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공공택지에도 ‘래미안’ ‘자이’…LH-민간 경쟁체제 첫 도입
설계·시공·감리업체 선정 권한도 이양
앞으로 민간 건설사도 LH가 조성한 공공택지에 공공주택을 직접 시행해 지을 수 있게 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공공주택 사업을 LH와 민간의 경쟁 시스템으로 재편하는 것이다.
또 LH의 권한 분산을 위해 공공주택 건설의 설계·시공업체, 감리업체 선정 권한을 조달청, 국토안전관리원으로 각각 이관한다. LH 주택건설 현장에서 철근 누락 등 안전항목을 위반한 업체는 LH 주택 수주를 제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도 도입한다.
국토교통부 김오진 1차관은 12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LH 혁신방안’ 및 ‘건설 카르텔 혁파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지난 4월 인천 검단 LH 아파트의 지하주차장이 철근 누락으로 붕괴되고, 이 같은 부실이 전관예우 등 LH의 이권 카르텔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LH 혁신안을 마련해왔다.
이번 대책은 공공주택 건설 과정에서 LH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인천 검단 주차장 붕괴 사고와 잇따른 철근 누락 사태 등 부실시공의 첫 단추가 LH의 공공주택 독점 공급 구조에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오진 1차관은 “지금껏 독점적 지위에 있던 LH가 품질과 가격 경쟁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할 경우에는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되도록 해 자체 혁신을 끌어내겠다”고 말했다.
현재 공공주택 사업시행자는 LH가 전체 공급량의 72%를,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지방 공사가 28%를 맡고 있다. LH에 공공주택 공급 물량이 집중되다 보니 건설 과정에서 관리 소홀이 발생하고, 품질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번 무량판 구조 지하주차장 전수조사에서 LH 단지는 121개 중 22개 단지에서 철근 누락이 발견됐지만, 민간 427개 단지에선 철근 누락이 단 한 건도 없었다.
이에 따라 공공뿐 아니라 민간 건설사도 공공주택을 직접 시행해 공급할 수 있도록 하고 향후 분양가, 하자 빈도, 입주자 만족도 등 평가 결과를 비교해 앞으로 더 잘 짓는 시행자가 더 많은 공공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LH는 민간 사업자와의 경쟁 속에서 아파트 품질 향상, 안전 확보 등 자체 혁신을 하지 않으면 결국 민간 중심의 공급 구조로 전환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공공주택특별법을 개정해 공급 방식에 민간 건설사 단독 시행 유형을 추가할 방침이다. 현재는 LH가 발주처로 시행을 맡고, 민간 건설사가 입찰을 통해 시공사로 참여하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인천 검단 LH 아파트가 이런 방식이었다. LH가 시행을, GS건설 등이 시공을 맡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금은 민간 건설사가 시공(건설)만 하는 도급 형태라면 앞으로는 민간 건설사 또는 사업자가 시행 주체가 돼 공공택지를 분양받아 ‘래미안’ ‘자이’ 같은 자체 브랜드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공공주택사업자로 지정된 민간 건설사는 공공택지를 감정가 이하로 매입할 수 있고, 주택도시기금 저리 융자와 미분양 물량 매입 확약 등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다만 공공택지 분양인 만큼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받고, 정부가 정한 주택공급기준을 따라야 한다. 정부는 분양가를 낮게 제시하는 민간 사업자에 공공택지를 우선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민간 시행 공공주택의 분양가를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토부는 내년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염두에 두고 LH가 사업계획을 승인받은 기존 사업도 사업시행자 변경을 통해 민간 건설사가 시행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3기 신도시는 물론 내년 착공하는 물량도 해당한다.
LH 권한 축소, 전관 영향력 원천 차단
국토부는 또 LH의 이권 카르텔로 지목돼온 설계·시공·감리업체 선정 권한도 조달청과 국토안전관리원으로 넘기기로 했다.
LH가 주택건설 전 과정에서 설계·감리 용역과 시공업체를 직접 선정하다 보니, LH의 주택 물량을 수주하고자 전관을 채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전관업체의 수주로 연결되는 카르텔 구조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설계·시공·감리 등 LH의 발주 규모만 연간 10조원에 달한다.
실제 이번 전수조사에서 LH가 발주한 설계·감리용역 수주 상위 10개사(2018~22년) 가운데 1개 업체를 제외하곤 모두 전관업체였고, 철근 누락 단지에 상당수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조달청이 설계 용역과 시공업체의 선정 및 계약 체결 등을 진행하고, 국토안전관리원이 감리업체 선정 및 감독을 맡는다.
LH는 전관예우 근절을 위해 LH 퇴직자 재취업 심사를 강화하고 전관업체의 입찰을 배제하는 등 고강도 대책도 내놨다. 우선 LH 2급(부장급) 이상으로 퇴직한 전관이 퇴직한 지 3년 이내 재취업한 업체는 LH 주택 입찰 참가가 제한된다. 3급(차장급) 전관 재취업 업체도 낙찰이 어려운 수준으로 대폭 감점을 줄 방침이다.
퇴직자 재취업 심사 대상도 현행 2급 이상(퇴직자의 30% 수준)에서 3급 이상(퇴직자의 50% 수준)으로 확대한다.
부실공사 업체에 대한 처벌규정도 강화된다. LH 공사·용역 시 철근 누락 등 주요 안전 항목을 위반한 업체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LH 사업 수주를 제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불법을 저지른 건설사는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이 부과된다.
국토부는 ‘건설 카르텔 혁파방안’으로 감리의 독립성을 위해 인허가권자인 지방자치단체의 감리 지정을 확대하기로 했다. 현재 주택 대상뿐 아니라 다중이용건축물(5000㎡ 이상 문화·집회·판매시설 또는 16층 이상 건축물)도 건축주가 아닌 지자체가 적격심사를 통해 감리를 지정하도록 한다. 또 감리가 시공사에 공사 중지를 요청할 때 건축주뿐 아니라 인허가청(지자체)에도 함께 보고하도록 건축법 개정을 추진한다.
“새로운 시도…경기 침체가 문제”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LH의 총체적 부실이 드러난 상황에서 민간 개방이라는 극약처방까지 나왔다”며 “여러 시도를 통해 성공 사례가 나오면 공공주택 품질이 개선되고, LH도 쇄신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도 공공택지가 대체로 입지, 기반시설 측면에서 괜찮은 만큼 어느 정도 사업성이 있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 주택·건설 경기가 좋지 않다는 점이다. 김정주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택 경기가 좋을 때면 시행에 나서는 민간 건설사가 있을 텐데 지금은 기존 브릿지론 연장도 어려워 토지를 포기하는 사업장이 적지 않다”며 “정책 효과를 곧바로 보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현재 공공주택은 LH와 함께 대부분 중소건설사가 참여하고 있는데, 민간 개방으로 가면 입지 좋은 곳은 대형 건설사가 수주할 가능성이 크고 중소건설사는 일감이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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