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의 침묵, 송영길의 침묵... 이처럼 다른 반응 [안호덕의 암중모색]
[안호덕 기자]
▲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을 다룬 <서울의 소리> 영상 캡처. |
ⓒ 서울의소리 |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관련한 검찰 조사에서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묵비권 행사를 한 것을 두고, 여당과 언론이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그런데 송영길 전 대표의 묵비권 행사에 이렇게 벌떼처럼 달려들 일인가 의문이다. 야당 당 대표를 지낸 인물이 검찰 조사에서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 옹색하다는 여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송 전 대표는 본인의 의혹에 관한 수사를 검찰의 '정치적 기획수사'로 판단하고 진술거부권으로 스스로를 방어하겠다는 입장이다. 묵비권이 모든 국민이 행사할 수 있는 헌법의 인권 보장 장치임을 감안한다면, 현재 그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과한 측면이 없지 않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12일 송 전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라 한다.)
때로는 여야의 논쟁 과정에서 상대방을 향한 비난이, 스스로의 치부와 맞닿을 때가 있다. "숱한 범죄 혐의에도 불구하고 뻔뻔하게 큰소리를 치는 셀프 치외법권자", "결말은 법의 엄중한 심판뿐임을 깨닫길 바란다" 이같은 비판은 송 전 대표의 묵비권 행사를 두고 국민의힘이 내놓은 논평 내용의 일부다. 그런데 비난의 대상을 300만 원 상당의 '디올백'을 수수하고도 함구하고 있는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로 바꿔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주가조작 혐의, 모친 최은순씨의 통장 잔고증명서 위조 사건 연루 의혹, 명품백 수수 의혹 등에 있어서 '치외법권자' 행세를 하고 있는 김건희 여사 아닌가? 국민의힘 논평처럼 결말에서 '법의 엄중한 심판이 있어야 된다는 것'은 국민 다수의 여론이기도 하다.
▲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된 송영길 전 대표가 8일 오전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 윤석열 대한민국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2023년 11월 20일 이틀간의 영국 국빈 방문을 위해 런던 스탠스테드 공항에 착륙한 후 항공기에서 내리고 있다. |
ⓒ 로이터=연합뉴스 |
"평범한 국민은 법을 어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잘못이 밝혀지면 벌을 받는 게 상식이다. 민주당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자신들은 법을 어겨도 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난 6일 자 <조선일보> 사설 <민주당서 나온 "당대표들 도덕성 하나같이 평균 이하" 탄식>의 일부분이다. 언론들도 여당과 비슷하다. 야당을 향해서는 잘못이 밝혀지면 벌을 받는 게 상식이라고 말하면서,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서는 '자신들은 법을 어겨도 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비판하지 않는다.
송영길 전 대표의 묵비권 행사에 대한 십자포화와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한 언론의 침묵을 비교하면, 공정성과 형평성이 심하게 결여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조선일보뿐만이 아니다. 8일 <한국경제> 신문은 사설인 <송영길 독설과 막말, 언제까지 들어야 하나>에서 송 전 대표의 묵비권 행사를 "양심수인 양 항변하는 태도"라고 나무랐다. 이런 비판은 김건희 여사에게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그런 언론을 참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김건희 여사에 대한 비판적인 논조의 기사는 내용의 진의와 상관없이 큰 관심의 대상이 된다. 12월 7일 <동아일보>에 실린 <이 나라 보수는 '김건희 리스크'를 더 이상 안고 갈 수 없다>는 제목의 이기홍 칼럼도 그중 하나다.
내용은 보수적인 시각의 전형이다. 다수당의 폭거를 일삼는 민주당에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가 큰 빌미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로 시작한 글은, "특검 공세에 대응할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명품백 파문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해법으로 제시한 것이 관저를 떠나 서초동 사가에서의 '근신'이다. 사법 당국의 철저한 수사나 처벌 혹은 윤석열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는 요구는 없다. 그런데도 이 칼럼에 대해 '보수의 반란'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침묵의 카르텔이 깨어졌다는 위기감, 입도 뻥긋 말아야 할 '치외법권' 영역에 누군가 발을 들여놓았다는 낭패감이 빚어낸 블랙코미디 같은 장면이다.
▲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정책의원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국회에 도착한 모습. |
ⓒ 남소연 |
"제가 그 내용을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뭐 특별히 언론에서도 상세한 보도가 안 나왔기 때문에 제가 내용을 잘 알지 못합니다. (수사가 필요하다면 혹시 수사를,,,) 너무 가정을 가지고 계속 물어보시면 뭐..."
지난 6일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내용을 잘 알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지난달 21일 "만약 어떤 고위공직자가 공직 생활 내내 세금 빼돌려서 일제 샴푸 사고 가족이 소고기나 초밥을 사 먹었다면 탄핵 사유로 인용될 것 같다"라는 발언과 비교하면 속 보이는 변명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의혹에 대해서는 '만약'이란 단어를 써 가정하고, 가정된 사실을 탄핵 사유로 인용될 것 같다며, 수사의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했던 한 장관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알고 있고, 불법의 증거가 영상으로 확연히 드러난 일을 모른다니... 이런 발뺌이야말로, 지탄받아야 하는 침묵이다. 내용을 잘 알지 못한다고? 그건 완강하게 '수사 거부'의 뜻을 드러내는 표현일 뿐이다.
김영란법(청탁금지법) 주무 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의 침묵도 문제다. 동일인에게 1회 100만 원 또는 1년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수수했을 때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 벌금을 규정하고 있는 게 김영란법의 처벌 조항이다. 사건을 인지했을 때 지체없이 조사에 착수하고 범죄 사실이 확인되었을 때 사법당국에 수사를 의뢰해야 하는 것이 국민권익위의 역할이기도 하다. 그런데 명품백 수수 의혹에 관한 신고 여부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답변(한겨레 신문) 정도가 지금까지 알려진 국민권익위 입장이다.
대통령실도 침묵한다. 경위 설명은 물론 사과도 없다. 그러면서도 한편에선 대통령실 관계자가 언론에 <서울의 소리>가 김건희 여사에게 준 명품백 구입을 위해 북한 자금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며 '북한 개입설'을 흘리기도 하고, 당시 받은 명품백을 '반환 선물'로 분류해 대통령실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는 해명을 내놓기도 했다. '함정 취재'에 걸렸다며 '독수독과론'으로 물타기하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러나 300만 원 디올 명품백은 김영란법을 위반하며 김건희 여사에게 건네졌고, 반환되지도 않았으며, 윤리에 어긋나는 취재라 하더라도 수수한 사실을 면죄받을 수 없다는 건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대통령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국민권익위의 침묵. 이것은 행정부의 '직무유기' 범죄나 다름 없다.
언론 역시 이래도 되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송 전 대표의 묵비권 행사에 대해 불편한 국민들의 생각을 전할 수 있다. 하지만 송 전 대표의 묵비권 행사를 비판하는 신문사 지면에선, 정작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 기사를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이게 언론의 정의고 공정인가? 이쯤 되면 언론의 침묵은 범죄 방조를 넘어서는 은폐이고 동조다.
"잘못이 밝혀지면 벌을 받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야당을 향해서만 이런 주장을 하는 건 언론의 폭력이다. "언제부턴가 자신들은 법을 어겨도 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비난도 야당에게만 해서는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명품백을 수수하고도 침묵하는 김건희 여사에게 '잘못이 밝혀지면 벌을 받는 게 상식이고, 법을 어겨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언론이 필요한데 잘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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