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위기인지도 모르는 윤 대통령과 보수세력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7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혁신위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 남소연 |
지금의 보수진영 내에서 공신력을 갖고 혁신을 외친 집단으로는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회(혁신위)가 가장 두드러진다. 인요한 혁신위는 지금의 보수세력이 보여줄 수 있는 상황 인식의 최대치를 반영한다.
지난 10월 26일 구성된 혁신위는 다음날인 27일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준석 전 대표 등에 대한 징계 취소를 제1호 안건으로 결정했다. 11월 3일의 제2호 안건은 국회의원 특권 혁신에 관한 것이었다. 이와 함께 당 지도부 및 중진과 친윤계의 총선 불출마 혹은 수도권 험지 출마에 대한 촉구가 있었다.
그 뒤 여성 및 청년의 정치권 진입 장벽 완화에 관한 제3호 안건, 상향식 공천 및 컷오프에 관한 제4호 안건, 과학기술 전문가 우대 및 R&D 등에 관한 제5호 안건이 나왔다. 11월 30일의 제6호 안건은 그달 3일에 나온 불출마 및 험지 출마 촉구를 공식화하는 것이었다. 여섯 안건 중에 즉각 실현된 것은 이준석 등 징계 취소(제1호)와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비서관 신설(제5호)이다.
인요한 혁신위는 보수 정당의 통합을 도모하고 화합을 촉진하며, 국회의원 특권을 줄이고 공천 제도를 혁신하며, 집권당 주축들에게 정치적 제약을 가하고 여성과 청년의 정치 참여를 활성화시키며, 과학기술자를 우대하고 이 분야 지원을 늘리는 쪽으로 혁신 방안을 제시했다. 이런 방향으로 윤 정권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혁신위의 상황 진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구에 대한 당내 지지가 두터웠다면, 수용 여하에 관계없이 더 많은 안건들이 제안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국민의힘 중추세력이 제6호 혁신안까지 내는 데서 상황이 종결됐다는 점이다.
윤 정권 위기의 실체
윤 정권이 민심을 잃은 것은 위기에 대한 진단과 대처법이 국민들의 눈높이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윤 정권은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한다는 명분하에 노동 탄압 및 언론 탄압을 감행했다. 국민적 합의도 없이 한·일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극단적인 대북 적대로 안보 불안을 조성했다. 미국의 세계전략에 편승하며 한중관계를 훼손시켜 경제문제에도 지장을 초래했다.
▲ 윤석열 대통령이 11월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이런 실정은 국민적 비판과 논란을 낳았다. 그러므로 민심이반의 원인을 이런 데서 찾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인요한 혁신위는 이 중에서 아무것도 건드리지 못한 채 "용감하게 상경하라!"며 변죽만 울리다가 막을 내렸다.
독재·폭정·냉전·매국·친일 등의 키워드를 떠올리게 만드는 윤 정권의 잘못된 정치는 핵심 지지층을 단결시키는 한편, 중도층을 정권으로부터 밀어내고 있다. 지난 8일 보도된 한국갤럽 여론조사①에 따르면,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이겨야 한다고 응답한 중도층 유권자는 26%였다. 무당층 응답자 중에서는 21%가 여당을 응원했다.
지난달 13일 보도된 리얼미터 여론조사②에서는 윤 대통령에 대한 중도층의 부정 평가가 65.9%였다. 다른 조사들에서는 이보다 높은 수치가 많이 나온다. 65.9%라는 수치만으로도, 중도층 민심이 정권을 떠나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의 위험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국민의힘 중추세력이나 인요한 혁신위나 오십보백보다. 인요한 혁신위는 위기를 진단하는 한국 보수의 역량이 땅바닥에 떨어져 있음을 잘 보여줬다.
▲ ‘명품뇌물 종합비리 특급범죄자 김건희를 특검하라 -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68차 촛불대행진’이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부근 지하철 한강진역앞에서 촛불행동 주최로 열렸다.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용산 대통령실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
ⓒ 권우성 |
위기를 진단하는 보수의 역량
노태우 정권 때 보건사회부장관과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낸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집필한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 "노태우는 그런 사람이었다"며 "돌다리를 두드려보고 건너는 사람 정도가 아니라, 두드려보고 또 두드려보고도 건너지 않고 걱정하는 사람이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노태우를 비롯한 당시의 보수세력이 6월항쟁 이후에 많이 두드려본 것 중 하나는 민심의 동향이다. 이들은 혁신을 하지 않으면 국민들이 또다시 들고 일어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갖고 국민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개혁이 없으면 혁명이 일어난다"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1989년 9월 4일자 <경향신문> 4면 좌상단 기사는 노태우의 경제 참모들인 조순 부총리와 문희갑 경제수석 등을 두고 "이들은 강연회·정책설명회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런 취지의 발언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정치 참모가 아닌 경제 참모들이 민중혁명 가능성을 운운하고 다녔다는 것은 보수진영의 위기의식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준다.
이 시기에는 노동운동이 이전 어느 때보다 활발했다. 이에 대한 혐오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윤 정권과 달리 이 시기 보수 정권은 노동운동을 억압하면서도 제한적이나마 경제민주화 조치를 시행했다. 그런 식으로 민심을 달래보려 했던 것이다.
1989년에 토지공개념 3법인 택지소유상한법·개발이익환수법·토지초과이득세법이 제정되고 1990년에 재벌의 비업무용 토지에 관한 매각 조치가 이뤄진 것 등은 당시의 보수세력이 지금의 보수보다 더 교묘하기도 하고 품이 더 넓기도 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6월항쟁 이후의 보수진영은 자신들의 구심점을 '보통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그해 10월 6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노태우 민정당 총재가 "보통 수준의 대다수 국민의 뜻을 모아 나라를 융성케 하는 위대한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역설한 것은 보통 사람들이 들고 일어난 6월항쟁을 보면서 그 시절 보수가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를 시사한다.
그것은 보통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하는 척할 필요가 있다는 깨달음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런 '척'도 하지 않는 윤 대통령과 지금의 보수에 대비되는 일이다.
1990년 전후의 보수가 외형상으로나마 그런 시늉을 했다는 것은 극우단체들의 '신분세탁'에서도 느낄 수 있다. 삼청교육대 인권탄압의 주범인 사회정화위원회가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로 둔갑한 것은 1989년 만우절이다.
한국반공연맹이 부담스런 단어가 된 '반공'을 빼고 한국자유총연맹으로 개명한 것은 그해 2월 10일이다. 1955년에 한국아시아민족반공연맹으로 출발해 1963년에 한국반공연맹으로 개편된 이 단체가 새삼스럽게 창립대회를 연 것도 1989년 만우절이다. 노태우 정권이 기존의 악명 높은 극우 관변단체들과 무관하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정권에 대한 반감을 감소시키는 작용을 할 만한 일들이었다.
노태우 정권이 극우단체들과의 인연을 실제로 정리한 것은 아니다. 일종의 눈속임이었다. 윤 정권은 이런 눈속임마저 하지 않는다. 국민 앞에 정직하다기보다는 국민을 무시하고 있다고 평할 수밖에 없다.
경제위기에 대한 잘못된 진단과 대처에 더해 노동·언론 탄압, 한·일 군사협력과 안보 불안, 미·일 경도에 의한 한·중 경제관계 훼손, 역사 문제에 대한 극우적 접근 등으로 인해 국민들의 심기가 날카로워진 이 상황에서도, 윤 정권은 극우단체들과 노골적으로 제휴하고 있다. 극우 유튜버들이 자유총연맹 자문위원이 되게 하고, 대통령이 이들 단체에 가서 축사도 해주고 있다.
윤석열 정권이 그처럼 어리석은 길을 걷는데도, 인요한 혁신위원회는 위기의 본질을 전혀 지적하지 못했다. 보수세력의 상황 인식이 얼마나 안일한지를 느끼게 해준다. 혁신위원회가 설치돼야 할 곳이 국민의힘뿐 아니라 보수세력 전체라고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① 12월 5-7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 대상, 무선전화 무작위 표본 대상 전화조사원 면접 방식, 응답률 13.1%. ② 11월 6-10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2503명 대상, 무선(97%)·유선(3%) ARS(자동응답)전화 방식,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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