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백질은 ‘폼생폼사’ 멀티엔터테이너… 생명 현상은 한 편의 인체 드라마

김응빈 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 교수·유튜브 '김응빈의 응생물학' 운영 2023. 12. 12.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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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빈의 생생바이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생물학은 생명 현상을 탐구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정작 생명이 무엇인지 명쾌한 답변은 아직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생명 현상이 복잡하고 난해하다는 방증이 아닐까 한다. 뜬금없는 무리수로 보일 수 있지만, 나는 생명 현상을 드라마에 비유하곤 한다. 지금부터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인체 드라마’의 줄거리를 살펴보면서 이런 비유의 유의미성을 확인해 보자.

물을 제외하고 우리가 평소에 가장 많이 먹는 물질은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질이다. 이 셋을 3대 주영양소라고 이르기에 인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볼 수 있겠다. 탄수화물은 우리 몸에서 에너지를 만드는 데 가장 먼저 쓰이는 영양소다. 효소와 근육을 비롯하여 인체를 이루는 핵심 구성 요소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단백질은 ‘폼생폼사’ 멀티엔터테이너다. 왜냐하면, 단백질의 다양한 기능 수행 여부는 단백질의 모양(입체 구조)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영양소이지만 핏속에 동물성 지방이나 콜레스테롤양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동맥경화와 같은 병을 일으킬 수 있어 많은 사람에게 건강의 적(?)으로 오해를 받는 지질은 극 중 악역 배우와 닮은꼴이다. 아울러 몸의 생리 기능을 조절에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비타민이나 무기염류, 물과 같은 부영양소는 약방의 감초로 드라마에 재미를 더하는 조연 배우처럼 보인다.

출연 배우의 인기나 잘생긴 외모가 드라마의 흥행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순 없지만,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배우들이 맡은 역할을 잘 소화해 연기가 드라마 속으로 녹아들어 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몸에 들어온 영양소도 잘 소화되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소화란 섭취한 음식물을 원료로 우리 몸의 성장과 유지, 보수 등에 필요한 다양한 물질과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말하자면, 작가의 의도와 감독의 지시에 따른 배우들의 연기 변신을 통해 드라마가 전개되는 것처럼, 먹거리도 입에서 항문에 이르는 소화관을 통과하면서 소화효소에 의해 세포가 이용할 수 있는 물질로 전환된다. 소화된 영양소 대부분은 소장에서 흡수되어 혈류를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흔히 드라마는 개성이 다른 인물들의 경쟁과 갈등, 오해와 질투, 그리고 애증 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진행되다가 어떤 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클라이맥스에 다다르다 결말로 이어진다. 이때 어디론가 홀연히 떠나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마무리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생명 활동의 절정은 호흡이라 하겠다. 교향악 단원 개개인의 연주가 모여 아름다운 곡이 완성되듯이 호흡은 온몸의 기관들이 조화롭게 움직여 생명 현상 유지를 위한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이다. 교향악단 이야기가 나오니 2006년 큰 인기를 얻었던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각자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여러 단원과 만나 티격태격하면서 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좋은 음악을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단원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에 다시 불을 붙인 후, 긴 터널을 지나 홀연히 떠나는 주인공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이 장면에 생명의 에너지를 주고 날숨으로 나가는 이산화탄소와 물이 떠오르니 감성파괴자 소리 듣기 십상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뿐 아니라 주요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도 드라마의 인기 비결이다. 드라마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배우와 탄탄한 시나리오 외에도 중요한 요소가 있다는 얘기인데, 생명체의 생존을 위해서도 먹는 일과 함께 필수적인 행동이 한 가지 더 있다. 자연환경에는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요소들이 산재해 있는데, 이들을 감지해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다면 생명체는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 생명체가 치열한 생존경쟁을 뚫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앞서 설명한 물질과 에너지 획득 및 생산(물질대사)과 같은 하드웨어적인 능력뿐 아니라 주변 환경의 변화에 적절하게 반응해 대응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적인 능력이 필수적이다. 이런 능력은 감각기관과 신경계에 의해서 통합적으로 이루어진다. 오감(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담당하는 감각기관(눈, 귀, 코, 혀, 피부)은 자극의 정보를 수집하고, 중추신경계(뇌와 척수)는 정보를 분석해 명령을 내린다. 말초신경계는 자극을 중추신경계로 전달하고 중추신경계의 결정을 해당 기관에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 내용과 상관없이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제목은 생물학적으로 참으로 절묘하고 적확한 단어의 조합이다. 여기서 ‘베토벤’이란 단어는 단순히 위대한 작곡가를 넘어서 그가 남긴 명곡들을 뜻하는 것 같다. 현재 지구상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을 직접 만나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어떠한가? 생존 당시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에서만 알려졌던 베토벤의 음악이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80년을 훌쩍 넘겨버린 지금,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전 세계의 많은 사람에게 여러 형태로 사랑받고 있다. 이것은 그의 음악이 시공을 뛰어넘어 살아남아(생존), 때에 따라서는 편곡되기도 하면서(변화 또는 진화), 널리 퍼졌다는(번식) 의미다. 번식과 진화에 관한 한 생물권의 제1인자는 단연코 바이러스다. 음악과 생물이라는 전혀 상반되는 듯한 두 분야의 용어가 만나서 서로의 핵심 주제를 명쾌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울 뿐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하면서 나온 핵심 단어를 나열해 보면, 영양소, 소화, 순환, 호흡, 배설, 적응, 생식 등이다. 그리고 이 단어들이 연결하면 ‘살기 위해 먹고 생식(번식)을 위해 산다는’ 모든 생명체의 공통된 삶의 모습을 그리는 이야기의 줄거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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