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초월한 남녀의 사랑... 해안도시 바투미에 가다
[이상기 기자]
▲ 흑해 너머 바투미 고층건물 |
ⓒ 이상기 |
아침에 일어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날씨가 맑고 좋다. 파란 하늘 덕분에 검은 흑해(黑海)가 푸른빛이 도는 바다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모래사장은 여전히 검다. 우리는 짐을 싸서 그리골레티 비치 리조트를 떠난다. 바투미는 이곳에서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30㎞쯤 떨어져 있다.
먼저 숩사(Supsa)강을 지난다. 전날 비 때문인지 강물이 흙탕물이다. 조금 지나자 실내체육관 형태의 공연장과 놀이공원이 보인다. 길 옆으로 천연가스관이 지나가고 있다. 바투미 식물원을 지나 터널을 빠져나오자 차량 정체가 시작된다. 길은 내리막길이다. 내리막길이라 바다 건너 바투미 고층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바투미는 시내만 따지면 15만 명의 인구를 가진 중소도시지만 현대적 고층빌딩이 즐비한 현대도시다. 바투미를 중심으로 한 아자라 자치공화국의 인구는 33만 명 정도다. 바투미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지나자 바닷가를 따라 길이 이어진다.
▲ 유람선 선착장 |
ⓒ 이상기 |
육지 쪽으로는 호텔과 레스토랑 그리고 공원이 줄지어 있다. 그 사이로 이슬람 사원도 눈에 띈다. 바투미에는 4만 명 정도의 무슬림이 거주하고 있어, 전체 인구의 25%쯤 된다. 아자라(Adjara) 자치공화국 전체로 보면 무슬림이 40%나 된다. 이것은 아자라 공화국이 1878년까지 오스만 튀르키에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1920년에야 조지아 민주공화국에 편입되었고, 1921년에는 아자라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공화국이 되었다. 1991년 조지아가 소련으로부터 독립되면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었다. 현재 바투미와 아자라 공화국의 경제와 종교는 튀르키에의 영향을 받고 있다.
고층빌딩 즐비한 해안도시 바투미를 걷다
▲ 유람선에서 바라 본 해수욕장과 고층건물 |
ⓒ 이상기 |
우리는 유람선 선착장에서 중간 크기의 유람선을 탄다. 유람선의 이름은 Sea Star 1이다. 2층으로 되어 있고, 2층에서의 조망이 좀 더 좋은 편이다. 유람선은 어항, 페리항, 유람선항, 요트항 그리고 해수욕장을 한 바퀴 돈다. 어항 쪽에는 어판장이 형성되어 있고, 요트항에는 수 많은 요트들이 정박해 있다. 해수욕장에는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선탠과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굵은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진 해수욕장이 크지는 않다. 유람선이 아닌 쾌속선 형태의 요트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유람선은 음악에 맞춰 파도를 타면서 천천히 움직인다. 흑해의 둘레는 5,800㎞에 이른다. 그 중 조지아가 차지하는 부분은 310㎞다. 그 넓은 바다에서 우리는 바투미 해안 2㎞ 정도를 왕복하는 것이다. 유람이라고 해야 사실 해안의 빌딩을 보는 것 외에 별 특징은 없다. 해수욕장의 피서객들을 보는 재미가 조금은 있다. 도시 반대쪽 우거진 숲속으로 잘 지어진 주택들이 보인다. 그러나 열흘 이상 카프카스 여행을 함께 한 사람들끼리 어울리며 편안하게 이야기 나누는 즐거움이 더 크다. 우리는 늘 육지에서 바다를 보지만, 바다에서 육지를 바라보면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다.
▲ 알리와 니노의 헤어짐 |
ⓒ 이상기 |
유람선을 타고 나서 각자에게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흑해에 발을 담글 시간이다. 해안을 따라 해수욕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이때 눈에 들어오는 조형물이 있다. '알리와 니노(Ali and Nino)'다. 사랑하는 청춘 남녀를 표현한 것으로 조지아 조각가인 크베시타제(Tamara Kvesitadze)가 2007년 만들었다. 이곳 바투미 해변에 설치된 것은 2010년이다. 이 작품의 원래 이름은 '남과 여(Man and Woman)'였다. 그러나 타이틀이 너무 일반적이어서 사이드(Kurban Said)의 소설 <알리와 니노(Ali and Nino)>에서 이름을 차용하게 되었단다.
소설 속 알리는 아제르바이잔 출신의 무슬림이고, 니노는 조지아 출신의 기독교도였다. 이들 두 연인은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랑하고 결혼하고 이별한다. 전쟁이 끝나고 러시아 군대가 아제르바이잔을 공격하자, 니노는 딸을 데리고 조지아로 피신한다. 그러나 알리는 간자(Ganja)에 남아 러시아군과 싸우다 죽음에 이르게 된다.
▲ 알리와 니노의 만남 |
ⓒ 이상기 |
알리와 니노는 처음에 먼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본다. 시간이 지나며 둘은 가까워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손을 잡을 수 있을 정도가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이들은 점점 멀어진다. 소설에서는 알리가 죽음을 맞이하지만, 조형물에서는 두 연인의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된다. 그들 사이에는 딸도 없다. 소설이 알리와 니노의 일대기라면, 조형물은 사랑과 이별이라는 메시지가 중심이 된다. 소설과 미술은 이처럼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가르침과 즐거움을 준다.
▲ 흑해에 발 담그는 사람들 |
ⓒ 이상기 |
이들 조형물을 지나면 해수욕장이 있고 또 흑해 전망대가 나온다. 수영복이 준비되어 있지 않고, 시간도 없어 우리는 해수욕장을 지나친다. 해변으로는 오락과 관련된 시설들이 있다. 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길을 가면 전망대에 이른다. 바다 안쪽으로 이층 구조물을 설치해 바다 전망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사실 바다 전망이라고 해야 별 게 없다. 흑해에는 섬이나 리아스식 해안이 없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수평선이 보이는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또 이 지역 해안은 바닥이 자갈이어서 물이 더 깨끗하게 보인다. 그 자갈 위로 파도가 부딪쳐 하얀 포말이 생겨난다. 그 때문에 바다가 더 시원하게 느껴진다.
전망대를 내려온 우리는 잠시 흑해에 발을 담근다. 시원한 느낌이 발을 타고 스며든다. 관광객들이 많지는 않지만 이들 모두 흑해 바다의 여름을 즐긴다. 수영을 즐기는 사람은 별로 없고, 의자에 누워 일광욕을 즐긴다.
▲ 분수 광장 |
ⓒ 이상기 |
동상 주위에는 일본 만화영화의 캐릭터 그림이 세워져 있다. 한쪽에서는 일본 가라테 도복을 입은 어린이들이 출전을 준비하고 있다. 분수광장을 만드는 데 일본 자본의 지원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이곳에서는 야간에 음악에 맞춰 분수가 춤는 추는 분수쇼가 펼쳐진다고 한다. 낮에도 분수가 가동하는데, 그렇게 멋진 모습은 아니다. 바투미 대로는 감사후르디아(Konstantine Gamsakhurdia) 대로로 이어진다. 감사후르디아는 조지아 모더니즘의 대표 작가로 <디오니소스의 미소><다비드 IV> 같은 소설을 썼다. 그는 평생 소비에트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며 살았다.
▲ 감사후르디아 대통령 탄생 80주년을 기념하는 우표 |
ⓒ public domain |
2003년 11월 장미혁명으로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이 물러나고, 2004년 1월 사카슈빌리(Mikheil Saakashvili)가 제3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즈비아드의 명예 회복과 복권이 이루어졌다. 조지아 1TV에서 만들어진 프로그램 <100명의 조지아 위인>에서 세 번째로 위대한 사람으로 선택되기도 했다. 2019년에는 조지아 의회의 본회의장에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 2020년 여론조사에서는 조지아인의 81%가 그를 진정한 애국자로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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