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멍' 외국인 17만명 찾았다…국립중앙박물관 연 400만 돌파
지난 8일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에서 개막한 특별전 ‘탕탕평평蕩蕩平平-글과 그림의 힘’의 영문 제목은 ‘Wise and Unbiased: Royal Philosophy in Paintings and Calligraphy of the Joseon Dynasty’. 조선 영·정조 시대 탕평책을 직역하면 ‘policy of balance and impartiality’이지만 이렇게 해선 외국인 관람객에게 의미가 닿지 않을 수 있다. 김혜원 미술부장은 “영어 이용자를 위한 박물관 서비스는 이제 필수적”이라면서 “전시 제목을 옮길 땐 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도 이해할 수 있게 별도로 작명한다”고 소개했다. 18세기 인물화와 궁중기록화가 주를 이루는 이 전시회에도 적잖은 외국인들이 관심을 보이며 각종 ‘인증샷’을 찍고 있다.
이 같은 안팎의 호응에 힘입어 국립중앙박물관(이하 박물관)의 올해 관람객이 400만명을 돌파한다. 박물관은 12일 “지난해 341만명을 뛰어넘고 2014년 최고기록(353만명)보다 13% 증가해 역대 최다인 400만번째 관람객이 13일 입장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2005년 박물관의 용산 이전 이후 현재까지 누적 관람객 수도 5400만 명을 넘어섰다.
특히 외국인 관람객이 17만명으로 지난해 7만 명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의 13만 명보다 30% 이상 증가했다. 박물관 측은 “방탄소년단(BTS)의 가상졸업식 '디어 클래스 오브 2020' 등 박물관에서 촬영한 영상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해 해외 인지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 기간인 2020년 BTS가 졸업식을 열지 못한 전 세계 학생들을 위해 제작한 이 영상은 유튜브에서 1억뷰 이상을 기록했다.
박물관의 연간 관람객 증가는 그간의 대형 기획전시들이 좋은 반응을 얻은 결과다. 올 여름 영국 내셔널갤러리 소장 명화를 국내 최초로 공개한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는 총 36만 명이 다녀가 박물관의 역대 기획전 중 네 번째 흥행성적을 냈다. 지난 겨울부터 이어진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은 올해 17만 명이 들어 총 32만 명이 찾았다.
지난해 고(故) 이건희 삼성회장 기증 1주년을 맞아 개최한 ‘어느 수집가의 초대’가 전국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게 기폭제로 보인다. 국보 인왕제색도 등 명작들을 대거 한자리에 모은 이 전시는 코로나19 와중에도 서울에서만 23만명 가까이 끌어모았고 이후 주요도시 순회를 통해 국립박물관의 이름값을 재확인시켰다.
앞서 2021년 국보 반가사유상 2점을 나란히 전시한 ‘사유의 방’이 ‘불멍’(불상을 멍하게 바라봄) 공간으로 자리잡은 데 이어, 지난해 말 새 단장한 ‘청자실’도 고려 비색청자의 아름다움을 전달하며 입소문이 번지고 있다. 2020년부터 디지털 실감 영상관에서 선보이고 있는 ‘왕의 행차, 백성과 함께하다’ 등 파노라마 영상과 디지털 매핑 기술을 접목한 ‘경천사탑 미디어 파사드’ 등도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이수미 학예연구실장은 “디지털 영상과 오감 체험 등 프로그램으로 외국인 관람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더 많은 이들이 친숙하게 전시를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윤성용 관장은 “외형적 성과보다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박물관이 되도록 앞으로 더욱 내실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연 400만 관객 돌파 기념으로 11일부터 14일까지 나흘간 매일 400명에게 선물 증정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13일 오전에는 400만 번째 입장객에게 꽃목걸이와 문화상품을 증정하는 축하행사도 연다.
강혜란 문화선임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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