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소탐대실과 녹명

2023. 12. 10. 19:04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중년의 두 형제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들어온다.

상담실에서 잠시 기다리던 형제의 입에서 '도둑놈, 사기꾼' 등 험한 말들이 쏟아진다.

등기가 넘어간 사실을 알게 된 형제들은 망연자실하면서도 일이 이렇게까지 되게 한 원인을 두고 서로를 탓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당시 상속지분을 둘러싼 갈등처럼 큰아들과 다른 형제들 간 서로 '네 탓' 공방이 재현됐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중년의 두 형제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들어온다. 상담실에서 잠시 기다리던 형제의 입에서 ‘도둑놈, 사기꾼’ 등 험한 말들이 쏟아진다. 이유를 물었다.

1906년생인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 어느 지방의 토지 약 1000평을 매수해서 농사를 짓다가 1997년에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공동상속인으로는 부인과 일곱 명의 자녀가 있다. 여느 집처럼 상속 분쟁이 일었다.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를 모셨던 큰아들이 좀 더 많은 지분을 요구했더니, 다른 형제들은 그만큼 혜택도 많이 봤지 않으냐며 거부했다. 결국 상속등기를 하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룬 채 세월이 흘렀다. 그사이 어머니와 자녀 둘이 사망했다.

그런데 지난해 그 지역에 개발 붐이 일어서 땅값이 많이 상승하자 막내아들이 아버지 땅 등기를 떼어봤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땅이 몽땅 그 지역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1970년생 업자 명의로 넘어가 있었다. 부동산소유권 이전등기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 소위 ‘특별조치법’을 이용해 ‘1994년 1월 20일 증여’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를 한 것이다.

특별조치법은 소유권보존등기가 되어 있지 않거나 등기부의 기재가 실제 권리관계와 일치하지 않는 부동산을 한시적으로 간편한 절차에 따라 등기할 수 있도록 제정한 법이다. 최근의 특별조치법은 2020년 2월 4일에 제정되고, 그 6개월 후부터 시행돼 2022년 8월 4일에 종료됐다.

특별조치법에 따른 소유권이전등기는 땅의 실제적 소유관계에 대한 ‘확인서’를 발급받은 사람이 단독으로 신청할 수 있다. 확인서는 5명 이상의 보증인의 보증서를 첨부해 대장소관청에 신청하면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증여나 매매 등을 증명하는 문서가 없다고 하더라도 5명의 보증인만 있으면 쉽게 확인서를 발급받을 수 있고, 이 확인서가 증여나 매매를 증명하는 서류가 되어 등기가 수월하다.

등기가 넘어간 사실을 알게 된 형제들은 망연자실하면서도 일이 이렇게까지 되게 한 원인을 두고 서로를 탓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당시 상속지분을 둘러싼 갈등처럼 큰아들과 다른 형제들 간 서로 ‘네 탓’ 공방이 재현됐다. 그러나 네 탓만 하고 있을 일이 아니었다. 탓만 하다가는 영원히 땅을 찾지 못할 수도 있었다. 막내아들이 나서서 우선 땅을 다시 찾는 일의 시급함을 환기시켰다. 이런 이유로 상담에 나선 막내아들이 하소연한다.

“변호사님, 1994년이면 아버지는 만 87세였습니다. 당시 큰형님이 모시고 있었는데, 치매와 이런저런 질병으로 거의 거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일면식도 없는 당시 만 24세의 부동산중개업자에게 ‘증여’를 했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동안 큰아들이 그 땅에 부과되는 재산세, 지방세 등을 납부해 왔고, 2017년에는 경계측량까지 한 바 있으니 어찌어찌하면 땅을 다시 아버지 명의로 돌려 소유권을 회복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녹명(鹿鳴). 먹이를 발견한 사슴이 다른 배고픈 동료 사슴들을 불러 먹이를 나눠 먹기 위해 내는 울음소리를 뜻한다. 여느 짐승들은 먹이를 발견하면 혼자 먹고 남는 것은 숨기기 급급한데, 사슴은 오히려 울음소리를 높여 함께 나눈다. 사람은 어떨까. 과연 형제들은 상속재산을 좀 더 차지하기 위해 또다시 서로 등을 돌리게 될까.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