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형님 리더십’ 문제…탈출구 없나 [BUSINESS]

최창원 매경이코노미 기자(choi.changwon@mk.co.kr) 2023. 12. 1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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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만이 된 자율 ‘카카오 카르텔’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10월 2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 SM엔터테인먼트 인수 주가 시세 조종 의혹과 관련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카카오가 ‘카르텔’ 논란에 휩싸였다. 카카오 외부감시기구 ‘준법과신뢰위원회’의 유일한 사내 위원 김정호 CA협의체 경영지원총괄이 회사 내부의 방만한 경영 체계와 부실한 의사 결정 구조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다. 김정호 총괄은 일부 임원들이 카르텔처럼 업무 과정에서 사적 이익을 취했다고 지적했다. 법인 골프회원권 남용, 불투명한 제주 본사 유휴 부지 공사 등 구체적 사례도 덧붙였다. 이후 회사 측 만류로 김 총괄은 폭로를 멈췄다. 언론 접촉 등 외부 커뮤니케이션 활동도 모두 중단했다.

하지만 폭로 여파는 여전하다. 재계 10위권 그룹에 카르텔이 형성됐고, 이를 인지한 창업자마저 통제 못했다는 점에 놀라는 이가 적잖다. 다만 IT업계 관계자들은 “예상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카카오 특유의 조직 문화와 성장에 초점을 맞춘 경영 전략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지적이다.

독이 된 ‘형님 리더십’

‘방만’으로 변질된 자율성

카카오 카르텔 논란을 두고 김범수 창업자 책임론도 불거진다.

IT업계에서 김범수 창업자의 경영 방식은 ‘형님 리더십’으로 통한다. 일종의 내 사람 챙기기다.

일례로 현재 카카오 대표를 맡고 있는 홍은택 대표는 김범수 창업자의 최측근이다. 과거 NHN 재직 시절 김범수 창업자가 직접 카카오로 영입했다. 이후 각종 논란에도 대표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김범수 창업자의 ‘복심’이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홍은택 대표는 2021년 카카오커머스 대표 당시 직원에게 폭언과 폭행을 행사, 징계를 받은 바 있다. 이외에도 지난해 카카오 대표를 사임한 남궁훈 전 대표는 1997년 김범수 의장이 몸담았던 삼성SDS에서 선후배 사이로 만나 한게임 창업까지 쭉 함께한 인연이 있다. 여민수 전 카카오 대표, 조수용 전 카카오 대표, 이석우 두나무 대표, 임지훈 전 카카오 대표, 류영준 카카오페이 전 대표 등 카카오 계열사 대표를 역임한 상당수가 김범수 창업자의 오래된 지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형님 리더십은 카카오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안착한 인사가 새로운 사람을 데려오는 식이다. 팀장, 이사(디렉터) 자리와 관련해서도 석연찮은 인사가 이어졌다는 게 내부 직원들의 목소리다. 카카오 사정에 밝다는 IT업계 관계자는 “일부 인사의 경우 ‘알고 보니 경영진과 특정 모임을 같이 한다더라’ 등의 소문도 돌았다”며 “경영진을 향한 직원 불신이 상당히 큰 편”이라고 상황을 전해준다.

이 같은 경영 방식은 경쟁사인 네이버가 주로 외부 인사에 ‘수장’ 자리를 맡긴 것과 대조된다. 현재 최수연 대표도 2005년 네이버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4년간 근무한 뒤 2019년 네이버에 글로벌 사업 지원부 책임리더로 재합류하기까지 10년간 네이버를 떠나 있었다. 대표로 선임됐을 때도 네이버 내부에서는 “모두가 놀랄 만큼 존재감이 미미했다”며 사실상 ‘깜짝 인사’로 받아들였다. 네이버는 이전에도 한성숙 전 대표(2017~2022년), 김상헌 전 대표(2009~2017년), 최휘영 전 대표(2005~2009년) 등 이해진 창업자와 크게 관련 없는 외부 출신 경영인을 수장 자리에 올렸다.

카카오 경영 방식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면서 카카오 철학 역시 도마에 올랐다. 김범수 창업자의 경영 철학 키워드는 ‘100인의 CEO’다. 계열사별 성장이 그룹의 성장인 만큼, 대표들의 ‘자율 경영’을 보장하겠다는 의미다. 이 같은 경영 철학은 부서 단위로 범위를 좁혀도 똑같이 적용됐다. 의도는 좋았지만, 결과는 아쉬웠다. 견제 없는 자율이 방임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김정호 총괄이 카르텔을 지적하며 폭로한 내용 대다수가 이와 관련 있다. 특정 부서들이 앞장서 사적 이익을 취했다는 의혹이다. 김정호 총괄은 “ ‘카카오가 망하면 골프 때문일 것이다’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파악해보니 특정 부서만 투어프로 수준으로 치고 있었다”며 “한 달에 12번이면 4일짜리 KPGA 대회 3주 연속 출전 수준”이라고 적었다. 제주 본사 유휴 부지 공사 개발 건도 마찬가지다. 김정호 총괄은 “공사 관련 이미 정해진 업체가 있다고 주장하는 한 임원과 갈등을 겪었다”며 “700억~800억원이 되는 공사 업체를 담당 임원이 결재·합의도 없이 진행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배력’ 뚝뚝, 약해진 입김?

내부지분율 어느새 30%대

일각에서는 김범수 창업자 입김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정호 총괄이 개인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밝힌 내용에 따르면 김범수 창업자 역시 최근 카카오 내부 문제들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결에 어려움을 겪었고, 외부 인사인 김정호 총괄을 불러들여 전권을 쥐어줬다. IT업계 관계자는 “수년 전까지만 해도 카카오의 약점 중 하나는 ‘모든 결정권이 창업자에게 쏠려 있다’였는데, 최근에는 정반대가 된 것 같다”며 “창업자도 내부 통제가 안 될 만큼 조직 문화가 곪았고, 묻혀 있던 리스크들이 하나씩 수면 위로 떠오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업계 평가는 숫자로도 드러난다. 실제 내부지분율만 보면, 김범수 창업자의 그룹 내 지배력은 이전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내부지분율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총수(오너)의 기업집단 지배력 측정 지표로 활용한다. 그룹 전체 자본금(액면가 기준)에서 오너와 친인척·공익법인·계열사 등 특수관계자가 보유한 주식가액 비중을 의미한다. 통상 내부지분율이 높을수록 오너의 그룹 내 장악력과 경영권 방어력이 강하다고 평가한다. 낮은 경우에는 그 반대다.

카카오 내부지분율(동일인 측 합계)은 매년 하락세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는 70%대를 유지했다. 하지만 2020년 들어 37.73%로 급락했고 2021년과 2022년에는 각각 36.46%, 34.7%로 떨어졌다. 지난 9월 공정위 발표에 따르면 올해 내부지분율은 38.45%로 나타났다. 공시대상기업집단(82개)의 평균 내부지분율(61.71%) 대비 30%포인트 가까이 낮은 수준이다.

내부지분율이 떨어지는 것은 카카오 성장 방식과 관련 있다. 내부지분율은 외부 자본이 유입될수록 떨어지는 구조다. 카카오 계열사들은 2019년과 2020년 대규모 자본 조달을 시행했다. 기업공개(IPO)를 준비하던 카카오페이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당시 카카오엠) 등 주요 계열사는 수천억원대 증자를 연달아 시행했고, 카카오게임즈 역시 상장하며 대규모 외부 자금이 유입됐다. 덕분에 카카오의 외형도 빠르게 커졌다. 카카오 자본총계는 2019년 5조7401억원에서 2020년 7조4277억원으로 불어났다. 다만 그 대가로 김범수 창업자의 지배력은 약화했다.

카카오 쇄신 방안은

‘물갈이 인사’ 가능성 높아져

중요한 건 앞으로다.

김정호 총괄 폭로 이후 카카오는 준신위와 외부 법무법인을 통해 내부 비위 관련 의혹을 조사 중이다. 홍은택 대표는 지난 11월 30일 사내 게시판을 통해 “안산 데이터센터와 서울아레나, 제주 ESG센터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의혹과 브랜든(김정호 총괄)이 제기한 다른 의혹들도 공동체 준법경영실과 법무법인을 중심으로 조사단을 꾸려 감사에 착수했다”며 “철저히 조사하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호 총괄도 지난 12월 3일 사내 게시판을 통해 “내부 상황을 폭로한 것은 회사 원칙을 어긴 것으로 스스로 윤리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했다”면서도 “움츠러들거나 위축되지 않고 계속 쇄신을 추진해 발본색원하고 회사를 리뉴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IT업계에서는 카카오가 위기 때마다 임원진 교체라는 강수를 띄워온 만큼 조사 결과에 따라 대대적인 인사가 이뤄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카카오 노조 크루유니온도 대대적인 경영진 교체를 요구하고 있다. 서승욱 크루유니온 지회장은 “기존 경영 방식을 주도한 현재 경영진에 대한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며 “김범수 창업자가 신상필벌 얘기를 했는데, (카카오는) 신상필벌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완전히 새롭고 혁신적인 사례뿐 아니라 기존에 좋았던 내부의 조직 문화를 다시 살리는 것도 쇄신의 한 방향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안팎에서 인적 쇄신을 요구하는 만큼 김범수 창업자 측근 위주 인사가 아닌, 파격적인 경영진 교체 가능성도 나온다.

카카오는 다른 대기업과 달리 정기적인 연말 인사를 단행하지 않는다. 다만 카카오페이,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카카오게임즈 등 주요 계열사 대부분이 내년 3~4월 대표 임기가 만료된다. 특히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관련 시세 조종 의혹 중심에 서 있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정부 차원 비판을 마주한 카카오모빌리티의 경우 인사 교체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도 인사 교체 대상일 것으로 보인다. 배재현 대표 임기 만료일은 2025년 3월이지만, 시세 조종 의혹으로 구속된 만큼 신사업을 지휘할 새로운 사령탑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 관계자는 “내부에서도 외부 인사를 원하는 목소리가 크다”면서 “김범수 창업자도 조직 쇄신 의지를 갖고 있는 만큼, 대대적인 인사 교체는 예고된 사안”이라고 귀띔했다.

카카오 노동조합인 ‘크루유니언’이 경기 성남시 카카오아지트에서 인적 쇄신과 크루(직원)의 경영 쇄신 참여를 요구하며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8호 (2023.12.13~2023.12.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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