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회숙의 음악으로 읽는 세상] 헤라클레스 조롱한 옴팔레의 스케르초
화가 루벤스가 그린 ‘헤라클레스와 옴팔레’(사진)는 헤라클레스와 옴팔레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그림에서 근육질의 헤라클레스는 머리에 여자처럼 띠를 두른 채 옴팔레에게 조롱을 당하고 있다. 헤라클레스의 귀를 잡아당기고 있는 옴팔레의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하다.
생상스는 비슷한 상황을 ‘옴팔레의 물레’라는 교향시로 작곡했다. 이 곡을 듣고 있으면 헤라클레스를 비웃는 옴팔레의 모습이 연상된다. 음악은 헤라클레스가 돌리는 물레를 연상시키는 모티브로 시작한다. 그리고 옴팔레와 여자들이 헤라클레스를 조롱하는 소리가 들린다. 헤라클레스의 물레는 회전 강도를 높이면서 빙글빙글 돌아가고, 그 모습을 본 옴팔레와 여자들은 키득 키득 웃으며 영웅의 몰락을 즐거워한다. 그렇게 음악은 시종일관 밝고 경쾌하게 흘러간다.
생상스는 이 곡이 신화의 이야기를 서사적으로 묘사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옴팔레와 헤라클레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느낀 감정을 그저 스케르초로 표현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곡의 테마를 ‘여자의 매혹’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여자의 매혹’이 아닌 ‘여자의 조롱’을 본다. 특히 중간중간 끼어드는 관악기의 익살스러운 음형과 현악 합주가 서정적인 멜로디를 연주하는 동안 연신 빵빵거리는 관악기에서 이런 기분을 느낀다. 생상스는 경쾌한 어조로 옴팔레의 매혹을 그리고 싶었겠지만 그렇다면 스케르초는 피했어야 했다. ‘스케르초’ 하면 ‘경쾌한 익살’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스의 굴욕을 익히 알고 있는 우리가 스케르초를 들으며 상상하는 것은 영웅을 노예로 만든 옴팔레의 치명적인 매력이 아니다. 영웅을 노리갯감으로 데리고 노는 옴팔레의 다소 악의적인 비웃음, 통쾌한 조롱 같은 것이다. 헤라클레스의 귀를 잡아당기며 재미있어 하는 루벤스 그림의 옴팔레처럼.
진회숙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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