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겐 납작, 당에만 큰소리... 인요한의 "개그 콘서트"
[박현광 기자]
▲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7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혁신위 전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승강기에 올라 있다. |
ⓒ 남소연 |
'전권'을 약속받았던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회'는 임기 14일을 앞둔 12월 7일 조기 해산을 결정했다. 인요한 위원장이 마지막 남긴 말은 "정치가 얼마나 험난하고 어려운지 알아볼 수 있는 기회"였다는 것. 즉, 당내 기득권('윤핵관·영남 중진·지도부)의 저항에 가로막혀 혁신에 실패했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혁신위가 혁신 동력을 상실한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10.11 강서구청장 패배 원인 진단 실패와 인요한의 '입'이다.
▲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10월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인요한 혁신위원장과 만났다. |
ⓒ 공동취재사진 |
"와이프와 아이만 빼고 (국민의힘은) 다 바뀌어야 한다."
'특별귀화 1호' 순천 태생인 푸른 눈의 의사, 인 위원장의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말을 빌린 첫 일성은 개혁 의지를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당내에 번졌던 기대는 곧바로 의심으로 바뀌었다. 인 위원장의 "김한길 (국민통합) 위원장과 평소에도 전화를 매일 한다"는 발언 탓이었다.
10.11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건, 보궐선거 원인 제공자였던 김태우 후보를 무리하게 공천했던 '윤 대통령 공천 개입 논란'이었다. 그 불씨가 내년 총선으로 옮겨붙지 못하도록 하는 임무를 띤 혁신위원장이 윤 대통령의 책사로 불리는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과 가까운 인물이라면 우려될 수밖에 없었다.
"당내 낙동강 하류 세력은 뒷전에 서야 한다."
우려는 기우에 그치지 않았다. 인 위원장은 임명 다음 날인 10월 24일 <TV조선>과 한 전화 인터뷰에서 당내 주류 세력을 향해 발톱을 세웠다. '낙동강 하류 세력 뒷전' 발언은 당내 기반인 영남(TK·PK) 지역구 의원들의 희생을 뜻하는 것이었다. 대통령의 변화와 관련해선 침묵했다. 32년 동안 환자를 돌봐서 치료에 자신 있다는 인 위원장이 이미 나와 있는 '진단서'와 다른 '처방'을 한 셈이다.
▲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11월 3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혁신위 제3차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 남소연 |
논란이 커지자 인 위원장은 "농담"이었다며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전열을 가다듬은 인 위원장은 11월 3일 2호 '희생' 안건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당내 기득권 세력(윤핵관·영남 중진·지도부)에 선전포고를 선언했다.
"당 지도부 및 중진, 대통령과 가까이 지내는 의원들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거나 수도권 지역 어려운 곳에 와서 출마하는 걸로 결단을 내려줄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온돌방 아랫목에서 큰 인요한, "나라님"에만 침묵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당시 수행실장을 맡았던 이용 국민의힘 의원이 "당이 요구하면 (총선) 불출마하겠다"며 인 위원장의 희생 요구에 응답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당내에서 인 위원장의 희생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이는 없었다.
의원들의 '생존'이 달린 문제이기도 하지만, 인 위원장의 명분은 당을 설득하기엔 부실했다. 근원 문제인 대통령의 공천 개입이 가능한 구조를 그대로 둔 채 당에만 책임을 전가했기 때문이다. '개혁 대상을 잘못 찾았다' '당에만 희생을 요구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던 이유다.
"난 온돌방 아랫목에서 큰 사람이다. (대통령 변화를 촉구하는) 월권하지 않는다."
▲ 한미동맹 70주년 특별전 관람하고 인요한(교수)와 악수하는 윤석열(대통령). 2023년 6월 24일. |
ⓒ 대통령실 제공 |
'윤심팔이' 인요한, 대통령실의 '손절'
"대통령을 사랑하면, 결단을 내려라" - 채널A 유튜브 '라디오쇼 정치시그널'
"(그냥) 우유를 마실래 아니면 매를 좀 맞고 우유를 마실래" -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 위원장은 멈추지 않고 '윤핵관·영남 중진·지도부'의 희생을 압박했다. 하지만 당의 희생만 강요할수록 당내 기득권 세력에 저항할 명분만 제공할 뿐이었다. 당 안팎에선 검사 출신의 대통령 측근을 공천하기 위한 물갈이가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 ‘김대중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출범식 및 후원의 날’ 행사가 11월 8일 오후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김대중재단 주최로 열렸다.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참석 후 행사장을 떠나고 있다. |
ⓒ 권우성 |
"(대통령 쪽에서) '지금 하고 있는 걸 소신껏, 거침없이 해라'는 신호가 왔다." -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
지지부진한 상황이 이어지자, 인 위원장은 '윤심'을 끌어왔다. 하지만 이는 인 위원장을 깊은 수렁으로 빠뜨렸다. 해당 발언 이후 대통령실이 인 위원장을 '손절'했기 때문이다. 인 위원장의 '신호를 받았다'는 발언과 관련해 대통령실 당무 개입 논란이 일자 대통령실 관계자는 11월 16일 "그런 것은 없었다"고 일축했다.
인 위원장은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11월 30일 앞서 권고 수준에 그쳤던 '당 지도부·영남 중진·윤핵관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를 6호 안건으로 공식 의결해 당 지도부를 압박했다. 하지만 "당과 국가를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 나올 것"이라는 인 위원장의 '믿음'은 구원받지 못했다. 인 위원장은 김기현 대표와 회동한 다음 날인 12월 7일 혁신위 조기 해산을 발표했다.
▲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11월 4일 오후 부산 경성대학교에서 열린 이준석 전 대표, 이언주 전 의원이 진행하는 토크콘서트에 참석했다. 이날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1시간 30분가량 진행된 토크콘서트를 지켜보고 자리를 떠났다. 이 전 대표와 별도의 대화는 없었다. |
ⓒ 연합뉴스 |
혁신위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개혁 동력을 상실한 건 '인요한의 입' 때문이었다.
인 위원장은 윤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던 이준석 전 대표를 '포용'하겠다는 기조를 세우고 공을 들였다. 1호 혁신 안건으로 '징계자 대사면'을 선택했고, 부산에서 강연하는 이 전 대표를 무작정 찾아가 기다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전 대표는 이를 거부했다. 이 전 대표는 '사면'이라는 단어 선택에 불쾌감을 드러냈고, 11월 4일 부산에서 열린 강연에 찾아온 인 위원장을 향해 "미스터 린턴(Mr, Linton)"이라고 영어로 호칭하면서 굴욕감을 안겨줬다.
▲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11월 26일 충남 태안을 찾아 특강을 하고 있다. |
ⓒ 신문웅 |
인 위원장이 11월 26일 "준석이는 도덕이 없다. 그것은 준석이 잘못이 아니라 부모의 잘못이 큰 것 같다"고 이 전 대표의 '부모 욕'을 한 것이다(관련 기사 [단독] 인요한 "준석이는 도덕이 없어, 부모 잘못 큰 것 같다" https://omn.kr/26jbo).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 위원장에 대한 여론은 당 안팎에서 급속도로 악화했다. 인 위원장은 공식 사과한 뒤 자숙의 시간을 보내야 할 정도였다.
활동을 재개한 인 위원장은 사실상 혁신위 활동의 마침표를 스스로 찍었다. 11월 30일 혁신위 전체회의를 마친 뒤 "저를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추천해 주기 바란다"고 요구한 것이다. 결국 '자기 정치'를 위해 혁신위를 발판으로 삼았다는 비판이 제기된 대목이다.
결국 인 위원장은 더 이상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없었고, 정치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리자 자연스럽게 혁신위 종료를 선택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혁신위를 향해 혹평을 내놨다.
'한 편의 개그 콘서트를 보여주고 떠났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외국 반도체업체의 뼈아픈 지적... 윤 대통령이 망치고 있다
- 채 상병 사망사건, 부하가 자기 명령 참칭했다는 사단장
- '김건희 명품백' 의혹, 이대로 놔둘 건가
- "총 들고 일본군과 싸우겠다"던 여성, 묘비가 달라졌다
- "문 대통령의 손준성 검사 유임, 윤석열 '검찰 쿠데타' 길 깔아줬다"
- "개딸 명칭 공식 파기한다" 민주당에 올라온 청원, 왜?
- [오마이포토2023] '윤석열 독재 거침없이 싸워야 하니까'
- 민주당 첫 영입은 '기후 변호사'... "미래세대 권리 지키겠다"
- "대통령 아내 구하고 정권 전체 위험 빠트릴 건가?"
- "홍준표 시장님, 편지 배달이요" 지하철에 등장한 동물들의 정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