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젊게, 더 예쁘게… 보톡스에 빠진 대한민국
주름 개선 등 피부 미용 물론 치료용으로 쓰여
다빈도·고용량 시술 증가… 남용 위험성 커져
실제 10명 중 7명 꼴로 시술 후 효과 감소 경험
'기적의 독(毒)' '현대 의학에서 가장 유용한 독소'. 바로 보툴리눔 톡신을 지칭하는 말이다. 토양이나 썩은 생선에 사는 혐기성 세균에 의해 생성되는 신경 독소로, 생물 테러에 사용될 만큼 독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0여년간 '보톡스'라는 상품명으로 미용 시술과 질병 치료 등 의료 목적으로 더 널리 쓰여 왔다. 인체 주입 시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의 방출을 억제해 근육을 일시 마비시키고 수축된 근육을 이완해 주는 기능 때문이다. 수축된 근육으로 생긴 주름은 근육이 이완되면서 펴지고 마비된 근육은 쓰지 않게 되면서 크기가 줄어드는 효과가 생긴다. 과도하게 발달한 종아리·허벅지 슬림화, 사각 턱 교정, 미간 주름 개선 등 피부 미용은 물론 다한증, 사시, 안검경련(눈꺼풀 떨림), 근긴장이상증, 뇌졸중 후 경직, 안면신경마비, 뇌성마비, 만성 편두통 등 다양한 질환 치료에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국내에선 90%가 미용 목적으로 시술되는 실정이다.
이처럼 보툴리눔 톡신 사용이 늘면서 근래 내성의 위험성이 새롭게 부각됐다. 다빈도·고용량 시술의 증가로 톡신이 더 이상 듣지 않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급기야 국내 전문가단체가 톡신의 남용 실태를 경고하고, 안전 사용을 권고하고 나섰다. 한국위해관리협의회(이사장 문옥륜·서울대 보건대학원 명예교수)는 지난 10월 산하에 허창훈 분당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 등 6명으로 구성된 전문위원회를 출범하고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문 위원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전문위 출범을 “안전한 톡신 사용을 향한 첫걸음”이라고 했다.
허창훈 교수는 11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보툴리눔 톡신의 사용량 증가에 따라 내성 환자들의 수도 점차 늘고 있으며 진료 현장에서 이런 환자들을 더 자주 마주한다”고 전했다. 허 교수는 “특히 과거에는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는 환자에서 내성 사례가 보고됐으나 최근에는 미용 목적 환자에서도 내성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2019년 대한피부항노화학회의 피부과 전문의 469명 대상 조사에서 46.3%가 톡신 시술 환자에서 내성 의심 사례를 경험했다고 답한 바 있다.
보툴리눔 톡신의 내성은 최소 한 번 이상의 시술에 효과가 있었던 환자에게서 이전보다 효과가 감소하거나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의학적으로는 ‘2차 무반응’이라 부른다. 톡신은 신경 독소와 주위를 둘러싼 ‘복합 단백질(헤마글루티닌 등)’로 구성되는데, 약물 효과를 나타내는 것은 순수한 신경 독소에 의해서다. 복합 단백질은 효과와 관련 없으며 항원-항체(면역) 반응을 일으켜 내성의 원인이 된다.
엄중식 가천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순수한 신경 독소는 면역 반응이 일어나지 않으며 복합 단백질, 변성된 비활성 신경 독소, 플라젤린 등의 오염균이 면역 반응을 활성화해 중화 항체를 형성하고 이로 인해 내성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한 번 내성이 생기면 다른 부위에, 다른 목적으로 시술받아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일부 연구에 의하면 복합 단백질을 불포함한 경우 중화 항체 발생률은 ‘제로(0)%’, 포함한 제품은 5.3%로 나타났다. 현재 국내 시판 허가를 받은 톡신 제품은 총 14개이며 이 가운데 복합 단백질을 분리해 순수 신경 독소만 정제한 제품은 2개뿐이다.
아울러 시술 용량, 횟수 및 간격, 환자의 면역 체계, 노화 등도 내성 발생에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적정 용량과 주기를 지키지 않고 시술을 반복할 경우 위험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전문위원회가 지난달 보툴리눔 톡신 시술 경험 있는 20~59세 여성 1000명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한 결과(그래픽 참조), 다빈도·고용량 시술 경향성이 확인됐다. 무엇보다 톡신에 대해 불충분하고 부정확한 정보 획득이 문제로 지적됐다. 또 응답자 10명 중 7명꼴로 시술 후 효과 감소를 겪었다고 답해 내성이 의심됐으며 이럴 경우 절반 가까이가 병원을 옮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되면 환자의 내성 여부에 대한 확인이 어려워 적절한 대처와 관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미용 목적보다는 치료용으로 톡신을 사용할 경우 내성 발생률이 높다. 한 번에 더 많은 용량이 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용 목적 톡신도 다양한 부위에 고용량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 전세계적으로 내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허 교수는 “특히 요즘은 미용 톡신의 시술 분야가 얼굴에서 몸으로 확대(‘보디 톡신’으로 통용)되면서 사용량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어 이로 인한 내성 발생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과거 미간 주름 시술만 하는 경우 1회 사용량은 8~12U였으나 최근 종아리 톡신의 1회 사용량은 100~120U로 10배에 달한다.
허 교수는 안전한 톡신 사용을 위해선 내성 가능성이 없고 일관된 역가(엄격한 품질 관리로 균일한 효과)를 가지며 보관·이동 시 온도 변화에도 일정한 상태 유지가 가능한 제품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조 과정에서 복합 단백질과 비활성 신경 독소를 포함하지 않은 제품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허 교수는 “신경 독소는 제품을 안정화하기 위해 첨가하는 부형제의 종류에 따라 비활성 신경 독소로 변성될 수 있기 때문에 부형제 성분을 확인해야 한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부형제로 염화나트륨을 사용할 경우 비활성 신경 독소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부위별 적정 용량과 주기에 맞춰 시술받아야 한다. 미용 목적일 경우 일반적으로 3개월 이내 재시술이 권장되지 않는다. 또 이전의 시술 이력을 체크해 지속되는 주기가 줄어드는지, 효과를 보기 위해 필요한 용량이 증가하고 있지는 않은지 개인별로 점검이 필요하다. 톡신은 혈청형에 따라 A형과 B형 제품으로 나뉘는데, 한쪽에 내성이 생겼다고 다른 타입으로 바꾸는 것은 권장하지 않는다. 두 혈청 간 빠른 면역 반응을 초래해 일시적 효과가 있더라도 결국 치료 실패를 경험했다는 보고가 있다.
허 교수는 “톡신 효과가 떨어진다고 의심해 병원을 옮기는 행태는 의료진 입장에선 내성 발생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게 하고 환자들은 필요한 주기를 지키지 않고 고용량의 시술 위험을 높이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시술 전 본인이 사용할 제품과 시술 용량, 부위 등을 확인하고 해당 시술을 통해 만족할 만한 결과가 있었는지 체크해야 한다. 이후 재시술이 필요한 시점에 동일한 방법으로 시술했을 때 동일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내성을 의심하고 의료진과 상담을 통해 시술 방법 등을 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만약 다른 병원으로 변경했다면 시술 전 의사에게 자신의 과거 시술 이력 등을 반드시 전달해 과도한 용량의 사용과 짧은 주기의 반복 시술을 방지해야 한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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