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이나 한 듯… ‘1960년대 말 사회’ 기하학적 추상화에 담다
‘유전질 No.4-68’(박서보), ‘도시계획백서 68’(하종현), ‘69-E 8’(윤형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전에 나온 작품들이다. 원과 사각형, 수직선과 수평선, 사선 등 기하학적인 형태와 원색의 색채, 화면 구성의 평면성 등을 특징으로 한다. 그런데 박서보, 하종현, 윤형근 등 이들 작가는 미술애호가라면 귀에 익었을 단색화 간판 작가들 아닌가. 단색화는 한국에서 197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중성색조의 미니멀한 화면을 구사하는 추상화를 일컫는다. 단색화 사조를 이끌었던 그들이 혈기왕성했던 30대 중반인 68년, 69년 무렵에 약속이나 한 듯이 이런 기하학적인 추상화를 했다. 더욱이 이런 경향의 작품을 하기 불과 몇 년 전인 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끈적거리는 느낌의 유럽식 추상화인 앵포르멜을 했던 그들이었다. 도대체 그 무렵 한국 화단에,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전에서 만난 이 석 점의 작품은 이런 질문을 제기하며 미술 이면의 그 시절을 들여다보게 했다. 어떤 미술 경향도 시대정신, 사회적 맥락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 않나.
전시는 장식적인 미술로 치부되며 앵포르멜이나 단색화에 비해 저평가돼온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역사를 재조명하기 위해 기획됐다. 하지만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장식적인 미술로 인식되었다는 사실 자체야말로 그것이 탄생한 배경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당시는 많은 작가들이 이런 흐름에 가세하는 등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전방위적으로 확산했는데, 그 이면에는 한국에서 도시화와 산업화가 본격화된 시대 상황이 놓여 있다.
전시를 기획한 전유신 학예연구사는 “65년부터 서울시가 도시개발 사업을 본격화함에 따라 현대적인 도시 서울의 면모는 미술가들에게도 기하학적이고도 건축적인 구조나 이미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촉매제는 67년 건축가와 미술가가 함께 참여하는 ‘한국조형작가회의’가 창립한 일이다. ‘회화, 조각, 건축의 종합적인 창조’에 기반을 두고 새로운 조형 시대를 열고자 결성된 이 그룹에는 김영주, 김창렬, 박서보, 조용익, 하종현 등 화가 22명이 참여했다. 건축 분야에서는 ‘한국 근대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김수근을 주축으로 신조형파의 회원이었던 이상순 등 28명이 가담했다. 개발연대에는 이처럼 미술과 건축이 연대했다. 장르가 다른 두 예술 분야가 찾아낸 공통의 조형언어가 기하학적 추상이었던 것이다.
이듬해인 68년 개최된 ‘한국무역박람회’(1회로 끝남)는 그 실천의 장이었다. 당시 박람회 건축물과 외관 디자인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기하학적인 조형과 옵티컬한 원색의 색조였다. 관람객이 줄지어 입장하는 박람회장 외벽을 장식한 각각 색이 다른 다이아몬드 형태의 띠는 기하하적 추상 시대의 시각적인 상징 같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에서 윤형근이 69년 제10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한 작품이 바로 기하하적 추상인 ‘69-E8’인 것이다. 윤형근은 오묘한 검은색 기둥이 갈색 바탕에 스며드는 색면 추상 작품으로 단색화의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런 그도 단색화를 하기 이전인 69년 시대적 요구에 자동 반응하듯 직선과 사선, 노랑 빨강 파랑 등 원색을 사용한 기하학적 추상을 했던 것이다. 비엔날레 출품 이후 행방이 묘연했다가 재작년 유족이 작업실을 정리하면서 발견한 이 작품은 윤형근의 작품 세계에서는 잠깐 반짝했으나 잊힌 그 시절을 증거하는 거 같다.
김한 작가의 ‘인테리어 10’(1968), 하종현의 ‘도시계획 백서 1968’(1968) 등 작품 제목들도 산업화와 도시화가 기하학적 추상의 배경에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도 기하학적 추상을 추동시킨 사회적 요인이었다. 69년 7월 21일 세기의 사건이 벌어진다. 미국의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에 착륙한 것이다. 닐 암스트롱 등 우주 비행사들이 달에 착륙하는 장면은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국내에서도 남산 야외음악당에 설치된 초대형 TV를 통해 수많은 사람이 이 역사적인 장면을 지켜봤다. 사건의 파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해 11월 아폴로 11호에 탑승했던 우주비행사 3인이 내한해 김포공항에서 시청까지 카퍼레이드를 벌였다. 우주시대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은 관 주도의 ‘잘 살아보세’ 깃발아래 살던 한국인의 마음에 와 박혔고 예술가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34세의 화가 하종현은 이렇게 말했다.
“지구상의 중력으로부터 해방되려고 하는 예술가의 열렬한 욕구와 우주 개발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70년대의 온갖 관심은 우주 미학이라고도 할 새로운 광맥을 찾을 것이다.”
많은 화가들의 작품에 과학과 기술에 대한 관심이 반영되었다. 변영원은 20세기 한국 사회가 과학과 기술이 발전한 초과학 시대, 즉 원자시대가 돨 거라 전망하며 원자시대를 대변하는 ‘합존 97번’(1969)를 그렸고, 70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파워F’를 출품한 김재관은 ‘파워’라는 제목이 당시 확산한 원자력이나 핵에너지의 파워를 상징한다고 밝힌 바 있다. 프랑스 유학파 한묵도 60년대 말 우주를 형상화한 원형과 나선형 형태의 작품을 했다. 또 이승조는 금속파이프 형태의 기하학적인 화면의 ‘핵’ 연작을 통해 과학 시대를 시각화했다.
이 전시는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60년대 후반 이후 전개된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 우주시대에 대한 기대감을 표출하며 60∼70년대를 풍미한 미술 경향으로 다루는데 그치지 않고,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그 연원을 20년대까지 확장한다.
그런데 20~30년대에도 기하학적 추상은 산업과 연결되어 있다. 조선인 대상 극장이었던 단성사, 조선극장 등이 상영할 영화 프로그램을 소개하고자 제작한 전단에서 기하학적인 구성과 원색의 색면을 이용해 추상적으로 디자인한 예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잡지 표지에서도 ‘개벽’의 후신인 잡지 ‘제일선’(第1線)은 기하학적인 추상에 기반을 둔 표지 디자인을 선보였다. ‘제일선’ 표지의 디자인을 담당한 이는 일본 가와바타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기자이자 만화가로 활동했던 김규택이었다.
한국전쟁 직후인 57년 화가, 건축가, 디자이너가 연합해서 결성한 신조형파에서도 이러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 그룹은 건축을 기반으로 순수 미술과 응용미술, 예술과 기술을 통합하고자 했던 독일의 건축, 예술학교인 바우하우스를 모델로 삼았다. 바우하우스는 예술 그 자체를 지향한 것이 아니라 사회에 복무하는 예술을 꿈꿨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시대를 여는 과정에서 미술가, 건축가, 디자이너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했던 바우하우스처럼 신조형파는 한국전쟁 이후 국가 재건기에 미술, 건축, 디자인의 새 역할을 모색했다.
이처럼 기하하적 추상미술을 관통하는 예술 정신은 예술을 위한 예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복무하거나 시대 분위기를 반영하는 사회적 예술이었다. 예술의 역할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하는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내년 5월 19일까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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