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수 칼럼] 팬덤에 밀려나는 오래된 당원들

신종수 2023. 12. 12.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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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조된 팬덤 영향력 확대보다
오래된 당원들을 중심에 둬야
안정된 풀뿌리 참여정치 가능

다른 목소리 배척·억압하는
강성당원 중심 획일적 정치는
당내 민주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에 가깝다

더불어민주당이 당헌 개정을 통해 권리당원들의 전당대회 영향력을 3배 확대했다. 대의원들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3분의 1로 줄었다. 그래서 논란이 많다. 일반 국민들은 별 관심도 없고,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이 문제로 왜 이리 시끄럽냐고 국회 관계자에게 물어봤다. 그는 내가 알아듣기 쉽게 신문사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신문사에서 수십 년 동안 일해 온 팀장이나 부장들의 권한을 줄이고, 온라인으로 모집한 시민기자나 인턴기자들의 권한을 늘린 것이다. 이들이 편집국장 투표와 기사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그러면서 이게 언론 민주주의라고 한다.”

이 비유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무슨 말인지 얼른 이해가 됐다. 민주당의 경우 주로 온라인으로 중앙당에 등록해 한달에 당비 1000원씩 6개월만 내면 권리당원이 될 수 있다. 2022년 대선 당시 권리당원은 72만명 정도였고, 이재명 대표가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에도 계속 늘어 현재 100만명을 훌쩍 넘었다. 정당 정치의 역사가 깊은 영국의 노동당이나 독일의 사민당 전체 당원이 각각 40만∼50만 정도인 것에 비하면 매우 많은 숫자다. 세계적으로 당원이 줄어드는 추세인데 이렇게 짧은 기간에 급증한 것은 한국이 유일하다. 이 대표 강성 팬덤은 대부분 권리당원들이다.

이에 반해 대의원은 전국적으로 1만6000명 정도에 불과하다. 이들 상당수는 중앙당은 물론 각 지역에서 당 활동을 수십년씩 해온 사람들이다. 애당심이 많고, 민주당의 역사와 전통을 지키려 하고, 국민 정서와 여론을 고려하는 균형감을 갖고 있다고 한다. 정치학자 박상훈은 저서 ‘혐오하는 민주주의’에서 이렇게 썼다. “당 활동을 오래 할수록 역할과 책임이 커지는 구조를 가져야 정당은 안정된다. 정치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통해 균형적이고 성숙한 정치관을 갖는 것도 이들 오래된 당원들이다.”

민주당의 이번 당헌 개정은 강성 팬덤들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오래된 핵심 당원들의 영향력을 줄이는 쪽으로 이뤄졌다. 팬덤 정치의 문제는 당내 다른 목소리를 억압하고 통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당헌 개정에 대해 비명계가 나치를 닮아가고 있다며 강력 반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양한 의견 수렴이 이뤄지지 않고 팬덤이 판치는 정당을 민주적인 정당, 당원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앞서 국회 관계자의 비유를 빌리자면 온라인 시민기자와 인턴기자들이 똘똘 뭉쳐 팀장이나 부장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신문사를 민주적인 언론, 언론 민주화라고 하는 것과 같다. 민주화란 말을 아무 데나 갖다 붙이는 게 아니다.

당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규 당원들이 당내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고, 수십년 당 생활을 한 인사마저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이유로 공격하고, 자신들이 지지하는 대표가 마음대로 당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에 가깝다. 대표와 강성 팬덤에 순응하지 않으면 공천을 받기 힘든 정당은 민주 정당이 아니라 사당이나 다름없다. 이런 정당이 획일적이고 일사불란한 다른 정당과 부딪치면 우리 사회의 적대와 증오, 분열은 더 깊어질 것이다.

정당이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 공당이 되려면 중도층을 비롯한 국민 전체의 여론과 정서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목소리 큰 강성 당원들이 일반 국민 여론과 동떨어진 언행을 하는데도 당원은 정당의 주인이라고 옹호할 것인가. 사기업도 이렇게 안 한다.

기업의 목적은 주주가치 극대화지만 소비자, 임직원, 사회공동체 등 모든 이해관계자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 한다. 주주들의 주장보다 고객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을 때 더 많은 이익이 주주들에게 돌아가기도 한다. 주주 가치만 강조하면서 소비자들이 원하지 않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파는 회사는 망하는 것이다. 결국 민주당이 가야 할 길은 강성 팬덤과 이재명의 민주당이 아니라 다양한 당내 구성원들의 의견이 대의적인 시스템을 통해 자유롭고 균형 있게 반영되는 민주당, 중도층을 포함한 많은 유권자의 지지를 받는 민주당이어야 한다. 국회 산하기관인 미래연구원도 얼마 전 보고서를 통해 급조된 팬덤 당원보다 오래된 지역 당원과 대의원이 중심이 돼야 풀뿌리 참여 정치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민주당의 이번 당헌 개정은 이와 반대로 가는 것이어서 걱정된다.

신종수 편집인 js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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