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맥주 로고에 별이 있는 이유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기자]
이번 여행의 마지막 긴 비행이었습니다. 시드니에서 발리를 경유해 도쿄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다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삿포로까지, 이틀 내내 비행으로 가득한 일정이었죠.
시드니에서 삿포로까지, 직선으로 8500km를 넘게 북쪽으로 왔습니다. 그 사이 적도를 넘어 계절은 겨울이 되었죠. 한 해 내내 여름을 따라 지구를 돌았는데, 드디어 올해의 첫 눈을 맞게 됐습니다.
▲ 삿포로의 밤 |
ⓒ Widerstand |
홋카이도에는 '아이누'라 불리는 원주민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지금의 하코다테 지역 정도를 장악했을 뿐이었죠. 이곳에 있던 마쓰마에 가문이 나머지 홋카이도 지역과 교역을 하며 아이누를 간접적으로 통제했습니다.
그러던 홋카이도가 일본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러시아의 남하 때문이었습니다. 러시아 제국이 시베리아를 건너 일본과 접촉하기 시작한 것이죠. 소위 '쇄국' 정책을 유지하며 조선, 중국, 류큐, 네덜란드를 제외하고는 무역하고 있지 않던 일본에게 이것은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흔히 일본의 개방과 근대화에 영향을 미친 국가로는 미국을 많이 꼽습니다. 일본이 처음 근대적 조약을 체결한 국가가 미국이었으니까요. 아니면 법체계의 영향을 받은 독일이나, 동맹을 맺고 영향을 주고받았던 영국을 꼽을 수도 있겠습니다.
▲ 홋카이도 개척의 중심이었던 오타루 항 |
ⓒ Widerstand |
메이지 정부는 홋카이도 개척을 위한 '개척사(開拓史)'를 설치하고 계획도시를 만들었습니다. 미국의 서부 개척을 모델로 삼아 농지를 개간하고 공장을 세웠죠. 실제로 여러 미국인 고문단이 홋카이도에 와서 개척 사업을 지원했습니다.
홋카이도를 향하는 이주민도 늘어났습니다. 우선 메이지 정부는 사람들에게 지원금을 주고 홋카이도에 정착시킨 뒤, 그 대가로 정기적인 군사훈련을 받게 했습니다. 일종의 둔전병을 설치한 것이죠. 인구를 늘리는 동시에 러시아의 안보 위협을 해소하기 위함이었습니다.
▲ 옛 개척사 본청사 자리는 공사 중이었다. |
ⓒ Widerstand |
홋카이도 대학 역시 개척사 시절에 설치된 삿포로 농학교의 후신입니다. 근대화의 첨병에 섰던 홋카이도답게, 삿포로 농학교는 일본 최초로 학사학위를 수여한 학교이기도 했습니다. 이 학교에서 일본의 근대 과학과 외교를 이끈 여러 사람들이 탄생하기도 하죠.
▲ 홋카이도 대학 안의 클라크 박사 동상 |
ⓒ Widerstand |
무엇보다 이 땅의 원주민이었던 아이누인에게는 상처가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아이누인이 가지고 있었던 토지의 소유권이나 재산권은 전혀 인정하지 않았죠. 홋카이도 정복이 본격화된 뒤에는 아이누의 정체성도 크게 탄압했습니다.
▲ 옛 삿포로 재판소 |
ⓒ Widerstand |
하지만 홋카이도가 현대 일본에서 그만큼의 대우를 받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20여년 째 홋카이도의 인구는 계속해서 줄고 있고, 지방의 인프라는 확충되지 못하고 있죠. 적은 인구밀도와 가혹한 환경을 고려해야겠지만, 철도도 도로도 사정은 그리 좋지 못합니다. 철도민영화를 전후해 노선의 3분의 1 이상이 폐선됐을 정도죠.
▲ 삿포로의 밤 |
ⓒ Widerstand |
그런 땅에서 저는 이제 일본 여행을 시작합니다. 식민과 근대가 늘 함께 서 있는 이 땅에서 일본 여행을 시작한다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 않을까 기대해 보기도 합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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