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男사제는 왜 여자처럼 행동했을까 [강영운의 ‘야! 한 생각, 아! 한 생각’]

입력 2023. 12. 9.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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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트랜스젠더

오랜 시간, 성은 고정불변의 것으로 여겨졌다. 남성과 여성이 만나 사랑하고 아이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건 대부분이 꿈꾸는 이상향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의지란 너무나 강력한 것이어서 주어진 성별조차 거부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 또 남자가 되고 싶은 여자들은 고대부터 역사 속에 생생한 이야기를 남겼다.

고대 그리스에도 ‘트랜스젠더’가 존재했다. 이들은 여성의 옷을 입고 가늘고 아리따운 목소리를 냈으며 늘 조숙한 자세로 남성을 맞았다. 성기를 거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에서 꽤 존경받는 계층이었던 ‘사제’였다.

그리스 사제들은 왜 여자처럼 행동했을까. 그들이 모시는 신에 답이 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키벨레’다. 제우스가 몽정을 통해서 낳은 키벨레는 남성과 여성의 상징을 모두 갖고 있었다(욕심쟁이). 올림포스의 신들은 이를 악마의 징표라 여겼다. 그가 거세하도록 음모를 꾸몄고 이에 성공했다.

비극의 주인공은 독자들의 마음을 빼앗기 마련이다. 기원전 2세기 고대 로마에서 키벨레의 인기는 다른 신들을 압도할 정도였다. 키벨레를 모시는 사제들 역시 그처럼 성기를 절단해야 했다. 마침 로마가 키벨레를 모신 뒤, 이어진 카르타고와의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인기는 더 치솟았다. 그때부터 키벨레는 ‘마그나 카르테’로 불렸다. 위대한 어머니라는 뜻이었다.

고대 스키타이도 그리스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아리스탐파사’라는 신을 모셨는데 그 역시 중성적 존재였다. 사제들은 거세하고 여성의 옷을 입는 데 개의치 않았다. 시민들 역시 사제들을 강력한 샤먼으로 여기고 존중을 표했다. 고대의 트랜스젠더들은 종교적 목적으로 성을 바꾼 셈이다.

성적 보수성의 ‘끝판왕’ 기독교의 시대가 찾아오면서 트랜스젠더의 암흑기가 예상됐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외려 트랜스젠더가 성인 반열에 오르는 경우도 있었다. 성별까지 포기할 정도로 예수에 대한 믿음이 절실한 것으로 해석됐기 때문이었다.

6세기 기록에 남아 있는 귀족 여성 ‘아나스타샤’가 대표적이다. 그녀는 안락한 삶을 버리고 이집트에서 수도사의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 당시 수도사는 남자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는 상황에 굴하지 않았다. 남자 옷을 입고 남성 행세를 하면서 수도원에 입성했다. 거친 음식을 먹고 불편한 잠자리에서 자야 하는 삶이었지만, 그녀는 신을 모실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을 느꼈다. 죽음 후 진실이 밝혀진 뒤에도 사람들은 비난하지 않았다. 동방정교회는 그를 성인으로 시성했다(오늘날에도 그렇지만, 트랜스젠더가 반드시 성전환 수술을 한 사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을 더욱 잘 모시고자 했던 트랜스젠더들의 활약 덕분이었을까. 중세 교회에서 성전환자는 저주가 아닌, 하나님의 표현으로 해석되기에 이르렀다. 때로는 신의 특별한 축복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실제로 14세기 프랑스 소설 중 하나인 ‘샹송 드 제스테’에는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을 하는 남성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천사로부터 고환과 성기를 선물 받는데 마치 신의 축복인 것처럼 그려진다. 중세 시대 사람들이 트랜스젠더에 대해서 얼마나 관대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의 유명 사학자인 캐롤라인 워커 바이넘 교수 역시 중세 유럽인들이 성전환에 관대했다고 해석한다. 그는 “중세 시대 사람들은 ‘어머니 예수’라는 개념을 사용했다”면서 “이는 예수를 남성과 여성 중간적 존재로 여겼던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19세기는 눈부신 경제 성장과 인권 의식이 싹을 틔운 시기였지만 트랜스젠더에게는 오히려 고통의 시작이었다. 중세 말부터 이어져 내려온 혐오의 정서가 19세기부터 폭발했기 때문이다. 1885년 영국이 트랜스젠더를 법적으로 처벌하는 조항을 만들었고 미국 역시 19세기 중반부터 여자 옷을 입은 남성을 처벌하는 조항이 전국적으로 제정됐다. 악명 높은 ‘3조법(the three-piece law)’이었다. 여전히 수많은 트랜스젠더 여성이 혐오자들에 의해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11월 20일이 ‘국제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로 지정된 배경이다. 트랜스젠더 혐오론자들은 외친다. 주어진 성별을 인간이 뒤바꾸는 것은 ‘자연의 질서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성을 바꾸는 일은 동물의 세계에서도 일어난다.

동물도 성전환…혹돔, 무리 중 가장 센 암컷이 수컷으로

강태공 사이에서는 “비늘 한 장 보고 30리도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의 ‘진미’로 유명한 ‘혹돔’이 주인공이다. 혹돔은 그 맛도 맛이지만, 성별을 전환할 수 있는 능력으로도 유명하다.

혹돔은 수컷 한 마리가 여러 암컷을 거느린 ‘하렘형’ 일부다처제로 살아간다. 유능하고 힘센 수컷 한 마리의 유전자를 남기는 것이 암컷에게는 진화적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수컷이 죽어버렸을 때 문제가 일어난다. 대를 이을 씨를 줄 숫놈이 없어서다. 다른 곳에서 새로 들여오자니 양아치 약골(?)이 걸릴까 걱정이 앞선다. 혹돔 무리 암컷은 이 난관을 묘수로 해결한다. 무리 중 가장 힘이 세고 지도력이 있는 암컷이 수컷으로 ‘성전환’하는 것이다. 성전환한 암컷은 영락없는 수컷의 모습이다. 늠름한 수컷처럼 머리에 혹이 생기고 아래턱이 두터워진다. 다른 무리의 수컷이 암컷들을 건드리려고 하면 사납게 맞서기도 한다. 누가 봐도 싸움꾼이다.

성별 전환의 이득은 확실하다. 수컷 우두머리를 잃고도, 다음가는 좋은 유전자를 가진 암컷 두목(이제는 수컷)이 유전자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조직도 보호하고 양질의 후손을 남길 수 있다는 의미다. ‘인구절벽’, 아니 ‘어구절벽’에 대응하는 자연의 오묘한 이치라고 해야 할까. ‘용치놀래기’ 같은 물고기 역시 암컷이 수컷으로 성전환을 단행한다. 옅은 붉은색을 띠는 암컷이 어느 순간 초록의 수컷으로 늠름하게 유영하는 모습이 관찰됐다.

암컷에서 수컷으로만 성전환이 일어나는 것만은 아니다. 수컷이 암컷으로 전환되는 경우도 많다. ‘흰동가리(A.K.A 니모)’는 먼저 수컷으로 성숙했다가 점점 커지면 암컷으로 성을 바꾸는 경우다. 수컷 중 가장 크고 리더십이 있는 개체가 암컷으로 변해 조직에서 가장 멋진 놈을 골라서 번식한다. 이 역시 가장 생명력이 좋은 개체를 남기기 위한 자연의 ‘위대한’ 선택이다.

이처럼 물고기의 세계에서 ‘성전환’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총 480개 넘는 어종이 성전환을 한다. 그중 69종은 수컷에서 암컷으로, 암컷에서 수컷으로 양방향 전환을 자유롭게 한다.

이들의 성전환이 쉽게 일어나는 배경이 있다. 태어날 때부터 양 성세포를 모두 갖고 있어서다. 물고기 세계에서 어릴 때는 암컷이면서 수컷이다가(암수동체) 특정 시기에 성별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일종의 자웅동체인 셈인데, 성별이 차례로 발현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이미 날 때부터 성세포가 정해져 있는 것과는 명확히 다른 양상이다.

암컷으로 먼저 성숙했다 수컷이 되는 자성선숙(용치놀래기), 수컷으로 먼저 살다 나중에 암컷이 되는 웅성선숙(감성돔)이 있다. 산호초에 사는 비늘돔류도 수컷이 사라지면 암컷 중에서 가장 센 녀석이 성전환을 감행한다. 파랑비늘돔은 암컷으로 시작해 수컷으로 성별이 전환된다.

실험으로도 이런 성전환은 쉽게 목격된다. 청줄청소놀래기 수컷 두 마리를 한 수조에 넣었더니, 한 녀석이 암컷으로 변화했다. 두 마리 중 몸집이 작은 녀석이 암컷으로 성을 바꿨다. 이 녀석은 알을 낳으면서 후사를 이어간다. 주어진 성별이 천성이라는 생각을 물고기가 깨뜨린다. 이들은 조직을 위해 스스로 성별을 바꾸면서 거친 바닷속에서 긴 세월을 생존해왔다. 자연과 역사는 언제나 트랜스젠더와 함께해온 셈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7호 (2023.12.06~2023.12.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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