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는 참모진 [정치의 밑바닥 ③]
'게이트 키퍼' 비서실장 역할 실종됐단 지적 잇따라
'심기 경호' 강화될수록 민심과 멀어질 것이란 지적
'권력의 2인자' '왕의 남자' '게이트 키퍼'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다. 대통령과 수시로 만나며 명(命)을 출납하는 비서실장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대통령중심제인 한국에선 대통령과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권력의 크기도 자연스럽게 커진다.
사실상 모든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에게 수많은 정보·정책·인사 등이 몰리는 만큼, 비서실장은 우선순위를 가려내고 조정하는 역할을 잘해야 한다. 비서실장이 '게이트 키퍼'(gate keeper·정책이나 의견을 검증하고 걸러내는 인물)라고도 칭해지는 이유다. 대통령으로 향하는 정보 등을 걸러내다보니, 마음만 먹으면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
막강한 권력자를 보좌하는 비서실장이 으뜸으로 갖춰야 할 역량은 대통령에게 '직언 할 수 있는 두둑한 배짱'이라는 데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대통령 주변인들은 대부분 대통령이 듣기에 달콤한 말만 골라서 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비서실장이라도 자리를 내놓을 각오를 하고 쓴소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도널드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은 "대통령에게 당신이 생각하는대로 '날카롭게 짖어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에게 여론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 "용산에는 대통령의 심기 경호에만 함몰된 '예스맨'(yes man)만 남았다"는 말이 최근 들어 부쩍 정치권 안팎에서 자주 들린다. 선거, 국가적 행사 유치, 인사 등에서 이어지는 오판 탓이다.
지난 10월 '보궐선거 원인 제공자'인 김태우 후보를 대법원 판결 3개월 만에 사면·복권 후 공천했다가 17.15%p 차이로 더불어민주당에 참패했다. 김 후보를 공천할 경우 어려운 선거가 더 어렵게 될 수 있다는 전망이 적지 않았지만, 용산은 김 후보의 공천을 밀어붙였고, 대통령실은 예상보다 큰 격차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부산 유치전 불발 과정은 강서구청장 보선 참패의 '데자뷔' 같다. 정부는 엑스포 개최지가 최종 결정되는 국제박람회기구(BIE) 제173회 총회 투표 당일까지 부산의 약진을 강조하며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와의 박빙 승부를 예고했지만, 119표(사우디) 대 29표(한국)라는 민망한 성적표를 받았다.
윤 대통령은 엑스포 유치 실패 바로 다음 날인 11월 29일 "실망시켜 드린 것에 대해서 정말로 죄송하다. 예측이 많이 빗나간 것 같다"며 국민께 고개를 숙였다. 정치권에선 판세 예측 실패와 과도한 부풀리기 보고 가능성 등에 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윤 대통령의 '돌려막기식 인사'도 도마에 올랐다. 윤 대통령은 최근 김홍일 국민권익위원장을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에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임기 3년의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재임한 지 5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것은 물론 윤 대통령이 '존경하는 검찰 선배'로 꼽는 인사다. 김 후보자는 당초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임으로도 거론됐었다.
또 취임한 지 3개월도 되지 않은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총선용으로 교체를 검토하고, 조태용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을 약 9개월 만에 국가정보원장으로 이동시키려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협소한 인재풀'을 자인하며 고육지책의 방편을 택한 셈이다. 대통령실 인사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하고 있는 김대기 비서실장의 책임론이 고개를 드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현재 민심과 동떨어진 일련의 사례들로 인해 용산에서 비서실과 비서실장의 역할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는 '인의 장막'이 있다는 세간의 추측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의 정치적 성공 여부는 비서실장을 어떤 사람으로 쓰느냐에 따라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서실장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대통령이 불쾌해 할 수 있는 쓴소리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에 대한 심기 경호가 강화될수록 정권은 민심과 더욱 멀어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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