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엿가락 재판, 이젠 끊어내자

남혁상 2023. 12. 12.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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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1심 선고가 내려진 문재인정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의 전말은 예상대로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송철호 변호사는 2017년 9월 경쟁자인 김기현 울산시장 관련 비위 정보를 황운하 울산경찰청장에게 제공했고, 황 청장이 수사를 진행했다.

정의기억연대 후원금 유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미향 의원의 1심 선고가 나온 건 기소 2년5개월 뒤였다.

전국 법원에서 심리 중인 민사 본안 1심 장기미제사건은 2013년 2218건에서 2022년 7746건으로 3.5배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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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혁상 편집국 부국장


얼마 전 1심 선고가 내려진 문재인정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의 전말은 예상대로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송철호 변호사는 2017년 9월 경쟁자인 김기현 울산시장 관련 비위 정보를 황운하 울산경찰청장에게 제공했고, 황 청장이 수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송 변호사의 2018년 지방선거 당선을 위해 청와대 비서실이 개입한 공소사실이 유죄로 인정됐다.

당시 청와대는 “제보자와 청와대 관계자가 우연히 캠핑장에서 만났다” 등 납득이 어려운 해명을 이어갔으나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은 최고 권력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해 공정선거와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한 중대한 범죄 행위로 드러났다.

그런데 이런 범죄에 대한 이른바 ‘정의 구현’은 너무 오래 걸렸다. 기소부터 1심 선고까지 3년10개월이다. 첫 재판을 맡은 우리법연구회 출신 부장판사는 준비기일만 6차례 열고, 1년 넘도록 본재판을 시작하지 않다가 이듬해 봄 휴직했다. 울산경찰청장은 21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이 됐다. 1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받았지만 임기는 모두 채울 전망이다.

공직선거법은 선거범 및 공범 재판 1심은 공소제기일로부터 6개월 이내, 최종심은 1년 내에 끝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선거법을 위반해 당선된 공직자가 임기를 무사히 마치면 이런 범죄를 막을 명분이 사라진다. 선거사범에 신속한 수사와 재판을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이 사건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사법 정의까지 모조리 훼손한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늑장 재판이 의도적이든, 불완전한 시스템 탓이든 심각한 문제다.

사례는 또 있다. 정의기억연대 후원금 유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미향 의원의 1심 선고가 나온 건 기소 2년5개월 뒤였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에게 가짜 인턴확인서를 써준 최강욱 전 의원도 기소 3년8개월 만에 형이 확정됐다. 역시 의원 임기 대부분을 채웠다.

정치·사회적으로 주목을 끌었던 몇몇 형사사건을 예로 들었지만 더욱 놀라운 건 이들 사건이 매우 극단적인 재판 지연 사례가 아니라는 점이다. 법관 기피, 증인 신청을 악용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비단 형사재판만 아니다. 일반 국민이 크게 체감하는 민사소송 역시 마찬가지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전국 법원의 민사소송 처리 기간은 최근 6년간 엿가락처럼 늘어났다. 지난해 민사합의 사건은 1심 판결까지 평균 1년2개월이 걸렸다. 2017년 채 10개월이 안 되던 것이 4개월 넘게 늘어났다.

민사합의 사건은 지난해 1∼3심 총 소요기간이 36.8개월로, 2017년의 22.1개월보다 14.7개월 늘어났다. 전국 법원에서 심리 중인 민사 본안 1심 장기미제사건은 2013년 2218건에서 2022년 7746건으로 3.5배 늘었다. 1심에서 상고심까지 10년 넘게 걸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소송이 길어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당사자들은 큰 고통을 겪는다. 생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경제적 부담도 늘어난다. 민사소송법은 ‘판결은 소 제기로부터 5개월 이내에 선고한다’고 규정하지만 사문화된 지 오래다.

11일 취임한 조희대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늑장 재판을 꼽았다. 그러면서 “세심하고 다각적인 분석을 통해 문제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거창하게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조항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너무도 보편적인 상식이다. 정치적 의도에서든, 법원의 웰빙화 탓이든, 법관 부족 때문이든 더 이상 엿가락 재판의 변명이 돼선 안 된다.

남혁상 편집국 부국장 hs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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