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욱 “안전 현장 만들겠다” 공언했지만…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2023. 12. 1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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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 최다 건설사 오명 ‘DL’

잇따른 노동자 사망 사고로 사회적 비판을 받는 이해욱 DL그룹 회장이 국회에 불려 나와 연신 고개를 숙였다. 향후 안전한 현장을 조성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건설업계는 DL을 여전히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중대재해 최다 건설사’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e편한세상’ ‘아크로’ 등 주택 브랜드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 12월 1일 국회 산업재해 관련 청문회에 출석한 이해욱 DL 회장. (연합뉴스)
DL이앤씨 사망 사고 11건

이해욱 회장 국회 청문회서 사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12월 1일 ‘산업재해 관련 청문회’를 열고 이해욱 회장을 증인으로 불러 산재를 막지 못한 책임을 물었다.

지난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이후 DL그룹에서는 11건의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핵심 계열사 DL이앤씨에서만 지난해 4차례 사고가 발생해 5명이 사망했다. 올 들어서도 8월 부산 연제구 아파트 건설 현장 추락 사고 등 3건의 사고로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총 8명이 사망해 ‘단일 기업 최대치’라는 오명을 썼다.

DL그룹 건설 현장에서 중대재해 사고가 잇따르자 이해욱 회장은 지난 10월 고용노동부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해외 출장을 핑계로 출석하지 않았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관련 법률에 따라 이들을 고발하려다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는 야당 주장에 따라 청문회 개최를 의결했고 이 회장은 결국 국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청문회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년 반 동안 7건의 사고로 8명이 사망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지 않나”라고 질문하자 이해욱 회장은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몸을 낮췄다.

이해욱 회장은 앞으로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 조치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안전 비용을 29% 증액했고, 내년에도 20% 늘릴 계획이다. 가장 안전한 현장을 운영하는 회사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다. 이를 두고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안전 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최저가 낙찰제나 다단계 하도급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산재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근로자 사망 사고가 끊이지 않는데도 DL이앤씨에서는 전문적인 최고안전책임자(CSO) 없이 최고경영자(CEO)가 이를 겸직하는 등 여전히 구조적인 문제가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CSO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안전보건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주요 기업이 줄줄이 도입한 직책이다. 노웅래 의원실이 국내 주요 건설사 6곳(현대건설, 삼성물산, 대우건설, 포스코이앤씨, GS건설, DL이앤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CSO와 CEO를 별도로 분리하지 않은 기업은 DL이앤씨가 유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DL이앤씨를 제외한 대부분 건설사는 CSO와 CEO를 별도로 분리했고, 독립기구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일례로 삼성물산 건설 부문은 안전보건실장을 별도 CSO로 선임해 관리 중이다. 삼성물산 건설 부문에서는 지난해부터 중대재해 사망자가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DL이앤씨는 조직도상 주택, 토목, 플랜트 부문별 CSO를 두면서도, 주택 부문에서는 마창민 DL이앤씨 대표가 CSO를 겸직해왔다. “공정을 잘 이해해야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만큼 마창민 대표가 주택 부문 CSO 적임자라고 판단했다”는 것이 DL이앤씨 입장이지만 재계에서는 ‘경영-안전 책임자를 철저히 분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잖다. 노웅래 의원은 “경영 효율화를 책임지는 CEO가 CSO를 겸직하면 안전보건을 위한 내부 견제 기능이 무용지물이 된다. DL이앤씨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대국민 사과를 했음에도 형식적인 안전 관리 시스템을 운용해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22년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마창민 대표는 “안전 대책을 강화하고 문제가 안 생기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그동안 달라진 점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평가다.

논란이 커지자 DL이앤씨는 최근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안전 업무만 전담하는 별도 CSO를 경영위원회 직속으로 선임하고 30년 경력의 안전 전문가인 이종배 담당임원이 CSO를 맡게 됐다. DL이앤씨 관계자는 “안전한 현장을 만들기 위해 다각도로 고민한 결과 별도 CSO를 선임하기로 했다. 전사 안전에 대한 컨트롤타워 기능, 독립성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안전 책임 의무가 있는 원청 DL이앤씨가 하청업체에 책임을 떠넘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7월 4일 경기도 의정부시 신곡동 ‘e편한세상신곡파크프라임’ 현장에선 콘크리트 타설 장비를 올리던 중 작업대가 낙하해 장비 운전원 1명이 사망했다. DL이앤씨는 “관리자가 부재한 점심시간에 임의 작업이 이뤄졌고 그 와중에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고 해명했다. 8월 11일 부산 레이카운티 현장 사고와 관련해서는 “신고되지 않은 임의 작업을 하다 추락했다”고 주장했다.

사망 사고뿐 아니라 DL이앤씨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2021년 260건이었던 DL이앤씨 산재 승인 건수는 지난해 302건으로 16% 뛰었다. 올 들어서도 10월 누적 322건으로, 이미 지난해 수준을 넘어섰다.

논란이 커지자 DL그룹은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DL이앤씨는 지난 9월부터 약 2개월간 고용노동부 지정 안전 관리 전문 컨설팅 기관인 산업안전진단협회와 함께 본사, 현장의 안전보건체계 점검을 실시했다.

우선 건설 현장의 근로자 출입 통제 시스템을 한층 강화해 당일 작업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인원의 현장 출입을 통제하기로 했다. 협력업체 직원들이 본사 승인 없이 현장을 출입하며 임의로 작업을 진행하다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이를 위해 안면인식 시스템 등의 첨단 장비를 대거 도입했다.

근로자 대상 안전 교육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매일 작업 투입 전 안전 교육, 회의에 참석하도록 하고 인증 스티커를 안전모에 부착해 교육 이수 여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장에 위치 기반 안전 플랫폼을 구축해 근로자가 밀폐공간이나 가설시설 등 위험 구간 진입 시 경보음이 울리도록 조치했다. 각종 건설 장비에도 접근 센서와 인공지능(AI) 카메라를 부착했다. 작업 반경 내 근로자 진입 시 신호수와 장비 운전기사에게 비상 알림을 울려 작업을 즉시 중단할 수 있도록 했다.

이뿐 아니다. 모든 사업장에 CCTV를 확대 설치하고, 본사에서 이중으로 현장 안전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중앙관제실도 운영한다. 조회 시간이나 점심시간 같은 안전 관리 취약 시간대에는 순찰 제도를 도입한다. DL이앤씨 관계자는 “최근 실시한 산업안전진단협회 점검 결과도 면밀히 분석해 개선 방안이 있다면 본사와 전 현장에 전파해 유사한 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DL이앤씨 실적도 부진

3분기 영업이익 30% 감소

다양한 조치를 마련하고 있음에도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DL그룹을 바라보는 시각이 우호적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라고 입을 모은다.

가뜩이나 고금리 여파로 주택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중대재해 최다 건설사’ 타이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실적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DL이앤씨는 올 3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이 80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0.9% 감소했다. 매출도 1조8374억원으로 같은 기간 0.6% 줄었다. 그만큼 수익성이 악화됐다는 의미다.

3분기 DL이앤씨의 매출원가율은 90.1%로 전년 동기(87.2%) 대비 2.9%포인트 높아졌다. 매출원가율은 매출 대비 매출원가가 차지하는 비중을 의미한다. 건설사의 원자재 매입 가격이 갈수록 높아지는데 발주처로부터 늘어난 공사비를 온전히 보상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선일 BN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인플레이션 여파로 정점에 이른 주택원가율이 DL이앤씨 실적에 부담을 줬다”고 분석했다.

건설뿐 아니라 그룹 전반적으로 실적이 부진한 모습이다. DL그룹 지주사 DL의 3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120억원에 그쳐 전년 동기 대비 무려 93% 줄었다. 순손실은 509억원으로 적자폭이 확대됐다. DL케미칼 등 석유화학 사업을 비롯해 친환경 고무 사업을 해온 카리플렉스 등 주요 계열사 실적이 부진한 영향이 크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8호 (2023.12.13~2023.12.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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