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수사권 잃은 국정원, 안보 위해자 정보 수집은 가능하다

정영교 2023. 12. 12.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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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전경. 사진 국가정보원

국가정보원이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관 뒤 제한적으로나마 수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놨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로 생길 안보 공백을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게 정부 안팎의 평가다.

정부는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정원 소관 법령인 '안보침해 범죄 및 활동 등에 관한 대응업무규정' 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해당 시행령은 대공수사권 이전 뒤 유관기관과의 업무협력 방식 등을 규정했다. 향후 국가안보 침해 범죄를 다룰 때 국정원 직원들의 직무 범위도 명확히 했다.

이는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 폐지를 골자로 하는 개정 국정원법이 2024년 1월1일 시행되는 데 따른 조치다. 개정법이 시행되면 국정원은 직접 대공수사는 할 수 없고, 관련 정보만 수집해 경찰로 넘길 수 있다.

구체적으로 국정원은 국가안보에 반하는 행위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거나 추적할 수 있고, 안보위해자에 대한 행정 절차 및 사법 절차를 지원하기 위해 활동할 수 있다. 이와 관련, 국정원장은 경찰, 검찰 등 안보침해 범죄를 다루는 유관기관의 수사에 국정원 직원을 참여시킬 수 있다. 또 국가안보 침해 활동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습득한 유류물이나 임의로 제출받은 물품 등을 보관할 수 있다.

'정보맨'들 사이에선 정부가 대공수사권 이관에 따른 혼란을 줄이고, 경찰이 대공 수사력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공백을 줄이기 위해 최소한의 수습책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을 역임한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은 "정부가 시행령을 통해 범죄 상황에 대한 국정원의 접근이 가능하게 한 것은 내년 수사권 이관에 따른 일종의 공백을 한시적으로 메꾸는 의미가 있다"며 "제3국에서의 수사나 국제 네트워킹 등 경찰의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분야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전문가들 사이에선 국정원이 적극적인 정보공유를 통해 뒷받침한다고 하더라도 경찰이 단기간 내에 충분한 대공수사 능력을 갖출 수 있을지 우려를 표하는 시각이 여전하다. 국내외 네트워크를 활용한 첩보 수집과 깊이 있는 분석 평가를 통해 정보를 생산해 내는 능력 등이 갖춰져야 제대로 된 대공 수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들여 여러 사건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입체적으로 상·하부 조직을 완전하게 파악하는 게 안보 위협을 뿌리뽑을 수 있는 대공 수사의 기본이다.

국정원 로고. 사진 국가정보원

이에 더해 집중·총력 수사를 통해 단기간에 성과를 끌어내는 수사방식에 익숙한 경찰이 대공수사를 전담할 경우 일선 수사관들이 성과 압박에 내몰릴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관련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대공 수사력 보강을 위해 채용한 일부 전문인력에게도 성과를 압박하는 분위기"라며 "대공수사 담당 조직에선 성과가 미진할 경우 전공과 상관없이 일선 지구대에 배치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벌써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시행령 마련을 두고 국정원이 사실상 대공수사권 폐지를 무력화하기 위한 꼼수를 쓴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시행령에서 국정원 직원의 수사 참여가 가능하게 한 건 수사권에 준하는 권한을 계속 보유하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반면 국정원은 법률 개정에 따라 조정된 직무범위를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국정원은 "대공수사권 폐지 이후 안보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가정보원법에 규정된 안보침해 범죄 등 관련 정보수집과 대응조치(확인·견제·차단)에 주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국정원은 시행령 입법예고 과정에서 안보위해자의 수사 및 재판확정기록 등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을 삭제했다. 입법예고 이후 경찰청 등 유관기관의 수정 의견과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권고사항이 국정원에 전달됐다고 한다. 삭제된 조항은 국정원이 필요한 경우 검찰청·법원·각급 수사기관 등에 소송·사건기록의 열람과 복사를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특히 국정원의 요청을 받은 기관은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그 요청에 따라야 한다는 의무 조항까지 포함해 야당에서는 독소조항이란 지적이 나왔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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