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 CEO '셀프연임' 막는다…“승계계획 미리 문서로 공개해라”
‘셀프 연임’ 등으로 물의를 빚었던 은행지주사 최고경영자(CEO) 승계절차가 앞으로 문서 형태로 미리 공개된다. CEO 평가 기준과 절차를 확정 공개해, 불공정 시비를 막겠다는 의도다. 또 이사회가 실질적인 경영진 견제 역할을 할 수 있게 구성을 전문화하고 독립성도 확보하기로 했다.
‘셀프 연임’ 막는다…"경영평가에 반영할 예정"
12일 금감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은행지주ㆍ은행 지배구조 관한 모범관행(best practice)’를 발표했다. 강제 규정은 아니지만, “금감원 정기 검사에서 제대로 하고 있는지 체크한 뒤 경영실태평가에 정확하게 반영할 예정”(박충현 금감원 부원장보)라고 했다.
우선 금감원은 “CEO 후보군 관리ㆍ육성부터 최종 선정까지 포괄하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승계계획을 마련하고 이를 문서화해라”는 원칙을 제시했다. CEO 선임 절차가 미리 공개되면, ‘셀프 연임’ 같은 자의적 결정을 미리 막을 수 있다는 의도다. 계획 공개 시점은 “상시로 마련해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고, 계획이 바뀌면 최소한 롱리스트(long-list) 전 세부 사항을 확정하라”고 했다.
승계절차도 “최소 임기만료 3개월 전 개시 시점을 명문화해라”고 가이드를 내놨다. 금감원에 따르면 최근 8개 은행지주 최종 CEO 선정 기간은 평균 45일(최소 27일~최대 79일)에 그쳤다. CEO 선임이 짧은 기간에 이뤄지면서 제대로 된 후보군 평가가 어렵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시간을 확보하라는 의도다. 적정 CEO 후보군을 미리 관리ㆍ육성하라는 원칙도 제시됐다. 후보군은 따로 평가해 부적합 후보를 제외하고, 연 1회 이상 관리실태도 점검해야 한다. 후임 CEO 인재풀을 미리 구성해 줄세우기식 인사 관행을 막겠다는 뜻이다.
금감원은 이사회의 독립성과 역할 강화를 위한 모범관행도 발표했다. 이사회가 ‘거수기’ 역할에 그치다 보니 은행권 내부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서다. 특히 금감원은 사외이사진 구성과 관련해 금감원은 “학계(37%) 편향성이 크고, 여성 이사(약 12%) 비중이 작다”면서 이와 관련한 보완을 요구했다. 또 적정 수의 이사 확보도 지적됐다. 이사회의 역량 평가(Board Skill Matrix) 기준을 마련해 후보군 선임 등에 활용할 것도 제시했다.
이는 그간 CEO 승계절차가 불투명하게 진행된다는 비판 때문이다. 은행지주사는 뚜렷한 주인(대주주)이 없다 보니, 기존 CEO가 별다른 검증 없이 연임하거나 후계자 선정에 부당한 입김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과정에서 CEO가 자신과 가까운 사람으로 이사진을 구성하며, 이사회 견제 기능을 마비시키는 이른바 ‘참호 구축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올해 초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이 연임을 도전했다가 중도 사퇴했다. 손 전 회장은 라임 펀드 문제로 ‘문책 경고’ 받았지만, 연임에 나서 비판을 받았다. 조용병 전 신한금융 회장도 3연임 가능성으로 논란을 빚다가 용퇴 의사를 밝혔다. 최근 KB금융그룹 차기 CEO 승계에 대해서도 이복현 금감원장은 “(승계) 대상을 다 확정한 후 기준과 방식을 정했다”고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하지만 금융사 자율 영역인 지배구조와 이사진 구성에 금감원이 사실상 세부 지침을 내리면서, 일각에서는 관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과거 문제 됐던 관행을 고칠 필요는 있지만, 금감원이 구체적 승계 절차나 이사진 구성, 방향성까지 정해주는 것은 지나친 월권이라는 것이다. 향후 금감원이 은행지주사의 지배구조 문제에 개입할 명분을 쥐게 되면서, CEO 승계 문제 등에 금융당국의 입김이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주인이 없고 공적 역할이 큰 은행지주사 특수성 때문에 지배구조에 금융당국이 어느 정도 가이드를 제시하는 것은 필요하다”면서도 “각 회사의 특수성 고려 없이 지나치게 세부 지침을 강요하면, 관치 우려가 더 커지고 은행 경영상 정부 실패도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관치 논란도…“특정 인물 승계 좌지우지 안 돼”
실제 그간 은행지주사의 잘못된 CEO 선임에는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과도한 입김 행사가 원인이었다는 시각도 만만찮다. 정권에 가까운 인사들이 CEO에 선임되면서, 지배구조가 왜곡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간 문제 됐던 은행지주사 관행을 개선한다는 의도는 바람직하다”면서도 “다만, 지배구조 개선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정부·정치권이 금융 인사에 개입할 수 없게 막는 조치들도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빠진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우려와 관련 이복현 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CEO를 누구 뽑냐는 전적으로 이사회의 권한”이라면서 “특정 인물ㆍ흐름에 (승계 절차) 좌지우지되기보다 공정하고 사전 검증한 방법으로 진행되는 게 좋겠다는 (취지에서) 준비한 내용을 말씀드렸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PF, 시장 원칙 따라 정리 불가피”
한편, 이 원장은 최근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는 부동산 PF 문제에 대해 “사업성이 다소 조금 미비하거나 문제가 있는 건설사ㆍ금융사는 기본적으로 시장 원칙에 따라서 적절한 형태의 조정 내지는 정리돼야 한다는 대원칙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원장은 “옥석 가리기를 통해 옥으로 판명되는 사업장이나 회사에 대해서는 적절한 유동성이 공급되도록 금융사와 협력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규제 완화 등 조치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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