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최고령 감독의 새로운 도전, '학범슨' 여전히 통할까
[이준목 기자]
▲ [올림픽] 경기장 체크하는 김학범 감독 도쿄올림픽 축구 대표팀 김학범 감독이 뉴질랜드와의 본선 첫 경기를 하루 앞둔 2021년 7월 21일 이바라키 가시마 스타디움에서 경기장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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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시즌을 마감한 K리그가 내년을 대비한 정중동의 재정비 기간에 돌입했다. 몇몇 구단들은 감독교체를 통하여 새판짜기에 나섰다. 2023시즌을 K리그1 9위로 마친 제주 유나이티드는 김학범 전 올림픽대표팀 감독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하여 눈길을 끌었다.
김학범 감독의 K리그 복귀는 축구팬들에게 여러모로 화제가 되고 있다. 1960년생인 김 감독은 내년이면 64세가 된다. 제주 부임과 동시에 김 감독은 단숨에 K리그1 최고령 사령탑 자리를 예약했다. 올해 K리그 최고령 사령탑은 1967년생으로 외국인 사령탑인 딘 페트레스쿠(전북 현대) 감독이었고, 국내 지도자로는 54세인 홍명보(울산 현대)와 정정용(김천 상무) 감독이 그 뒤를 이은 바 있다.
김학범 감독은 현재 K리그 1, 2부를 이끄는 감독들이 현역 시절 때부터 이미 프로지휘봉을 잡아온 베테랑이다. 김 감독은 2004년 성남FC 감독(1~2기)을 시작으로 강원과 광주, 중국 프로축구 허난 젠예의 지휘봉을 잡았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는 대한민국 23세 이하 축구대표팀을 이끌기도 했다. 성남의 K리그 3회 우승, 23세 이하 대표팀의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도쿄올리픽 8강 등의 대표적인 업적을 남겼다. K리그에서는 통산 성적 288경기를 지휘해 118승 84무 86패를 기록했다.
김 감독은 실업 국민은행 축구단에서 현역 시절을 보내고 은퇴 후 은행원으로 근무하다가 축구계로 복귀하여 프로 지도자로 성공한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현역 시절에는 크게 유명했던 선수도 아니고 국가대표 경력도 없지만, 지도자로서 더 두각을 나타내어 정상급 감독의 반열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화려한 커리어 김학범 감독, 연륜 빛날까
그의 가장 유명한 별명인 '학범슨'은 전성기였던 성남FC 감독 시절, 당시 세계 최고의 감독으로 꼽혔던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과 비슷하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김학범 감독은 퍼거슨보다는 무명 지도자로 성공했다는 점이나 외골수적 이미지, 여러 구단을 거친 '저니맨' 감독이라는 특성 등에서 주제 무리뉴(로마) 혹은 클라우디오 라니에리(칼리아리 칼초)에 더 가까운 감독이다.
실제로 김 감독은 무리뉴나 라니에처럼 축구계에서 확실한 업적만큼이나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김 감독은 30여 년의 지도자 생활 동안 우승권과 강등권 클럽을 두루 거쳤고 연령대별 대표팀 사령탑까지 역임한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현직 K리그 감독들 중 김학범 감독을 능가할 만한 커리어를 갖춘 인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김 감독이 지휘봉을 잡게 된 제주는 2021시즌 4위, 2022시즌 5위를 차지하며 상위스플릿에서 선전했으나 2023시즌에는 극도의 부진을 보이며 최종 9위에 머물렀다. 2020년 제주 지휘봉을 잡은 남기일 감독은 시즌 도중인 9월에 성적부진에 책임을 지고 자진 사임했다. 잔여 시즌은 정조국 수석코치가 대행직을 맡아 팀을 이끌었다. 그나마 1부 잔류에는 무난히 성공했지만 상위권 클럽으로의 도약을 꿈꾸던 제주로서는 만족할 수 없는 성적표였다.
공교롭게도 전임자인 남기일 감독은 바로 김학범 감독의 제자이기도 하다. 남 감독은 김학범 감독의 전성기였던 성남에서 선수시절을 보내며 우승에 기여했다.
그런데 두 사람이 같은 구단의 전·후임 감독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7년 광주FC 에서도 남기일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사임하면서 김학범 감독이 후임으로 지휘봉을 물려받은 바 있다. 당시 광주가 끝내 2부리그로 강등당하면서 김학범 감독도 3개월 만에 자진사퇴하는 것으로 두 사람 다 씁쓸한 결말을 맞이했다.
남 감독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도 K리그에서 대표적인 올드스쿨형 감독으로 꼽혔고, 이는 성남 시절 김학범 감독의 리더십과 많이 닮았다. 이는 남 감독이 뛰어난 전술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선수단과의 소통이나 화합 문제라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드러난 바 있다. 그런데 제주는 남기일 감독을 떠나보내고 오히려 '원조' 호랑이 감독이라고 할 수 있는 김학범 감독을 영입했다.
김학범 감독의 풍부한 경험이 강점이라고 하지만 광주나 강원같은 하위권 전력의 클럽을 맡았을 때는 크게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직전에 맡았던 올림픽축구대표팀에서는 초반은 좋았으나 말기로 갈수록 아쉬운 모습을 드러내며 마무리가 그리 좋지 못했던 것도 우려를 자아낸다.
전술적 능력은 뛰어나지만 플랜A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종종 이해할 수 없는 독단적인 고집으로 기행에 가까운 행보를 보였다는 점은 불안요소로 평가받는다. 대표팀 감독 시절에서 K리그 감독 출신임에도 K리그 구단들의 사정을 배려하지 않는 독선적인 행태를 보인 것도 프로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이미지가 곱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23세 이하 대표팀을 오랫동안 이끌면서도 어린 선수들과의 관계에 큰 문제가 없었다는 점이나, 로테이션 및 전술변화에 적극적이었던 모습 등 과거에 비하여 발전한 부분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현재 제주의 문제가 육성과 리빌딩을 병행할 만한 시스템이 취약하다는 것인데, 클럽과 대표팀 감독을 모두 역임해본 김학범 감독의 노하우는 분명히 큰 자산이 될 수 있다.
해외에서는 60~70대를 넘겨서도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지도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당장 김학범 감독과 자주 비교되는 알렉스 퍼거슨은 72세에 은퇴할 때까지 정상급 지도자로 군림했고, 라니에리 감독 역시 72세로 여전히 현역이다. 현재 잉글랜드 크리스탈 팰리스의 감독을 맡고 있는 로이 호지슨은 무려 75세다.
반면 한국축구는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40~50대이며 60대를 넘긴 감독은 찾아보기 힘들다. 김학범 감독과 동시대에 경쟁했던 박항서 감독은 60대의 나이에 해외인 베트남 축구대표팀 사령탑을 역임하며 지도자 인생의 뒤늦은 전성기를 맞이했다. 최강희 감독도 현재 중국프로축구 산둥 타이산을 이끌며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지도자는 승리만큼이나 수많은 패배와 시행착오의 경험을 통해서도 발전한다. 베테랑 감독의 연륜과 경험은 그 자체로 귀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젊은 감독이라고 해서 반드시 더 신선하고 창의적인 것도 아니다. 김학범 감독이 제주에서의 새로운 도전을 통하여 국내에서도 60대 지도자의 성공사례를 개척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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