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는 일상의 여러 질문에 답을 주었다 [양민영의 한 솔로]

양민영 입력 2023. 12. 9.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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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영의 한 솔로] 1만도 넘는 영혼의 달리기, 달리면서 얻은 사색

[양민영 기자]

 다른 일을 할 때는 어림도 없던 몰입이 달리는 동안에는 무한정 이어졌다.
ⓒ 픽셀스
 
각종 얼리버드 티켓, 사전 판매를 강조하는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 그런 유혹은 후회를 부르기 마련이다. 11월에 열릴 마라톤대회를 9월에 신청한 일도 그랬다. 아무리 겨울의 초입이라지만, 기온이 영하로 떨어질 거라고 짐작이나 했겠는가. 이 날씨에 달려야 하는 건지 새벽부터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이른 추위도 출발점으로 운집하는 1만 명의 인파를 막지 못했다. 개중에는 외투를 전부 보관소에 맡기고 민소매에 반바지 차림인 이들도 있었다. 일회용 우의를 가운처럼 두르고 준비 운동으로 몸을 푸는 사람들 사이에서 출발 신호를 기다렸다.   

나는 줄곧 A의 뒤에서 달렸다. 어지럽게 엉킨 참가자 무리에서 그의 위치를 확인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탈색된 머리카락이 움직이는 이정표가 돼줬다. A와 주짓수, 레슬링, 케틀벨, 여러 운동 세미나를 함께했지만 달리기 대회는 처음이었다. 

A는 운동을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 치곤 대회를 싫어한다. 그런데도 지난 2년 넘게 꾸준히 달린 건 내가 아니라 그였다. 5킬로미터씩 대충 뛰다가 출발선에 선 나와 다르게 인터벌 훈련, 계단 훈련, 스트레칭도 병행했다. 반면에 나는 잿밥에만 관심이 많아서 달리기보다 기록이 중요했다. 

거의 4년 만에 참가한 대회라서 기록을 단축하고 싶었고 10킬로미터를 60~70분에 완주하던 기록을 1시간 내로 줄이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세웠다. 그 정도가 내가 생각하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비교적 잘 달리는 사람의 기록인데 마침 A가 그 페이스로 달렸다. 그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페이스메이커였다. 

치유이자 보상이었다

제아무리 페이스메이커가 믿음직스러워도 내 페이스가 형편없으면 곤란하므로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연습했다. 주로 해 질 녘이나 야간에 하천을 따라서 5킬로미터씩 달렸다. 온몸이 조화롭게, 쉬지 않고 움직이면서 이뤄지는 집중. 다른 일을 할 때는 어림도 없던 몰입이 달리는 동안에는 무한정 이어졌다. 

멈추기를 선택하지만 않으면 몰입은 좀처럼 깨어지지 않았다. 환절기마다 찾아오던 감정의 동요도 달림으로써 많이 잦아들었다. 집에 와서 작은 욕조에 몸을 담그면 만족하면서 사는 데 생각보다 많은 게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또, 다른 운동들처럼 무엇을 더 잘하기 위해서 따라붙는 질문도 없었다. 오히려 달리기는 일상의 여러 질문에 답을 주었다. 그때부터 달리기는 부담스러운 도전이나 경쟁이 아니라 치유이자 보상이었다. 

달리는 동안 오롯이 혼자인 것도 좋았다. 여럿이 달리는 크루도 있지만 나는 대부분 혼자 달린다.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내니까 더 이상 혼자 보내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그동안 혼자인 중에도 주의력은 불특정한 타인을 향해서 맥없이 흩어졌고 진정한 의미로 혼자이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나는 내가 사색가 타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달리는 사색가로 유명한 <달리기와 존재하기>의 저자 조지 쉬언이 '우리 몸만큼 영적인 것은 없고 달리기는 우리 몸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영적인 경험'이라고 할 때도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몰입을 넘어서 더 높은 차원으로 가면 인간은 누구나 영적인 존재인 걸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생동감과 함께 정반대의 감각이 따라오면서, 나는 그 영적인 경험이 한 차원 높은 단계라고 생각했다. 영적이라고 표현하지 않으면 마치 균형을 맞추는 무게추처럼, 달리면 달릴수록 죽음을 향한 충동으로 기우는 마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달리기의 끝은 항상 이대로 밤의 고요한 대기에 흡수돼 사라지고 싶다는 충동이었다. 당장 사라져도 나의 죽음은 단신으로도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는 그다지 존중받거나 주목받지 못하는데 왜 이 어두운 길을 달리면서까지 살아 있다는 감각을 얻으려는 걸까?  

이는 나 혼자만의 딜레마는 아니다. 우리 사회는 생명에도 등급을 나눈다. 노동 현장에서, 축제가 벌어진 거리에서, 차가운 바다에서 수많은 젊은 목숨이 사라졌다. 그러나 희생자와 유가족을 향한 존중도, 사회 전반의 뼈아픈 반성도 없다. 

죽음이 이토록 흔하고 아무 일도 아닌데 우리는 무엇 때문에 바로 지금, 여기에 살아 있어야 하고 그 많은 시간과 돈을 몸에 쓰면서 젊고 건강한 육체를 원하는 걸까? 달리기가 이 모든 답을 한꺼번에 주지는 않았다. 어떤 답을 알기까지는 또 다른 차원이 필요하다. 

우리는 모른다
 
 우리는 달리기를 인생의 축소판이라 생각하지만 마라톤 영웅인 손기정의 말은 정반대였다.
ⓒ 손기정기념재단
5킬로미터 반환점을 돌았을 때 오르막이 나타났다. 경사도가 크지 않았지만 난감했다.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야 할 구간인데 할 수 없이 그냥 뛰었다. 7킬로미터에 접어들자 머릿속에 온통 힘들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도 A의 등을 보면서 한 발씩 내디뎠다. 

'9km'라고 크게 써진 표지판을 지날 때 심박수가 치솟고 급격히 지쳤다. A는 그때부터 속도를 내면서 앞으로 나갔고 우리는 완전히 멀어졌다. 익숙하던 뒷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제야 앞에서 달리던 그의 존재가 더 분명하게 느껴졌다. A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면서 달리고 있을까?

레이스가 끝나고 완주한 사람들 사이에서 메달을 목에 걸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둘이 활짝 웃는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10킬로미터는 거뜬하게 달리는, 절친한 운동 메이트로서의 이미지가 피트에 남았다. 그 무렵에 우리가 왜 하필이면 달리기에 몰두했는지, 달려서 얻은 게 무엇인지, 각자의 사정은 사진에 담기지 않았다. 

대신에 대회장을 빠져나오는 길에,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도 몰랐던 현수막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인생은 반환점 없는 마라톤이다.' 우리는 달리기를 인생의 축소판이라 생각하지만 마라톤 영웅인 손기정의 말은 정반대였다. 

인생은 반환점이 없으므로 한번 달린 길을 다시 달릴 수 없다. 매 순간 모든 게 지나가고 사라진다. 기원을 모르니까 출발점도 없고 결승점이 어디인지조차 우리는 모른다. 코스도 기록도 영광도 없는, 죽음과 맞닿은 무원칙의 레이스. 비록 한 시간 남짓이지만 그 안에, 1만도 넘는 수많은 영혼이 있었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게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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