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인데 사라진 롱패딩…이상고온에 '크롭 숏패딩'만 팔린다

천권필 2023. 12. 12. 05: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 명동거리의 가게에 숏패딩 등이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11일 서울 명동의 한 의류 매장.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두꺼운 패딩 대신 재킷이나 얇은 패딩을 입은 마네킹들이 서 있었다. 다른 매장에서도 허리 위까지 오는 이른바 '크롭 숏패딩'이 대부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전시돼 있었다. 한 때 인기를 끌었던 롱패딩은 매장 한쪽에서 3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매장 직원은 “요즘 많이 춥지도 않고 날씨가 오락가락하다 보니 손님들도 가볍게 입고 벗을 수 있는 아우터를 많이 찾는다”고 설명했다.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의류 매장에 겨울옷이 전시돼 있다. 천권필 기자

올가을부터 최근까지 잦은 고온 현상이 나타나는 등 오락가락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패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패션업계에 따르면, 올해에는 과거 높은 인기를 끌었던 롱패딩 등 두꺼운 아우터 판매가 저조한 대신 경량패딩이나 숏패딩 매출이 크게 늘었다. 이랜드가 판매하는 ‘스파오’의 올해 경량 패딩 매출은 전년 대비 540%, ‘뉴발란스’는 250% 급증했다.

유행이 바뀐 이유도 있지만, 예년보다 포근해진 날씨의 영향도 크다는 분석이다. 정참 이랜드 팀장은 “기존에는 헤비 아우터에 집중했다면 올해는 간절기에도 입을 수 있는 경량 패딩이나 라이트 재킷 판매에 집중하고 있다”며 “발열 내의도 가격을 내리고 두께를 다양화해 따뜻해진 겨울 날씨에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따뜻한 날 잦아지자 두꺼운 겨울옷 안 팔려


예년보다 온화한 날씨가 이어진 5일 오후 서울 덕수궁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겉옷을 벗어둔 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통상적으로 본격적인 겨울 시즌을 앞둔 9~11월은 단가가 높은 겨울철 의류가 가장 많이 팔리는 시기다. 추위가 일찍 찾아올수록 패딩 등 아우터를 찾는 수요도 많아진다. 하지만, 올가을은 기상 관측망이 전국으로 확충된 1973년 이후 세 번째로 평균기온이 높았을 정도로 따뜻한 날이 잦았다. 포근한 날이 이어지자 패션업계에서는 “겨울옷 장사 망쳤다”는 얘기까지 나왔고, 계절과 관계없이 입을 수 있는 제품군을 늘리는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12월에도 서울의 한낮 기온이 16.8도까지 오르는 등 고온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올해 5월부터 시작된 엘니뇨의 영향으로 따뜻한 남풍 계열이 바람이 자주 유입된 데다가, 기후변화 추세까지 맞물린 게 원인으로 꼽힌다. 엘니뇨는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5도 높게 유지되는 기후 현상을 말한다.


엘니뇨 발생하면 겨울옷 매출 줄고 재고 쌓여


김영희 디자이너
실제로 엘니뇨와 온난화 등으로 인한 기상 변화는 겨울옷 판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부산대 기후과학연구소의 오정미 연구교수는 올해 발표한 ‘기후변화에 의한 기상변동이 패션산업에 주는 영향’ 논문에서 한국은행의 기업경기조사 자료를 토대로 엘니뇨가 발생한 2015년 10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의류 판매·재고 실적을 분석했다. 그 결과 엘니뇨 기간 의류 판매율은 월별로 1년 전보다 2.6%에서 13.9%까지 떨어졌다. 반면, 재고는 3.9~17% 증가했다.

오 연구교수는 “당시 12월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2도 높았고 1월 중순 이후에 한파가 나타나면서 계절의 지연 현상이 일어났다”며 “패션기업은 전년 매출 기준으로 판매 계획을 세우기 때문에 기상 패턴이 바뀌면 수요 예측이 맞지 않아 재고가 증가한다”고 말했다.


극단적 날씨 변화로 수요 예측 어려워…“기후 이해도 높여야”


1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에서 한 시민이 쓰고가던 우산이 강한 바람에 부서져있다. 김종호 기자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날씨의 변동성이 커지는 것도 겨울옷 수요에 대한 예측을 어렵게 만든다. 최근에도 전국적인 고온 현상에 이어 10~11일 강원과 제주 지역에 1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는 등 극단적인 겨울 날씨가 나타났다. 민간 기상업체 케이웨더의 이재정 예보팀장은 “겨울철 온도와 한파일 수 등을 예측해서 의류나 홈쇼핑 업체들에 제공해 활용하도록 한다”며 “비가 그치고 난 뒤에는 큰 추위가 찾아오는 등 올겨울에는 날씨의 변동폭이 상당히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기후변화가 앞으로 가속화되면서 예상치 못한 기상 변동이 패션에 미치는 영향은 더 커질 것”이라며 “지속가능한 의류 생산을 위해서는 패션업계에서도 기후에 대한 이해도를 더 높여서 탄력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