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싣고 달리는 시외·고속버스…이러다 '교통 실핏줄' 터진다
[이슈진단]
#. 국내 최대 규모의 종합버스회사인 KD운송그룹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코로나 이전엔 대원고속과 경기고속 등 3개 시외·고속버스회사에서 모두 1300대가량을 운행했지만, 현재는 700대까지 감축했다. 승객 감소와 더딘 회복세 탓이다. 허덕행 KD운송그룹 상무는 “2019년까지는 시외·고속버스에서 한해 100억 정도 흑자였는데 지금은 거꾸로 연간 150억 적자가 날 지경”이라고 우려했다.
‘중·장거리 교통의 실핏줄’인 시외버스와 고속버스, 그리고 버스터미널 업계의 경영난이 심각하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데다 지난해 거리두기 해제 이후에도 승객·수입 모두 예전 수준에 훨씬 못 미치면서 적자가 쌓이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11일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버스연합회)에 따르면 시외버스(직행 및 일반) 승객은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50.1%가 감소했고, 고속버스 승객도 41.3%나 줄었다. 매출액 역시 급감해 시외버스와 고속버스가 각각 49%, 40%씩의 감소율을 기록했다.
국내에서 코로나가 본격화한 2020년 2월 초부터 올해 10월 말까지 3년 9개월간의 실적과 코로나 이전의 같은 기간 수치를 비교한 것이다. 숫자로 따지면 승객은 시외버스가 2억 7754만명, 고속버스는 6569만명이 각각 줄었다. 매출액은 시외버스가 2조 5742억원, 고속버스는 1조 866억원이 감소했다.
유가와 인건비 상승도 경영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현영주 전국고속버스운송사업조합 이사는 “우크라이나전쟁 등의 여파로 버스가 사용하는 경유는 2020년 말보다 91%, 천연가스(CNG)는 70%나 오른 탓에 운송원가 부담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코로나 기간 대부분 동결됐던 인건비도 지난해 평균 5%, 올해는 3.5~4.5%가 올랐다.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와 열악한 근무조건 때문에 기사를 구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시외·고속버스 운송 원가 중 인건비 비중은 47%, 유류비는 20%라는 게 버스연합회 측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 기간 노선버스를 대상으로 정부가 시행했던 고속도로 통행료 감면이 지난 6월 종료된 데다 경유와 CNG의 유가연동보조금 제도도 올해 말로 끝날 예정이다. 허덕행 상무는 “지난해 11월과 올해 7월에 각각 5%씩 요금을 인상했지만, 운송원가가 오르고 통행료 감면도 끝나면서 사실상 효과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터미널업계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상봉터미널(서울)을 비롯해 성남(경기)과 화정터미널(경기도 고양) 등이 경영악화를 이유로 올해 문을 닫았다. 전국여객자동차터미널사업자협회의 김정훈 사무국장은 “전국 300여개 터미널 가운데 최근 6년간 30개가 문을 닫았고, 내년 1월에는 송탄터미널(경기도 평택)도 폐업 예정”이라고 전했다.
버스터미널은 승차권 판매수수료와 터미널 내 상가임대료가 주 수입원이다. 그런데 승객이 줄면서 수수료 수입이 감소한 데다 터미널 유동인구도 적어진 탓에 식당 등 상점 영업이 저조해 임대료 수입도 크게 떨어졌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해당 업계는 정부와 지자체의 신속한 재정 및 행정적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버스연합회 산하 한국운수산업연구원의 박근호 원장은 “이대로라면 버스회사들이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노선 폐지와 감차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며 “철도 등 대체수단이 없는 중소도시나 농어촌 지역은 이동권이 위축돼 불편이 더 커지고, 지방 소도시 소멸도 가속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원장은 또 “지속가능한 버스 운행을 위해선 정부와 지자체의 안정적인 재정지원이 꼭 필요하다”며 “중장기적으로는 여러 시·도를 운행하는 특성을 고려해 정부 차원의 시외버스 준공영제 도입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버스연합회에 따르면 시외버스는 관할 지자체별로 재정지원이 일부 이뤄졌지만, 국토교통부 소관인 고속버스에는 재정지원이 전무했다.
터미널 업계는 1979년 제정된 ‘도시계획시설 기준에 관한 규칙’의 개정도 요구한다. 이 규칙에선 터미널 내 입점 가능 업종을 식당·다방·매점·약국·이미용실 등 5개로 제한하고 있다. 김정훈 사무국장은 “시대 변화에 맞게 스크린골프 같은 가상체험 체육시설이나 동물병원·미용실 등 반려동물 관련 업종 등의 입점을 허용해야 터미널 운영에 그나마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국회도 이런 어려움을 알고 있다. 지난 8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버스·터미널 서비스 안정화 방안 당정협의회’에서 시설규제 완화와 재산세 감면, 경유·CNG의 유가연동보조금 연장 검토 같은 지원방안이 거론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직접적인 재정지원은 아직 고려 대상이 아니다. 엄정희 국토부 종합교통정책관은 “터미널 입점 제한 완화는 관련 용역이 진행 중으로 내년 초 개정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재정지원은 시설규제 등이 완화되는 수준과 효과를 보고 단계적으로 판단해봐야 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버스업계의 구조개편을 전제로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직간접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고속철도와 고속도로망의 대폭 확장으로 시외버스는 물론 고속버스도 철도·자가용 대비 경쟁력이 떨어진 게 사실”이라며 “그럼에도 철도 교통 소외지역 등 시외버스 운행이 지속해야 할 노선들이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그러면서 “필수 운영노선을 선별하고, 운영을 최적화하기 위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며 “이후 해당 노선들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도록 터미널 재개발과 이를 통한 이익을 활용해 필수 시외버스노선의 운영비를 보조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고준호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터미널은 거점 위주로 통폐합하고, 폐지되는 터미널 부지는 도시개발을 통해 다른 수익을 창출하는 기회를 줘야 한다”며 “시외·고속버스 역시 경영합리화와 노선 조정을 조건으로 정부나 지자체에서 준공영제처럼 안정적인 재정지원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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