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톡·닥터나우 사태, 중개업계서도 재현? 스타트업 떠는 이유 [팩플]
한국공인중개사협회를 법정단체로 만드는 법안 처리에 속도가 붙고 있다. 협회에 공인중개사 감독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프롭테크(부동산 기술)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11일 국회와 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위원회 국토법안심사소위는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공인중개사법 일부 개정안을 지난 6일 논의 안건에 포함시켰다. 김 의원 등이 지난해 10월 발의한 이 개정안이 소위 안건에 회부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오는 21일 열릴 국토법안심사소위에서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무슨 법안이길래
개정안은 임의 설립단체인 중개사협회를 단일 법정단체로 격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대로 법안이 본회의까지 통과되면 현재 50만명 가량인 공인중개사 자격증 보유자는 반드시 협회에 가입해야 한다. 협회는 중개사들이 회원 윤리를 위반할 경우 처벌할 권한을 갖는다. 또 부동산 거래 질서를 해치는 행위를 단속할 권한도 생긴다. 김병욱 의원 등은 개정안 제안 이유에 대해 “회원에 대해 협회가 실질적으로 지도 관리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어 사기나 부정한 방법 등 무질서한 중개 행위로 인한 국민 피해를 막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협회는 왜?
중개사협회는 시장 감시 기능을 강화하려면 법안 통과가 필요하단 입장이다. 이 협회 관계자는 “최근 전국에서 발생하는 전세 사기 사건 등은 시장에 대한 감시가 부족하다는 방증”이라며 “업계를 잘 아는 중개사협회가 단속 권한을 가지는 게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방 등의 프롭테크 플랫폼을 쓰는 5만여명의 공인중개사의 활동을 협회가 모두 막는 건 불가능하다”며 “플랫폼들과 대화로 오해를 풀기 위해 시도 중”이라고 말했다.
왜 중요해
프롭테크 업계에선 이 개정안이 이른바 ‘직방 금지법’으로 악용될까 우려한다. 처벌 권한을 가진 중개사협회가 특정 플랫폼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회원 중개사들을 압박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2019년 1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중개사협회가 자체 플랫폼 ‘한방’이 아닌 직방 등 다른 플랫폼에선 회원들이 활동하지 못 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행위에 시정명령을 내렸었다.
이 때문에 프롭테크 플랫폼들은 이번 개정안이 통과돼 중개사협회가 법정단체가 된다면 법조계의 ‘로톡 사태’나 의료계의 ‘닥터나우 사태’ 같은 일이 부동산 중개업계에서도 재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2021년 당시 법정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는 소속 변호사들이 온라인 변호사 광고 플랫폼 로톡에 가입할 수 없도록 광고 규정을 고쳐 이를 어긴 변호사들을 징계해 로톡과 장기간 갈등을 벌였다. 코로나 기간 비대면 진료 플랫폼 1위로 성장한 닥터나우도 의약계의 반대에 부딪혀 고사 위기에 처한 바 있다.
법안 통과시 프롭테크 플랫폼들은 공인중개사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그간 중개사협회와 갈등을 빚은 부동산 앱 1위인 직방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네이버페이 부동산, 다방 등은 지난해부터 중개사협회와 업무협약을 맺고 직방을 견제하고 있다. 직방은 부동산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 영업손실 371억원을 기록하며 전년(82억원 손실)보다 적자 폭이 확대됐다. 공인중개사와 제휴 사업을 하는 자회사 직방파트너스는 지난달부터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소규모 프롭테크 스타트업들도 법정단체의 등장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반값 중개 수수료’로 유명한 다윈중개의 김석환 다윈프로퍼티 대표는 “대형 플랫폼과 경쟁하는 와중에 (중개사협회가) 네이버같은 빅테크와 손잡고 압박하면 우리는 설 자리가 정말 좁아진다”라고 말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보유한 익명의 프롭테크 대표는 “그 동안 협회의 중개사 대상 교육이 너무 부실해, 중개대상물 확인 설명서도 제대로 작성할 줄 모르는 중개사들이 많은데, 이런 법안이 통과되면 기존 시장의 문제를 신생 기업들이 개선할 여지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플랫폼을 통해 소비자들이 체감한 편익이 줄어들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그동안 프롭테크 기업들이 기술을 활용해 온라인 중개 서비스 경쟁을 주도하고, 중개 수수료 인하도 이끌어낸 면이 있다. 하지만 중개사들이 주축이 된 법정단체가 등장하면 이런 경쟁이 약해질 수 있어서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대학원 교수는 “새로운 플랫폼 확대를 저지하는 효과를 가져오는 법안은 소비자 입장에서 정보 비대칭성 해소와 선택권의 침해를 받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건 알아야 해
국회 안팎에서는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이 이번 21대 국회를 최종 통과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전망도 있다. 해당 법안과 유사한 내용이 담긴 건축사법 개정안을 둘러싼 위헌 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 지난해 1월 본회의를 통과한 이 법안은 신규로 건축사 사무소를 개업하려면 대한건축사협회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새건축사협의회 등 소규모 건축사협회가 같은 해 3월 헌법재판소에 “헌법에서 보장하는 결사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며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공인중개사법이 국회를 최종 통과되더라도, 건축사법처럼 위헌 소송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윤상언 기자 youn.san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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