼 롱런할 수 있는 선수가 되기를 희망하고 바라고 있다.

박도현은 “두 선수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선수들에게도 많은 교감이 되는 대선배님이다. 아직도 실력으로 최고의 자리에서 경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나 역시 두 선수처럼 롱런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그런 만큼 두 선수에게 많은 동기 부여를 받는다”고 말했다.

김찬홍 기자 kch0949@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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