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코데코 리빙룸 아케이드: 삶을 짓는 공간을 조명하다 #요즘전시
도시 풍경은 지역의 문화, 역사, 독특한 분위기와 특성을 두루 담는 그릇과 같다. 수십 년 때로는 수백 년 전부터 자리한 건축물, 광장부터 하늘과 맞닿은 윤곽선을 겹겹이 채워 그리는 고층빌딩, 유행에 따라 변화하는 상업시설과 주거지에 이르기까지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경관을 자아낸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만큼, 그중에서도 서울처럼 풍광이 극적으로 뒤바뀐 곳이 있을까. 196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고도의 성장을 이룬 경제 도약과 도시화로 도심 공간 부족을 겪고 주택 수요가 증가하자 많은 가구를 수용할 수 있는 수직적인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 소위 주공단지를 필두로 한 1970~80년대에 공공주택사업이 추진된 것이다. 단기간 내 효율적으로 주거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아파트 단지는 대체로 비슷한 디자인과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광화문 일대의 변천사를 100년간 목도해온 일민미술관 건축물에서 개인이 이러한 환경 변화에 맞물려 삶의 터전을 정성껏 가꾸는 데커레이션(decoration)을 조망한 전시가 개최되고 있다. 〈엘르 데코〉가 처음으로 선보인 〈데코·데코 Décor·Décor: 리빙룸 아케이드〉 전시다.
이번 전시 초대 큐레이터 이미혜는 ‘꽃술kkotsul’을 운영하면서 여러 창작자와 협업해 만든 생활 디자인 물건, 가구를 구매한 20대 젊은이의 작은 원룸으로, 또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아는 고급 아파트로 제각각 창작물들을 전달하는 매개자로서 느낀 바에 주목했다. 디자인 가구와 살아가는 심정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전시는 자동문이 열리면 현관 문고리를 열고 들어가는 듯한 구성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가족들 혹은 초대한 친구들과 모여 휴식을 취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거실을 구현한 1층 ‘만남의 공간’에 들어서면 연진영 작가의 계단식 중정 설치 작업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몽클레르에서 지원한 검은 패딩을 활용해 거실 한 켠을 차지하는 거대 소파에는 관람객이 오손도손 앉아 쉬는 모습이 종종 포착되었다. 창문을 통해 하루의 시간대에 따라 빛이 방안에 들어오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조명의 조도를 직접 조절해볼 수도 있고, 아파트와 더불어 도시생활의 필수품으로 거듭난 자동차가 ‘주차’된 김동희 작가의 모형에 이르기까지 ‘리빙룸’을 가로질러 마음껏 부유하고 관찰할 수 있다.
2층 전시실에서는 거주자의 취향과 기호를 드러내는 오브제들로 가득 채운 ‘장식과 양식’ 공간이 펼쳐진다. 리빙룸 아케이드라는 전시 제목에서 시장을 뜻하는 아케이드에 초점을 둔 갤러리다. 새집을 분양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모델 하우스의 이미지를 오마주한 인위적인 풍경 속 정형화된 기호 너머로 층층이 겹치는 가벽으로 이뤄진 아케이드 사이사이 무심코 지나치는 생활 속 사물을 감각적으로 다시 인식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1970년대 국내 최초로 모듈 시스템 맞춤형 가구를 선보인 한샘의 시스템 부엌과 전산(Jeonsan)의 모듈형 가구를 병치해 보여주고, 기존의 용도를 상실한 듯한 물건 혹은 작품으로 아트와 디자인 세계를 넘나들며, 기존의 틀을 비틀고 환기한다.
3층 ‘오늘의 풍경’ 전시실에 이르면 한국의 아파트 문화와 거주 방식이 주거 환경의 진보와 더불어 어떠한 진화를 거쳤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재개발 이후 새로 지어진 오늘날 아파트 단지는 다양한 형태 및 스타일과 디자인, 생활 편의 시설을 갖췄다. 하지만 삶을 짓는 공간을 장식하고 꾸미는 가구, 소품 등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은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그 자리를 지켜왔다. 이미정 작가의 조립식 회화는 마치 이케아 가구처럼 공간에 따라 조립해서 쓸 수 있는 가구를 연상케 한다. 최근 아틀리에 에르메스 서울에서도 개인전을 선보인 박미나 작가는 색채 수집과 한국 인테리어 트렌드 분석이 고스란히 녹아든 기존 작품을 출품했다.
특히 눈길이 간 작품은 정보영 작가의 조각보 작품이다. 오색찬란한 고운 비단은 다시 보면 부동산 앱에서 자주 목격되는 평면도이다. 작가는 부엌은 빨간색(불을 쓰는 곳), 정원을 가꿀 수 있는 베란다는 초록색으로 배치하는 등 각각의 색에 관념을 부여하였다. 비록 대량 생산을 위해 직선의 구조로 효율성을 고려해 만들었으나, 자투리 공간 하나도 함부로 쓰지 않는 70~80년대 아파트 평면도의 기하학적인 면모는 남는 천 조각 여럿을 이어서 쓸모 있는 것을 만드는 조각보 전통과 조응해 우아하게 재탄생했다. LH 토지주택박물관의 옛 주공아파트 단지 분양 리플렛이나 조명 등으로 구성된 아카이브 너머로 최용준 사진가가 포착한 서울 풍경 모습이 묵묵히 자리하고 있다. 이어지는 공간에서 전시는 엘르 데코 과월호들이 놓인 서재와 같은 공간에서 생활 공간과 실제 삶이 만나는 지점을 탐색하며 마무리한다.
올 연말, 한해를 떠나 보내며 〈데코·데코: 리빙룸 아케이드〉 전시에서 지나치게 익숙해진 나머지 잊고 살던 집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된 전산의 필통을 비롯한 다양한 굿즈 또한 크리스마스 선물로 안성맞춤일 테니 말이다.
장소 일민미술관 1, 2, 3 전시실 및 프로젝트 룸 (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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