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CK 정부

신준섭 2023. 12. 11.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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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섭 경제부 기자

바람막이 역할 충암(C)
실세는 경기고·기재부(K)
잇단 국정 실패에 입방아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배경이 된 1990년대, 소위 ‘있는 집’ 자녀들이 입는 몇몇 희소한 브랜드가 있었다. 미국 패션 디자이너의 이름을 딴 브랜드 ‘캘빈 클라인(CK)’도 그중 하나였다. 중·고교생이 CK 청바지를 입는다면 친구들에게 선망의 눈길을 받을 수 있었다. 한때 ‘등골 브레이커’란 아명이 나돌던 노스페이스 패딩 신드롬과도 닮았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에는 자녀가 원해도 무리해서 사 줄 형편이 안되는 부모들이 더 많았다는 점 정도다.

갑작스레 과거 유행을 소환한 이유는 최근 들어 또 다른 CK가 눈에 띄어서다. 충암고(C)와 경기고(K) 출신의 결합이 국정을 이끌고 있다. 충암고는 대통령의 모교이고 경기고는 총리, 그리고 권력의 그림자이자 실질적 2인자라 불리는 대통령 비서실장의 모교다. 실세들을 배출하다 보니 CK 브랜드마냥 두 학교 이름값 역시 ‘명품’ 반열에 오르는 모양새다.

다만 ‘어떤 학교가 더 실세냐’라고 질문한다면 사뭇 평가가 달라진다. 윤석열 대통령을 배출하기는 했지만 충암고 출신 인물은 중용된 사례가 적은 편이다. 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정도가 충암고 출신으로 요직을 맡고 있다. 이외 인물로는 김용현 대통령경호처장, 정재호 주중한국대사 정도가 꼽힌다. 반면 전통의 명문인 경기고 출신이 포진한 핵심 요직은 수두룩하다. 한덕수 총리와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대표적이다. 그중에서도 김 비서실장 기수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김 비서실장과 경기고 동창이자 서울대 동문이다. 비서실장이 장관급인 만큼 동기동창 장관급만 2명이 포진한 셈이다. 이외에도 다수의 경기고 인맥이 국정 톱니바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각 분야에서 두드러지는 인물을 여럿 배출해 온 경기고 인맥을 고려했을 때 이는 당연한 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구성된 인선이 국정 난맥상과 결부되는 현실은 ‘이게 맞나’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든다. 대표 사례가 2030 세계박람회 유치 실패다. 정부 내부에서는 ‘역전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가 윤 대통령의 귀까지 전달됐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렸다고 한다. 희망 회로는 국민에게 전이됐고 결과는 119표대 29표로 참패였다. 국가정보원의 정보력도 문제지만 박 장관이 진두지휘하는 외교부나 정보를 총괄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역할인 김 비서실장은 뭐했나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한 총리와 김 비서실장을 필두로 또 하나의 K가 국정을 좌우한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부분 중 하나다. 이번 정부에서는 두 사람의 친정 격인 기획재정부 출신 장차관이 유독 많다. 기재부 출신의 능력은 높이 사지만 이 인선의 순수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요소가 적지 않다. 단적인 사례가 취임한 지 3개월도 되지 않은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총선 차출설이다. 기재부 출신인 방 장관은 능력을 인정받아 장관직을 맡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런데 지금은 총선용 인선으로 전락하는 모양새다. 기재부 출신이면서 총선 출마를 저울질하는 박성훈 해양수산부 차관 역시 매한가지다. 지난 7월 취임할 때부터 6개월간 국정 대신 총선만 바라본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정부의 국정 동력은 세계박람회 유치 실패와 각종 설화로 위기에 휩싸여 있다. 윤 대통령 사과에서도 위기감이 엿보인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경기고·기재부 중심의 K는 흔들림이 없어 보인다. C가 앞에서 바람막이 역할을 하는 동안 K는 뒤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것처럼만 읽힌다.

영화 ‘서울의 봄’이 흥행하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 중심의 군부 카르텔인 ‘하나회’가 재조명되고 있다. 음지에서 권력을 좌우했던 이 카르텔은 문민정부인 김영삼정부 등장과 함께 척결됐다. 윤 대통령 역시 각종 카르텔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 발언을 쏟아내며 회의적인 시각을 지속적으로 내비쳐왔다. 그런 윤 대통령에게 ‘K 카르텔’은 대체 어떻게 비춰질지 궁금하다.

신준섭 경제부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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