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Next]고금리·전쟁에 세력 넓히는 中위안화…달러 역전은 '먼 얘기'
이스라엘, 러시아 전쟁으로 위안화 사용↑
다만 달러 위상 흔들기는 무리…가치 불안정
성장률도 둔화…"위안화 기축통화, 먼얘기"
미국 등 주요국의 긴축 통화정책과 러시아·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기회 삼아 중국 위안화의 글로벌 영향력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과 패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 아세안과 중동 등을 상대로 위안화 사용을 대폭 늘리면서, 공고한 달러의 위상을 조금씩 흔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위안화의 달러 역전을 언급하기는 여전히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상당하다. 중국이 세계적인 경제 대국인 만큼 무역결제 등에서 위안화 사용이 지속해서 늘어날 순 있으나, 중국 성장률 둔화와 위안화 가치 불안정 등을 고려하면 아직 달러와 비견할 수준은 아니란 설명이다.
중국 경제 부진한데…위안화는 기지개
12일 중국·외환시장 전문가들에 따르면 최근 중국 경제 부진에도 불구하고 위안화 활용은 크게 늘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 본토와 홍콩에서 외국계 기업·정부가 발행하는 위안화 표시 채권인 '판다본드'와 '딤섬본드' 발행은 올해 1~9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5.8%, 179.3% 급증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이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금리를 높게 유지하면서 상대적으로 싼 위안화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중국은 미국 등과 달리 경기가 좋지 않아 금리를 낮은 수준으로 억제하고 있다. 상당수 외국인은 조달 금리가 낮은 중국에서 돈을 빌리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고, 이는 자연스레 위안화의 국제화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전날 국제금융센터와 중국 교통은행이 개최한 '서울 원-위안 직거래시장 9주년 기념 컨퍼런스'에서는 한국도 위안화 활용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은행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올해 1~11월 서울 원-위안 직거래 규모는 일평균 33억달러로, 과거 평균 21억6000만달러를 크게 상회했다.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의 대중 무역에서도 위안화 결제 금액은 126억7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9.4% 증가했다. 올해 중국 경기 둔화로 대중 수출이 16%나 감소했음에도 위안화 결제가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위안화 사용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지난 9월에는 세계은행간금융통신협회(SWIFT)가 세계 무역금융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5.8%로 1년 새 1.6%포인트 늘어 유로화(5.4%)를 제치고 세계 2위에 올랐다는 자료를 발표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위안화는 유로화와의 격차도 사실 굉장히 컸는데 그게 올해 들어 역전됐다"며 "성장 속도가 빠른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동·아세안 발판 삼아…위안화 세력 넓히나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위안화의 국제화가 빠른 속도로 진전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중국이 거의 모든 신흥국, 상당수 선진국과 막대한 교역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특히 신흥국의 경우 중국계 은행의 대출 영향력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를 생산 기지로 활용하며 경제 블록을 강화하는 것도 위안화 활용을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에는 한국이 중국으로 원재료나 반제품을 수출하면, 중국이 이를 가공해 해외로 수출하는 방식(가공무역)이었는데, 지금은 중국이 아세안에 이같은 구조를 심고 있다.
실제 외신에 따르면 베트남의 경우 중국의 직접투자가 올해 1~11월 전년 대비 2배 정도 늘면서 중국이 한국을 제치고 최대 경제 협력국으로 올랐다. 중국이 이렇게 아세안에 공급망을 구축하고, 추후 이를 중남미로 확대해나가면 위안화 활용 국가도 대폭 넓어질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무엇보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중동을 파고 들며 '페트로 위안'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앞서 1970년대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를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대신 오직 달러로만 원유를 결제한다는 약속을 받으면서 '페트로 달러' 체제를 구축했는데, 중국도 이런 방식을 통해 위안화의 위상을 높이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중국 입장에서 절호의 기회가 되고 있다. 이번 사태로 미국과 사이가 더욱 어색해진 핵심 원유 수출국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이 중국과 위안화에 힘을 실어 줄 수 있어서다. 실제 러시아는 최근 자국 원유 수출입 결제를 위안화로 하기 시작했고, 사우디도 지난달 중국과 70억달러 규모의 첫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
그래도 압도적 '달러 위상' 흔들기는 무리
물론 위안화의 이같은 글로벌 세력 넓히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달러의 위상을 흔들 정도는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글로벌 무역, 금융, 외환 시장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세계 무역금융에서도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올해 6%에 근접하며 유로화를 뛰어넘긴 했으나, 여전히 미국(81.08%)과 비교하기는 힘들다.
위안화 가치의 불안정성도 문제다. 위안화는 최근에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에 따라 달러화에 대한 가치가 급등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 국영은행들은 위안화가 급락하자 집중 매수하면서 적극적인 가치 방어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보니 국내 대중 수출 기업에서도 위안화 결제 비중은 아직 그렇게 높지 않다. 한재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이 올해 6~7월 한국 수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샘플수 995개)를 한 결과, 대중 무역 거래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0~5%라는 답변이 전체 기업의 64.4%로 가장 많았다.
한 연구위원은 "최근 대중 무역 업황 자체가 굉장히 안 좋았다보니 기업들이 환 헤지(위험 분산)를 하는 데 위안화보다는 달러를 많이 고려하는 것 같다"며 "또 아직 원-위안 직거래 시장이 성숙하지 않고 수수료나 등 중소기업 입장에선 불편한 점이 많은 것도 문제"라고 설명했다.
위안화 사용 늘겠지만…기축통화는 먼얘기
중국 경제가 과거 가파른 성장기를 끝내고 둔화하기 시작한 것도 위안화 국제화에 장애물이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2011년 9.6%에 달했으나 지난해 3%로 떨어졌다. 국제통화기금(IMF) 전망 기준 올해 5%대를 회복한 뒤 내년에 다시 4%대로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흐름이 이어진다면 중국이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얻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치훈 국제금융센터 신흥경제부장은 위안화의 기축통화 가능성에 대해 "중국과 미국은 두 개의 축으로 다극화된 경제 질서 하에서 복잡해지는 형태를 띌 것으로 본다"며 "그런 과정에서 위안화 사용이 장기적으로 늘어나겠지만 (기축통화는) 최소 20년 이상은 걸리는 문제고 시점을 특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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