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C 받아쓰기 합의문”…기후총회 '화석연료 퇴출' 무산될 듯

제2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폐막을 하루 앞두고 공개된 합의문 초안에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phase out)’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11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이 보도했다. 최대 안건이던 화석연료 퇴출·감축 합의가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올해 기후총회를 두고 "석유수출국기구(OPEC) 요구를 받아쓰기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한 사람이 '전쟁을 멈춰라'와 '친환경으로 가자'라고 적힌 표지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날 총회 의장국인 UAE가 공개한 합의문 초안에선 2050년 화석연료 사용·생산 제로(0)를 목표로 한 '단계적 퇴출'은 물론 최종 시한을 명시하지 않고 점진적으로 줄이는 '단계적 감축'이란 문구 모두 담겨있지 않다고 FT는 전했다. 앞서 외신들은 “두 문구 중 하나라도 최종 합의문에 포함되는지가 COP28의 성공 지표”(영국 가디언)라고 봤다.

합의문 초안엔 대신 “화석연료의 소비와 생산을 공정하고 질서정연한 방식으로 감축할 수 있다”는 표현만 담겼다. 또한 2015년 파리기후협정에 따라 2050년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0)를 달성하기 위한 8가지 온실가스 감축 선택지가 적혔다.

칼리드 알메 하이드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부 장관이 11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의 새 회담 세션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합의문에 화석연료 단계적 퇴출·감축 문구가 들어가지 못한 건 산유국들의 반대 때문이다. 로이터 통신은 OPEC를 이끄는 사우디아라비아가 UAE에 압력을 가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8일 하이탐 알가이스 OPEC 사무총장은 "화석연료 퇴출을 반대하라"는 내용의 서한을 13개 회원국에 발송했다.

환경단체와 참가국들 사이에선 비판이 터져나왔다. 기후 운동가로 활동하는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X(옛 트위터)에 “이 비굴한 초안은 마치 OPEC의 요구를 또박또박 받아쓴 것처럼 보인다”고 비판했다. 비영리단체 참여과학자연대(UCS)는 “초안에 (감축을) ‘할 수 있다’라는 표현은 온실가스 감축을 각 국가의 ‘선택사항’으로 남겨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새로운 회담 세션으로 향하는 참가자들을 두고 시위대가 '화석연료 종식' 스티커를 붙인 채 손을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위협받는 섬나라들의 반발은 한층 거셌다. 군소도서국가연합(AOSIS)은 “사망 증명서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며 “화석연료 단계적 퇴출에 대한 강력한 약속이 제외된 합의문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태평양 마셜군도의 존 실크 대표는 초안을 수정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겠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폐회를 하루 앞둔 현재 미국·유럽연합(EU) 등 최소 100개국 이상이 최종 합의문에 ‘단계적 퇴출’ 문구 삽입을 요구하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그러나 최종 합의문이 초안보다 진전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최종 합의문은 198개 참가국 모두의 동의가 필요해, 한 나라라도 반발하면 채택될 수 없기 때문이다. BBC는 “이번 총회는 공식적으로 12일에 폐막하지만 합의문을 두고 논쟁이 길어질 경우 비공식 논의가 이어질 수도 있다”고 전했다.

문상혁 기자 moon.sanghy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