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수사고 처리 잘 했더니, 층간소음까지 이해받았다

윤용정 2023. 12. 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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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겪으며 아래층 어르신과 한층 친해진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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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정 기자]

외출 중이던 어느 날, 우리집 아래층 어르신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래층 어르신이 무슨 일이지? 애들이 너무 시끄럽게 하고 있나? 외출 중이었던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천장에서 물이 한 바가지 쏟아졌어."
"네?"

시끄럽다는 말보다 더 무서운 말이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아래층에 가보니 거실과 주방사이 천장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고 그 아래 놓인 세숫대야에 물이 반쯤 차 있었다. 속상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최대한 빨리 문제를 찾아서 해결할게요."

누수 상황일 때 중요한 건 
 
▲ 구멍난 천장 우리 집 누수로 아래층 천장에 물이 쏟아졌다
ⓒ 윤용정
 
작년에 우리 집 천장에도 물이 스민 적이 있다. 주방 천장 벽지가 얼룩덜룩해져서 만져보니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이 일로 윗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윗집 여자가 찾아왔다. 

"우리 집에는 아무 문제도 없어요. 우리 집 때문에 그런 게 아닌 것 같아요."
"아니, 그럼 이 물이 아래서 거꾸로 타고 올라가기라도 했단 말인가요?"
"전 모르죠."

적반하장 같은 윗집 여자의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남편이 윗집 여자에게 변호사를 선임하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윗집은 그제야 누수탐지 업체를 불러 싱크대 배관에 문제가 있다는 걸 찾아냈다. 그 여성은 나중에 우리 집 천장 도배를 하러 와서는, 천장 전체를 해주기는 부담스럽다며 일부만 해드리면 안 되겠냐고, 사정 좀 봐달라고 내게 부탁을 했다.

그동안 해온 걸 봐서는 일부가 아닌 전체를 다 해주는 게 맞다고 하고 싶었고, 원칙적으로도 티 안 나게 복구해 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 나는 마음이 약해져서 일부만 하라고 했지만 가끔 천장을 볼 때마다 윗집 여자가 얄밉게 느껴진다.

유경험자의 지혜, 배관 교체에서 도배까지 

이런 경험이 있는 우리는 아래층 어르신의 전화를 받았을 때, 이웃 간에 마음 상하지 않게 빨리 해결해 드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급하게 누수탐지 업체를 인터넷 검색으로 연락해 불렀다. 몇 시간 뒤에 욕실 온수배관이 터져 물이 새는 걸 찾아내어, 그 배관을 교체하는 공사를 했다.

우리 집 욕실 공사가 끝나고, 작은 선물세트를 사들고 아래층을 찾아갔다.

"저희 집 욕실 온수관이 샜더라고요. 공사를 했으니 이제 물은 안 떨어질 거예요. 도배는 천장이 완전히 마른 후에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래요. 천천히 해요."
"천장이 저렇게 보기 흉해서 어떻게 해요?"
"괜찮아요."

한 달이 지났다.

"이제 천장이 다 말랐을 거 같은데, 도배 업체분이랑 내일 찾아갈게요."
"그래요. 돈을 많이 써서 어쩐대."

싫은 소리 한마디 안 하시고 오히려 우리를 걱정해 주셨다.

"괜찮아요. 보험 들었어요. 도배하면 먼지 많이 쌓일 텐데 번거롭게 해 드려서 너무 죄송해요."
"아이고, 괜찮아 괜찮아."

아래층 도배비용은 일상생활배상책임 보험에서 보상이 되기 때문에, 부담 없이 아래층 천장 전체를 도배해 드렸다.
 
▲ 천장 복구 구멍난 아래층 천장을 복구해 드렸다
ⓒ 윤용정
 
보험금 청구를 위해 피해자인 아래층 어르신의 서명을 받아야 했다. 쿠키를 한 상자 사들고 아래층 벨을 눌렀다.

"도배하면서 불편한 건 없으셨어요?"
"없었어요. 꼼꼼하게 잘 됐어요."
"보험금 청구를 해야 하는데 여기 서류에 서명 좀 부탁드려요."

서명을 받아 돌아가려는데 아래층 어르신이 집에 맛있는 사과가 있다며 몇 개를 싸주셨다. 그동안 아래층 어르신과는 길에서 마주치면 인사만 주고받으며 지낸 정도였는데 이번 일로 인해 부쩍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평소에 묻지 못했던 말을 용기 내어 물었다.

"평소에 저희 애들 때문에 많이 시끄러우시죠?"
"아이고, 애들 있는 집이 다 그렇지. 난 별로 모르겠어."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수 사고 처리를 잘했더니 층간 소음까지 이해받았다. 난 그저 어차피 해야 되는 일, 웃으면서 한 것뿐인데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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