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장군 방송도 어려우면... 바뀐 KBS 뼈저리게 느꼈죠"

이영광 2023. 12. 12.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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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의 '온에어' 291] KBS 1TV <시사기획 창> 정연욱 기자

[이영광 기자]

5일 방송한 KBS 1TV <시사기획 창> '홍범도와 홍범도' 편과 관련, 예고기사를 접한 2일 의문이 들었다. 과연 박민 사장 체제에서 방송이 제대로 나갈 수 있을지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내부 진통을 겪고 있었다. 그럼에도 해당 회차인 '홍범도와 홍범도' 편은 정상 방송됐다.

'홍범도와 홍범도' 편을 취재한 정연욱 기자는 지난 박근혜 정부당시 방송 민주화 투쟁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정 기자는 2016년 7월 박근혜 정권의 KBS 보도 개입에 침묵하는 자사 간부들을 비판했다가 제주방송총국으로 전보됐다. 이 사건은 KBS 기자들이 보수 정권과 영합한 간부들에 저항하는 계기가 됐으며 이후 KBS 정상회를 위한 투쟁의 시발점이 됐다. 

이번 방송에 앞서 정 기자는 시청자센터 시청자서비스부로 발령났다. 사실상 기자로 취재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일 가능성이 높은 상황. 방송을 끝낸 소회와 함께 방송 나가기 전후 상황에 대해 듣기 위해 지난 9일 정 기자와 전화로 인터뷰했다.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
ⓒ KBS
 
다음은 정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

- 방송 끝낸 소회가 어떠세요?
"<시사기획 창>은 호흡이 긴 50분짜리 다큐라 방송 전에 되게 바쁘고 힘들거든요. 평소 같으면 바쁘고 힘든 게 빨리 끝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바쁘고 힘든 게 되게 소중하게 느껴져서 끝까지 시간 가는 게 아쉬웠어요."

- 방송 나가기까지 과정이 어려웠다고 들었어요. 
"굉장히 어려웠어요. 사실 제가 원고 쓸 때는 가제가 '역사 전쟁'이었어요. 홍범도 장군과 이승만 대통령은 역사적 논란 중심에 선 인물이잖아요. 그래서 홍범도 장군을 깊이 파는 것보다 역사 전쟁이라는 현상의 본질을 다루고 싶었어요. 사실 이승만 대통령 부분도 취재를 많이 했어요. 취재를 많이 했다는 건,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이 아니라 이 대통령 재임 시기 민간인 학살을 취재했다는 거예요. 특히 기사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대전 골령골 학살도 있고 제가 오랜 시간 관심을 가져온 주제인 제주 4.3도 있죠. 그래서 대전과 제주도 현장 취재를 많이 했어요. 이승만 대통령의 잘못을 부각시키자는 건 아니고요. 많은 분이 모르고 계신데 4.3과 골령골은 지금도 유해 발굴이 안 됐어요. 특히 제주 4.3 같은 경우 우리가 제주도 놀러 갈 때 제주 공항으로 가잖아요. 그 공항 활주로 안에도 많은 유해가 묻혀 있다고 추정이 되거든요. 그러니까 진상 규명 작업이 아예 안 되는 측면이 있어요. 굉장히 아이러니하잖아요. 한쪽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을 기념관을 건립해서 그의 업적을 재평가하겠다고 하는데 한쪽에서는 이미 규명된 이승만 대통령의 학살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이 안 되는 걸 부각시키고 싶었거든요."

- 홍범도 장군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방송) 비중을 더 높게 생각하신건가요?
"제가 홍범도 장군 취재 하러 카자흐스탄에 갔기 때문에 (원고에는) 홍범도 장군 비중이 이승만 대통령에 비해 많겠지만, 저는 홍범도 장군과 이승만 대통령의 비중을 6:4 정도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 부분이 대거 삭제 됐죠. 하지만 저는 그걸 받아들였어요. 왜냐하면 제가 이 '역사 전쟁' 아이템을 발제한 건 박민 사장이 오기 석달 전이었거든요. 상황이 바뀐 KBS에서 제가 취재한 홍범도 장군 부분을 살리려면 이승만 대통령 부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 홍범도 장군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없었나요?
"그것도 있었죠. 원고 데스킹 과정에서 4.3 부분은 하나도 안 나왔죠. 그렇게 타협 해서 거의 홍범도 장군 이야기가 8 정도 되죠. 저희가 원고 다 쓰면 심의를 한 번 받아요. 왜냐하면 제작은 취재 부서에서 하는 거기 때문에 취재 부서의 책임자인 부장이 이 원고를 책임지고 승인해서 제작하는 거잖아요. 심의는 이 제작물이 사고 없이 나갈 수 있는지 원론적 차원에서 점검하는 역할인데 이번에 이례적으로 홍범도 장군에 대한 부분조차도 아주 강하게 문제제기를 하면서 방송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홍범도 흉상 철거가 잘못됐다는 쪽을 부각시켰다', '균형 감각이 없다', '양쪽의 의견을 공평하게 다루지 않았고 압도적으로 홍범도 장군의에 우호적인 분위기로 몰고 간다' 등을 이유로요. 이건 납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방송 제작의 기본을 모르는 지적이죠. 봉오동 전투라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실이지만 거기서 홍범도 장군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먼저 설명하고 지금의 이 논란과 연결시켜서 홍범도라는 인물은 어떤 인물인지 시청자들이 일단 알아야죠. 이건 아주 다큐의 기본이란 말입니다. 제작 해본 경험이 없는 심의위원이 아주 이념적이고 저에 대한 편견을 잣대로 심의라는 무기를 사용한 거죠. 정말 황당한 경험이었죠. 저는 <시사기획 창>을 떠났지만, 훌륭한 기자들이 많이 일하는데 예를 들어 김건희 여사의 논란이 되는 아이템 아예 못하게 할 겁니까?

제가 보기에 이 아이템은 지나치게 양쪽의 입장을 담아서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오히려 하고 싶은 말이 무뎌졌어요. 하지만 이 정도는 제가 타협하고 수용할 수 있다고 봤어요. 어떤 부분이 편향적이었는지 심의위원에게 물어보고 싶어요. 사실 전 방송 하루 전날까지도 이게 못 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회삿돈으로 카자흐스탄과 제주도도 갔다 왔는데 결국 방송 하루 전에 엎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건 입사해서 처음이에요."

- 홍범도 장군 관련 아이템은 어떻게 하게 된 거예요?
"이걸 발제한 게 3개월 전이고 그 당시에는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이 아주 뜨거운 이슈였어요. 제가 역사학과를 나왔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홍범도 장군을 깊이 있게 잘 아는 건 절대 아니고요. 제가 대학원도 아니고 학부에서 배웠을 뿐이지만 역사를 지금의 맥락에서 판단하는 건 굉장히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알았죠. 예를 들면 지금 우리가 이순신 장군은 민주주의자가 아니라고 비판하면 그게 온당한 비판일까요? 이순신 장군의 당시 선조에 대한 충성이 지금 관점에서 보면 다소 무지해 보이기도 하는데, 그걸 문제삼는 게 온당한 겁니까? 아니잖아요. 홍범도 흉상 이전 논란 자체가 그렇게 보였거든요. 또 많은 분이 역사에 관심을 크게 두지 않잖아요.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압도적으로 '홍범도 장군이 사실 공산주의자였고 우리가 알고 있는 만큼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란 보도가 많았어요. 그래서 시청자들이 보고 판단하실 만한 깊이 있는 정보를 드릴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 지난 10월, MBC < PD수첩 >에서 홍범도 장군에 대해 다뤘는데 그건 어떻게 보셨어요?
"제가 취재 하고 있을 때 < PD수첩 >에서 방송을 했죠. < PD수첩 >도 나름대로 당시의 논쟁을 종합적으로 다루긴 했죠. 하지만 많은 시청자들은 '그래서 진짜는 뭔데?라고 궁금해할 것 같았어요."

- 그래서 카자흐스탄에 가서 고려인들 직접 만난 건가요?
"홍범도 장군을 취재하기 위해서 카자흐스탄과 봉오동에 가보고 싶었는데 봉오동 전투 현장이 지금은 중국 지린성에 있는 수자원 보호구역이라 아예 접근이 불가능하더라고요. 그리고 봉오동 현장은 KBS 취재진이 한 3~4년 전에 가서 찍어온 것도 있고요. 그래서 포기했죠. 하지만 카자흐스탄은 반드시 가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일단 홍범도 장군이 말년을 보낸 곳이기 때문에 홍범도 장군의 흔적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이에요.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카자흐스탄에서 국내로 옮겨오면서 고려인들이 어떻게 생각한다는 단편적인 인터뷰가 그동안 일부 보도 되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고려인들이 홍범도 장군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들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이 홍범도 장군에 대해 우호적으로 보는 건 맞죠?
"근론적으로 카자흐스탄 분들은 홍범도 장군을 존경하고 그리워하죠. 고려인 분들은 일단 외모가 한국 사람하고 똑같이 생겼는데 한국말을 전혀 못 하세요. 제가 한국말 하는 고려인 분들을 만나보지 못했어요. 그런데도 '우리 홍범도 장군'라고 하고 대한민국을 모국이라고 표현하더라고요. 그런데도 홍범도 장군에 부여하는 상징성 크더라고요. '내가 홍범도 장군이 돌아가셨던 이 도시에 태어난 게 너무 자랑스럽다', '우리가 고려인이고 대한민국과 끊을 수 없는 관계라는 증거가 바로 홍범도 장군이다', '홍범도 장군은 가장 탁월한 독립운동가다' 등의 말씀을 하셨어요. 돌아가신 지 80년된 분을 저렇게까지 이야기하나 싶을 정도였죠. 유해를 봉환할 때 굉장히 슬픈 마음으로 떠나보냈다는 걸 그분 들 말속에서 느낄 수 있었어요."

- 자유시 참변 당시 홍범도 장군에게도 우리 독립군 학살 책임이 있다는 일부 주장이 있는데요.  
"그건 아주 잘못된 거죠. 저도 연구자가 아니기 때문에 연구자들을 만나고 연구자들이 발굴한 자료를 토대로 기사를 썼어요. 자유시는 소련이 생기기 전 원동공화국의 도시였어요. 당시 각지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들이 자유시에 모였죠. 거기서 서로 다른 독립군들이 통합하자는 거에 동의했다고 합니다. 근데 이 통합을 누구를 중심으로 할 것인가에 대해서 이견이 있었죠. 당시에 상하이파와 이르쿠츠크파가 대립하고 있었는데 상하이파가 보기에 일제에 협력했던 인물이 통합의 주도권을 갖게 되자 상하이파는 이에 반대했고, 원동공화국이 이 반대를 수용하지 않고 강제로 상하이파의 무장을 해제하는 과정에서 우리 독립군 400여 명이 돌아가셨던 사건이 자유시 참변이에요.

홍범도 장군은 당시 원동공화국 편에 서서 상하이파의 숙청을 방조했고 무장해제 이후에 체포된 사람들을 재판하는데 재판위원으로 참여해서 또 그들을 처벌하는 데 일조했다란 주장이 있죠. 저희가 이번에 보도했지만 문서가 있어요. 그동안 반박 증거로, '홍범도 장군이 당시 슬퍼했다더라' 등의 단편적 주장만 있었는데 실제 문서가 있는 거죠. 원동 공화국보다 더 상위에 있는 게 소비에트 레닌이잖아요. 소비에드 중앙정부에 홍범도 장군이 '우리 독립군들 목숨을 잃게 만든 참변'이라고 표현하거든요. 그 조사를 요구하는 그 문서에 홍보 장군이 두 번째 줄에 사인도 했어요. 그리고 홍범도 장군의 책임을 묻는 사람들은 당시에 이르쿠츠크파와 상해파가 갈등하는데 홍범도 장군이 이르쿠츠크파 쪽에 서 있었다는 주장하죠. 하지만 홍범도 장군이 서명한 또 다른 문서에 보면 '우리는 이르쿠츠크파 통제로부터 빨리 벗어나고 싶다'고 소비에트 측에 요구하거든요. 여기에도 홍범도 장군이 서명을 해요. 여기에 서명한 사람은 심지어 3명 밖에 없어요. 그리고 보수적인 언론들은 홍범도 장군이 레닌으로부터 권총을 하사받은 것도 자유시 참변 때 책임이 있다는 증거라고 얘기하거든요. 근데 거꾸로 레닌을 직접 찾아간 이유는 자유시 참변을 조사를 해달라는 거였어요. 이건 '홍범도 일지'에 나와요. 그러니까 홍범도 장군은 일관되게 자유시 참변은 조사가 필요하고 책임자 처벌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보고 있었고 소비에트 측에 그걸 계속 요구한 겁니다. 이것만 봐도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이라는 사건의 가해자 쪽에 서 있었다는 건 일단 팩트가 맞지 않는다는 거죠."

-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얘기도 나오는데요. 이승만 기념관 건립에 대해도 취재하셨잖아요. 
"기념관에 대해 각자 생각들이 다르겠죠. 저는 이승만 기념관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모금하시고 또 국가에서 30% 보조를 받아서 기념관 건립을 하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김대중, 노무현, 김영삼 기념관이 있잖아요. 어떤 인물에 대해서 생각이 다르고 공과에 대한 평가가 다르지만, 그 시대를 상징하는 어떤 대통령을 기념하는 기념관 건립이 특별히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기념관 안에 어떤 지도자의 공과를 가감없이 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승만 기념관이 건립된다면 이승만 대통령이 그동안 저평가받아 왔던 여러 공적들도 소개해야죠. 국가가 이미 책임을 인정했던 민간인 학살이라든가 전쟁에 있어서의 처신 문제 그리고 전쟁 이후 이승만 대통령이 장기 집권하면서 가졌던 저질렀던 민주주의의 파괴 과정 같은 것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기념관이라면 저는 오히려 우리 역사 교육에 굉장히 도움이 되는 훌륭한 기념관이라고 생각합니다."

- 취재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
"역사를 정치의 영역으로 끌고 와서 논쟁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부질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필요하다면 대한민국의 국격에 맞게 해야죠. 우리에겐 역사나 문화나 사상, 다방면에서 축적된 연구 결과들이 있고 그걸 바탕으로 지적인 논쟁을 하는데 유독 이런 논쟁들이 정치권으로 오면 단편적으로 끝나더라고요. '너 공산주의자야'란 질문은 이미 50년 전 냉전과 함께 사라졌잖아요.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는 걸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웠잖아요. 근데 다시 권력 가진 분들이 그런 질문 한다는 게 잘못됐죠. 취재하면서 홍범도 장군과 이승만 대통령 재임 시기에 있었던 사건들에 대해서 깊이 알게 되니까 지금의 논쟁들이 실제 있었던 일 하고 얼마나 거리가 먼지 절실하게 느꼈죠. 이건 다른 얘기지만 KBS가 얼마나 바뀌었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 주제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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