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아주 애매한’ 돌고래 보호…“신고도 적발도 어렵다”
돌고래 근접 선박 속출하지만
지난 4~10월 과태료 부과 3건 그쳐
제주 연안 일대에서 각종 선박들이 해양보호생물종 남방큰돌고래에 접근해 해양생태계법을 위반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신고와 단속이 이뤄지더라도 과태료 처분조차 제대로 내려지지 않고 있다. 현장 관계자들은 “해양경찰이든 시민단체든 신고된 단속 영상만으로는 위반 여부를 판별할 수 없다”며 “단속·적발이 어려운 애매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국민일보가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제주 서귀포시)을 통해 확보한 ‘해양생태계법 제22조 위반사례 신고 및 처분 세부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부터 10월까지 신고가 접수된 8건 가운데 과태료가 부과된 사례는 3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양수산부는 나머지 5건의 처분 결과에 대해 “위반 여부가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적발된 선박은 동력수상레저기구가 6척, 요트 1척, 낚시어선 1척이었다.
지난 4월 19일 개정된 해양생태계법은 특정 선박이 남방큰돌고래에 50m 이내로 접근하는 행위와 규정 속도를 위반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제주 연안에 120마리 남짓 남아 멸종 위기에 처한 남방큰돌고래를 보호하려는 취지다. 제주에선 선박 선수부나 프로펠러에 등지느러미가 찢겨나간 돌고래가 심심찮게 발견되는 실정이다.
김미연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 부대표는 “남방큰돌고래는 무리를 지었다가 흩어지는 습성(이합집산)이 있고 낮에 주로 먹이활동을 비롯한 다양한 행동을 보인다”며 “선박의 접근이 돌고래의 행동 교란을 불러와 생존성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방큰돌고래를 보호하기 위한 법과 제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관광 선박 등의 위반 여부를 입증할 증거가 사실상 ‘영상’이 유일한 상황에서, 영상만으로는 ‘선박과 돌고래의 이격 거리’를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태료 처분 여부를 결정하는 제주도청의 한 관계자는 국민일보에 “영상에선 이격 거리를 가늠하긴 어렵다”며 “과태료 처분이 어려운 애매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국민일보가 해수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확보한 ‘관찰관광 위반 단속·처분 가이드라인’을 보면 과태료 처분을 위해선 “명확하게 확인 가능한 자료”가 요구된다. 그러나 해상을 촬영한 영상에선 원근감이 과장되기 쉽고, 거리 측정을 위해 기준 삼을만한 지형지물도 찾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육지에서 해상을 촬영한 영상은 방향과 확대 여부, 각도 등 때문에 이격거리가 왜곡되기 쉽다는 문제도 있다.
이처럼 단속이 어렵다 보니 SNS에서는 돌고래에 접근하는 선박 영상이 마치 합법적인 ‘관광 영상’처럼 확산하고 있다. 지난 10월 14일 제주도를 찾아 근접 선박을 우연히 촬영한 한민경(43)씨는 “인터넷에선 어선 주변을 살펴보면 돌고래를 볼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이 많다”며 “50m 이내 접근 금지 규정은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더구나 선박이 3척 이상 돌고래 무리 근처에 포진하면 영상 신고 및 단속을 하더라도 과태료조차 매길 수 없다. 해양생태계법 시행 규칙은 3척 이상의 선박이 돌고래 무리에 300m 이내로 접근하는 것을 제한한다. 앞서 선박 두 척이 300m 이내에 들어섰다면 다음 선박은 300m 밖에서 대기해야 하는 것이다.
제주도청 관계자는 “규정상 세 번째로 진입한 선박이 과태료 대상이지만, 전후 상황을 담을 수 없는 영상의 특성상 세 번째로 진입한 선박을 알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제주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가 지난 8월 15일 서귀포시 대정읍에서 촬영해 신고한 위반 선박 4척의 영상도 결국 제주도청에서 반려됐다.
현장을 고발하는 시민단체 관계자를 비롯해 과태료 처분을 결정하는 부처 관계자들까지 모두 법 적용의 한계를 호소한다. 제주도청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담당 공무원이 직접 해상에서 적발하기는 어려워 신고 제보에 의존하고 있다”면서도 “문제는 신고 접수된 영상만으로 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약골 핫핑크돌핀스 공동대표는 “해경도 해수부도 제주도도 모두 소극적인 자세로 책임 회피하기 급급하다”며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과태료 부과가 가능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김미연 MARC 부대표는 “추가적으로 남방큰돌고래 주요 서식지인 대정읍 연안을 보호구역으로 설정하는 게 실효성이 있다”며 “육지에서 500m~1㎞를 해양보호구역으로 설정하면 육지에서도 쉽게 위반 선박을 단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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