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현덕의 AI Thinking] 오픈AI가 촉발한 ‘착한 AI’의 딜레마, 해법은 없나
과도한 상업주의 논란 일으키기도
친환경 전기차 개발 교훈 삼아
새로운 길 개척하는 자세 필요
올해 인공지능(AI) 업계 최대의 사건은 오픈AI 사태(CEO 샘 올트먼의 해고와 복귀)일 듯하다. 이 사건을 통해서 ‘착한 AI’의 딜레마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원래 오픈AI는 상업주의가 아닌 ‘안전한 AI’, ‘착한 AI’, ‘오픈(open) AI’ 철학을 내걸고 등장했다. AI가 언젠가 지능 증강으로 스스로 능력을 재설계하는 날이 오면 인간 절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이에 비영리 단체 오픈AI를 설립하여 AI의 가속적 발전 속에서 안전한 ‘홍익 AI’의 창조를 약속했다. AI 도구에 안전성을 내장하고, AI의 오용이나 남용을 막아 “온 인류를 이롭게 하는 안전한 범용 인공지능(AGI)을 창조할 것”이라는 것이다. .
이 얼마나 고귀한 생각인가? 이같이 고귀한 뜻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룬 오픈AI 챗GPT는 역설적으로 AI의 상업화 경쟁에 불을 붙였다. 구글도 질세라 멀티 모달 AI(Multi Modality AI)로 텍스트, 음성, 이미지, 영상 등이 함께 하는 제미나이(Gemini)를 발표했고, 페이스북(메타)은 대화형 메타AI를 기반으로 AI비서 라마 시리즈를 내놓았다.
과연 ‘착한 AI’는 가능할까? 착한 AI의 딜레마를 이해하기 위해서 무엇 보다도 오픈 AI를 주도한 사람들이 ‘페이팔(PayPal) 마피아’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2015년 일론 머스크(테슬라, 스페이스X 창립자), 샘 올트먼(와이 콤비네이터 대표), 피터 틸(팔란티어 대표), 레이드 호프먼(링크드인 창립) 등은 10억 달러(약 1조3200억원)를 오픈AI 창립자금으로 모았다. 그런 점에서 챗GPT의 등장은 페이팔 마피아가 오픈AI 마피아로 다시 모여 새 시대를 예고하는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페이팔은 1세대 핀테크 회사로 고객들이 페이팔에 신용카드나 은행 계좌를 등록해두면 간편하게 결제와 거래를 할 수 있도록 중개해주는 서비스다. 이들이 마피아로 불린 이유는 이베이에 페이팔을 팔고 나서 다시 자기 네트워크에 들어오는 창업자들을 지원해 모두 거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강점은 처음부터 ‘착한 기업 철학’이 아니라 기업가정신과 혁신 DNA였다. 즉 이들은 안주하는 삶보다는 재창업과 벤처 투자를 통해 리스크를 감수하며 도전하는 정신을 고취해 실리콘벨리 창업 생태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지난 9월 기준으로 이들이 창업하거나 인수한 기업들의 시가 총액을 합하면 1조 달러가 넘는다. 이렇게 도전과 혁신DNA를 체화하고 살아온 마피아들에게 “경쟁의 속도를 멈추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삶을 포기하라”는 요구나 마찬가지일 지 모른다.
오늘날 자본주의에서 창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사람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주창하며, 기업이 속한 사회에 혜택을 주어 공익을 실천하고자 한다. 이런 배경 속에서 ‘이익을 위한 정의’냐, ‘정의를 위한 이익’이냐의 딜레마에 직면한다. 그 한계와 딜레마를 극복하려는 시도 중의 하나가 사회적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픈AI도 이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안전한 AI, 착한 AI의 구현(즉 사회적 문제 해결과 정의 실현)을 위하면서도 이윤 추구 원리를 도입하고 있으므로 처음부터 딜레마를 안고 시작한 셈이다. ‘기업의 이윤추구가 사회책임 실천과 함께 갈 수 있는가’하는 문제는 혁신과 상업화를 위해 질주하는 기업에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익을 위한 정의’는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해도 결국 이익이 우선이고, 반대로 ‘정의를 위한 이익’은 아무리 고귀해도 기업 고유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딜레마는 ‘착한 AI’와 상업주의 간에 건널 수 없는 깊은 심연이 놓여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이같은 근원적인 딜레마 속에서 ‘착한 AI, 안전한 AI’라는 명분은 구글의 핵심 과학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딥러닝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요슈아 벤지오 교수도 오픈AI에 합류했다. 구글과 페이스북보다 더 많은 인센티브를 제시했다. 오픈AI는 아이러니하게도 돈의 철학을 배격한다면서 돈으로 최고의 인재를 불러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단순히 돈에 지배받는다고 말하기 어려운 점은 남들이 가보지 않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시장을 만들려 한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AI의 가속 발전과 상업화를 우려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요구로 들릴지도 모른다. 바다에서 태어난 고래에게 육지의 삶을 살지 않는다고 나무라는 것과 같다. ‘안전한 AI’로 돌아가기 위해 AI 개발 속도를 늦추라는 이사회 요구는 샘 올트먼에게는 처음부터 수용 불가능한 주문이었다.
오픈AI 챗GPT 탄생 1년 전에는 현재 상위 50곳에 포함된 생성형 AI 기업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오픈AI를 비롯해 이들 대부분은 구독 모델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 상업화에 성공한 것으로 조사됐다. 더 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오픈AI는 올해 13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는 생성형 AI 시장 규모가 지난해 101억 달러에서 2030년엔 1093억 달러로 급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CNBC는 최근 글로벌 테크기업들에게 생성형 AI는 ‘마법의 언어’가 되고 있다고 했다. 구글 알파벳의 CEO 순다르 피차이는 AI를 무려 66번 언급했고,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 47번이나 이 단어를 강조했다.
그럼 AI의 가속 패달 속에서 착한 AI는 설 땅이 없는가? 아니다. 답은 있다. 다만 창의적이어야 한다. 기업이익과 사회책임의 딜레마를 극복한 사례는 모두 창조, 혁신의 사례다. LG전자는 인도에서 ‘모스키토 어웨이 TV’(모기 쫓는 TV)를 내놨고, 아프리카에선 말리리아 모기 퇴치용 에어컨도 출시했다.
모두가 환경오염의 문제를 우려할 때 어떤 기업은 자동차의 매연을 줄이는데 골몰했지만, 어떤 기업은 완전히 게임의 룰을 달리하는 친환경 전기차를 내놓았다. 타협적이거나 어중간한 해법은 답이 되지 않는다. 착한 AI와 상업주의의 대립을 넘어 인간과 AI의 완전한 협업 모델이 창조될 때만 정답이 된다는 뜻이다.
오늘날 생성형 AI를 둘러싼 별들의 전쟁(구글, 오픈AI-MS, 메타-IBM, 애플 등의 경쟁)은 한국 토종 AI모델을 추구하는 기업들에게도 시사하는 바 크다. 그것은 전혀 다른 게임, 즉 새로운 게임의 룰을 사용하여 AI 딜레마를 극복하는 일이다. 창조만이 답이다.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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