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도의 퍼스펙티브] 미국·이란 확전 꺼리지만 중동 앞날은 안갯속
석 달째 접어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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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항모의 중동 급파,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하겠다” 위협
러시아는 미그-31 흑해 배치, 중국 군함 6척도 호르무즈로 이동
내년 대선 앞둔 미국과 이스라엘에 이란은 말려들지 않을 태세
누구도 전선 확대 원하지 않으나 자칫 국제전으로 번질 수도
」
불의의 습격에 추락한 이스라엘
그러나 이번 전쟁은 이스라엘이 이겨도 이겼다고 말하기에는 찜찜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철통 안보 신화의 주인공으로 세계가 경탄해 마지않았던 이스라엘군의 위상이 한없이 추락하였다. 역사상 처음으로 하마스가 매우 잘 짠 계획으로 이스라엘 영토를 공격하여 가자 지구만큼이나 넓은 지역을 장악하였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침공을 미국의 9·11 테러 사태에 비교하였지만, 사실 이스라엘은 9·11 테러를 훨씬 뛰어넘는 폭풍에 직면해 있다. 강력한 적에 둘러싸여 있는 이스라엘은 이번 전쟁 이후 예전에 누렸던 강국의 특권적 지위를 쉽게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역내에서 힘을 제대로 쓸 수 있을지, 안전한 국가로 존재할 수 있을지 의심하는 분위기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이라도 하듯, 극우인 아미하이 엘리야후 이스라엘 예루살렘·문화유산 장관과 탈리 고틀립 여당 의원이 가자 지구에 대한 핵무기 사용을 촉구하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전쟁으로 하마스보다 더 강력하고 대하기가 훨씬 까다로운 적을 이웃으로 둔 이스라엘이 장기적으로 안전한 국가로서 온전히 존립할 수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달갑지 않은 시험장이 열린 셈이다.
아랍민족주의에서 이슬람으로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이스라엘이 직면한 정세에 큰 변화가 일었다. 혁명 성공과 함께 ‘억압받는 자의 해방’이라는 혁명 구호가 이란 국내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옮겨갔다. 혁명 지도자 호메이니가 직접 반이스라엘 정책을 이끌었다. 라마단월 단식 마지막 금요일을 ‘예루살렘의 날’로 지정하여 팔레스타인 해방에 헌신하는 분위기를 끌어올렸고, ‘카르발라를 거쳐 예루살렘으로’라는 구호는 이란·이라크 전쟁 때 전의를 북돋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자 이란의 지원으로 생긴 헤즈볼라는 반이스라엘 투쟁의 핵심 동력원이 아랍민족주의에서 이슬람으로 바뀌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에 대패한 직후인 1968년 무슬림 학자들이 이집트 카이로 아즈하르대학에 모여 코란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이스라엘을 막는 지하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랍인뿐 아니라 무슬림의 투쟁을 독려하였지만, 1948년 이스라엘 독립 때부터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를 살해할 때까지도 아랍민족주의가 반이스라엘 투쟁을 이끌었다. 그런데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1982년 헤즈볼라, 1987년 하마스, 1988년 알카에다가 등장하면서 아랍민족주의 대신 이슬람이 반이스라엘 투쟁의 동력원이 되었다.
‘시아 초승달’ 만들어준 미국
이슬람이 아랍민족주의를 대신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아랍 국가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였다. 아랍어를 모국어로 쓰지도 않는 이란이 선명한 이슬람의 가치를 외치며 반이스라엘 투쟁을 주도하여 반이스라엘 아랍 민심을 사로잡을 가능성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란이 이슬람 공화정이라는 독특한 체제로 민의를 반영한 선거를 한다는 자체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랍 왕정은 영국이나 일본과 달리 왕이 군림도 하고 통치도 하는 절대왕정으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자국 내 시아파 주민을 수니파 주민과 동등한 존재로 대하지 않았기에 시아파인 이란의 영향으로 이슬람 혁명의 불씨가 옮겨올 것도 걱정하였다.
아랍 왕정국이 전전긍긍하고 있는 사이에 이란은 중동에서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결정적 역할을 한 나라는 역설적으로 친아랍 반이란 지향의 미국이었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면서 이란은 24년 앓던 이를 속 시원하게 뽑았다. 이란을 막는 아랍 세계 동쪽의 수호자로 자처한 사담 후세인이 사라졌으니 얼마나 좋은가!
이라크 건국 이래 소수 수니파의 지배에 숨죽이며 살던 다수 시아파가 미국식 민주주의 선거에 따라 집권하면서 이란의 영향력권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의 표현대로 이란에서 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시아 초승달 지역’이 탄생하였다. 역내 아랍 수니 국가뿐 아니라 이스라엘에도 악몽이 현실화하는 순간이었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최정예 부대인 고드스(예루살렘)군 사령관 솔레이마니는 2011년 ‘아랍의 봄’ 이래 이란의 영향력을 굳게 다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2020년 1월 3일 바그다드 공항에서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솔레이마니를 제거한 이유다.
‘저항의 축’에 포위된 이스라엘
이스라엘이 마주한 현실은 포위라는 말이 가장 적확하다. 북쪽 레바논의 헤즈볼라, 북동쪽 시리아의 친이란 아사드 정권과 시아파 무장 조직, 동쪽 이라크의 시아파 무장 조직, 남쪽 예멘의 안사룰라(후치 반군)가 가자 지구의 하마스와 함께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을 형성하며 이란의 엄호 아래 언제든지 한 방을 날릴 수 있는 준비 자세를 갖추고 있다.
수니파인 하마스를 제외하고서라도 저항의 축 모두가 이란과 같은 시아파는 아니지만, 이란의 지원 아래 친이란, 반이스라엘, 반미로 뭉쳐 있다. ‘알라는 가장 위대하시다,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 유대인에 저주를, 이슬람에 승리를’이라는 안사룰라의 구호는 저항의 축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저항의 축을 이끄는 이란은 명령을 내리는 나라가 아니다. 저항의 축은 독립성과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서로 행동을 조율한다. 잠재적인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급변하는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한다. 감정에 이끌려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도록 자제하면서 위험한 행동을 피하는 신중함으로 다양한 카드를 한꺼번에 사용하지 않으며 오랫동안 대규모 분쟁에 대비해왔다.
일례로 이스라엘이 헤즈볼라가 도발하면 레바논을 초토화하겠다고 경고하자, 헤즈볼라의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현재 저항 세력은 최상의 상태이며, 모든 시나리오를 완벽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대응하였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를 공격하면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를 공격할 것이고, 공항이면 공항, 항구면 항구, 대량 살상은 대량 살상으로 맞대응하겠다는 공식을 적용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절제·억제 없이는 평화 어려워
하마스 기습 이래 이란 외교장관 압돌라히안은 전선이 여럿 열릴 가능성을 경고하였다. 어느 나라도 전쟁에 말려드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란 역시 마찬가지다. 스스로 짜 놓은 계획에 따라 싸우고 싶어 하지 예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엉겁결에 싸움판에 끌려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더욱이 잔꾀의 대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수에 말려들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자꾸 전선을 확대하여 궁극적으로 미국과 이란의 싸움 구도를 만들고 그 틈을 타서 이란에 결정적 한 방을 때리려고 몸이 단 네타냐후의 계산에 놀아나지 않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현재 이란은 신중한 언행으로 억지력을 발휘하면서 확전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이스라엘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란과 미국 모두 확전을 원하지 않는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시작하자 미국은 항공모함을 급파했고, 이란의 유력 정치인들은 미국이 참전하면 호르무즈 해협을 막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미국은 헤즈볼라가 본격적으로 참전하면 이란이 미국에 선전포고한 것으로 여기겠다고 경고하였다. 서로 크게 싸우기는 싫으니 자제하라는 말이다.
모두가 패자일 수밖에 없는 전쟁
시리아에서 공군과 해군 기지를 운영하는 러시아도 미국 항모가 뜨자 항모를 파괴할 수 있는 초음속미사일을 장착한 미그-31기를 흑해로 긴급 배치하였고, 에너지 안보를 위해 중국 역시 6척의 군함을 호르무즈 해협으로 움직였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국지전이라 아니라 국제전으로 확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고전하는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대선을 앞두고 또 다른 전선을 열고 싶지 않다. 그러나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상황에서 어느 누가 헛발질이라도 하면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절제와 억제 없이 평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프란체스코 교황의 말처럼 모두가 패자일 수밖에 없는 전쟁이 멈추기를 바란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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