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굿즈] 하이힐 벗고 운동화… ‘퇴사 고민’ 싹 사라졌어요

문수정 입력 2023. 12. 10. 20:5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BTS 슈가가 선택한 ‘르무통’으로 유니폼 신발 바꾼 글래드호텔
좋은 물건이란 무엇일까요? 소비만능시대라지만 물건을 살 때부터 '버릴 순간'을 먼저 고민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는 한쪽의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제품 생산과 판매에서부터 고민하는 기업들의 노력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굿굿즈]는 더 좋은 미래를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기업과 제품을 소개합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노력에 더 많은 참여를 기대합니다.


하루 8시간 근무하면서 1만보 안팎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 오가는 곳은 주로 실내다. 엘리베이터가 잘 갖춰진 곳에서 일한다. 울퉁불퉁한 오르막길이나 가파른 내리막길을 다녀야 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들의 일상이 순탄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평평한 길을 걷는데도 그들의 ‘발’은 매일,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단하다.

오랫동안 서서 근무해야 할 때는 차라리 ‘많이 걷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들의 흔한 직업병에는 하지정맥류가 있다. 퇴근하면 밤마다 땡땡 부은 다리를 들고 누워서 ‘퇴사할 결심’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일이지만 직업병을 마주하는 순간에는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대체 누가 그런 일을 할까. 항공사 승무원,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직원들, 방송 업무 종사자 등을 떠올리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호텔이나 항공기처럼 ‘서비스’에 방점이 찍힌 공간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발 편한 신발’은 오랫동안 언감생심이었다. 각 잡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에게 ‘불편’은 ‘사명감’과 동의어로 쓰이곤 했다. 발 편할 일 없는 업무를 하며 바삐 오가는 그들에게 신발이라도 편하다면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을까.

변화가 가능할까 싶은데, 그 가능성에 승부수를 던지는 이들은 언제나 있어왔다. 호텔업계에서는 글래드호텔의 시도가 눈에 띈다. 호텔 프런트와 객실 담당자부터 식음매장 직원, 하우스키핑 담당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사무직원까지 모두가 ‘유니화’(유니폼 신발)를 굽 높은 구두에서 운동화로 바꾸며 변화를 꾀했다.

글래드호텔이 전통의 구두 대신 유니화로 선택한 운동화 브랜드 ‘르무통’도 눈에 띈다. 르무통은 환경친화적인 천연 원료와 재활용 소재를 사용해 친환경 제품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는 브랜드다. 최근 방탄소년단(BTS) 멤버 슈가가 멤버 정국의 생일을 맞아 르무통 운동화를 선물하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두 회사의 협업이 어떻게 이뤄졌고 얼마나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는지 그간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글래드호텔과 르무통 관계자를 지난 6일 만났다. 김현숙 글래드 호텔앤리조트 브랜드 기획팀장, 한유리 기획팀 차장, 전혜림 우주텍 르무통 영업팀장과 유한중 르무통 마케팅팀 과장을 서울 영등포구 글래드호텔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글래드호텔은 유니화를 ‘구두’에서 ‘운동화’로 바꾸며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를 올렸다. 한유리 글래드호텔 브랜드기획팀 차장, 김현숙 브랜드기획팀장, 전혜림 르무통 영업팀장, 유한중 르무통 마케팅팀 과장(왼쪽부터)이 지난 6일 서울 영등포구 글래드호텔에서 르무통이 제작한 ‘글래드호텔 유니화’를 소개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시작은 올해 3월이었어요. 글래드호텔 임직원들이 일본의 한 호텔에 묵을 일이 있었는데, 그곳의 직원들이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이더라고요. 하지만 서비스에 전혀 지장이 없었고, 오히려 신선하고 편해 보였어요. 그래서 우리도 운동화를 유니화로 시도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글래드호텔의 브랜드와 맞아떨어지는 브랜드를 찾기 시작했어요.”(김현숙 팀장)

철갑을 두른 듯 단단하게 벽을 세우고 있던 관행 중 하나는 ‘여직원의 구두’였다. 전문직 여성이 몸에 딱 맞는 정장을 하고 하이힐을 신는 것은 ‘직업정신’이자 일종의 ‘중무장’으로 여겨졌다. 구두 대신 운동화라니, 언감생심 같았다.

“하이힐을 신은 모습이 더 멋져 보이고 예뻐 보인다는 게 통념이잖아요. 그래서 호텔리어들의 선택은 구두일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직원 설문조사에서 구두와 운동화를 고르는데 운동화 비율이 압도적이었죠. 하지정맥류로 회사를 그만둔 동료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는지도요.”(한유리 차장)

운동화 브랜드는 널리고 널렸다. 구찌 같은 럭셔리 브랜드도 운동화 제품을 출시할 만큼 ‘운동화’는 힙한 카테고리이기도 하다. 글래드호텔 브랜드기획팀은 ‘유명한 것’ 대신 ‘가치 있는 것’을 찾으려 했다.

그러다 찾은 게 르무통이었다. 호주에 서식하는 양 품종 중 하나인 ‘메리노’의 털을 재료로 삼아 운동화를 만들었다. ‘100% 천연 울 운동화’인 셈이다. 화학섬유가 아니라 지구친화적이고, 값이 비쌀 만하다. 하지만 가격은 합리화했고 친환경을 위해 부재료도 재활용 소재를 활용했다. 신축성이 좋고 발이 편한 신발을 만들기 위한 게 르무통이라는 브랜드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친환경 운동화의 대표가 됐다.

르무통은 글래드호텔이 ‘225’부터 ‘285’ 이상까지 다양한 사이즈의 유니화 250족을 주문했을 때 아찔한 기분이 들 만큼 규모가 큰 회사가 아니다. 디테일하게 다량의 제작을 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하고 싶었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르무통은 본사에서 직원들이 공정 하나하나까지 신경 쓰며 제작한다는 게 강점이었다. 그래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운동화 라벨에 ‘글래드(GLAD)’를 찍고 다양한 사이즈를 제작하기 위해 전혜림 팀장과 유한중 과장은 서울 본사와 부산 공장을 수시로 오갔다.

“르무통이 ‘앰배서더 인터뷰’라는 걸 유튜브에서 하고 있어요. 오래 서 있어야 하거나 많이 걷는 전문직 종사자 인터뷰인데, 의사 약사 여행가 방송국 직원 등을 했어요. 그런데 호텔리어를 놓쳤더라고요. 그러다 글래드호텔의 제안이 왔고, 우리가 찾던 전문직군을 만나서 너무 반갑더라고요.”(전혜림 팀장)

그렇게 두 회사는 운명처럼 만났다. 3월에 떠올린 ‘유니화 운동화 전환’ 아이디어는 6월에 ‘르무통 운동화로 실행한다’고 결정됐고, 여름이 오기 전 ‘250족의 유니화 완성’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르무통은 ‘줍깅키트’를 만들어 왔고 글래드호텔은 제주에서 ‘줍깅 패키지’를 꾸려 왔다. 글래드호텔 제주의 ‘줍깅 패키지’에 르무통의 ‘줍깅키트’가 들어갔다. 청정 제주의 여행객은 플로깅(조깅하며 쓰레기를 줍는 것)에도 진심이었다. 줍깅 패키지는 인기였고 줍깅키트는 유용했다.

친환경이든 사회복지든 시작은 대체로 소소하다. 글래드호텔과 르무통의 협업도 그랬다. 누군가 발 편하게 일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찾은 운동화가 친환경 제품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두 회사가 이 사업의 몸집을 조금씩 키워가고 있다는 걸 실무자들은 몸소 체험 중이다.

“처음부터 친환경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닌데요. 하다 보니 일상이 됐습니다. 텀블러가 생활이지만 부득이하게 플라스틱 컵을 쓰게 되면 겹겹이 모아서 처리해요. 다른 사람들이 버린 것도 주워서요(웃음). 쓰레기의 덩치를 줄이려는 건데, ‘쓰레기 모으냐?’는 질문도 듣긴 했어요. 하지만 이런 소소한 움직임이 의미가 있다는 관점이 르무통에서 일하면서 쌓였던 것 같아요.”(유한중 과장)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