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것은 없다, 미스치프의 도발적 예술 [더 하이엔드]
쌀알보다 작은 루이비통 가방은 어디에 쓸 수 있을까. 운동화 밑창에 요르단강 성수를 담아보면 어떨까. 이런 기상천외한 의문을 직접 실행하는 팀이 있다. 미술계 이단아 혹은 악동이라 불리는 아티스트 그룹, 미스치프(MSCHF)다.
기능보다 로고에 집착하는 행태를 풍자한 미스치프의 초소형 루이비통 가방은 최초 경매 입찰가의 4배가 넘는 8400만원에 판매됐다. 이들은 나이키 운동화에 요르단강 성수를 넣은 '예수 운동화'를 만들면서 "우리는 예수와 협업했다"고 주장했다. '브랜드 간 무분별한 협업'을 풍자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힘에 균열을 내다
'신성한 것은 없다(NOTHING IS SACRED)'는 미스치프의 슬로건이다. 장난·장난꾸러기를 뜻하는 영어 'mischief'에서 따온 이름에 걸맞게 이들의 작품에는 하나같이 세상에 대한 풍자와 조롱이 담겨있다. 허를 찌르는 상상력, 도발적인 주제의식으로 무장한 예술가 집단 미스치프. 당연한 것들에 반기를 드는 이들의 반항심은 젊은 세대에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 전시가 서울 종로구 대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들의 작품 세계를 이렇듯 대규모로 보여주는 첫 전시로, 미스치프 팀은 이번 전시를 위해 아예 한달 가까이 서울에 상주하며 대림미술관과 함께 협업했다. 미스치프를 이끄는 가브리엘 웨일리를 지난 11월 9일 서울 대림미술관 옆 임시 사무실에서 만났다.

Q. 세상을 풍자하는 작품을 계속 내놓는 이유는.
"인간은 보이지 않는 힘의 구조를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세상의 규칙에 균열을 내고 싶었다. 우리가 만드는 틈이 대화의 장을 열고, 그곳에서 사람들이 변화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Q. 주로 어떤 주제에 관심을 두나.
"사람들이 잠깐 조명하는 이슈는 다루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시스템에 집중한다. 미국 의료비 시스템 문제를 지적하는 '의료비 청구서' 프로젝트 등으로 기업과 정부 시스템 부조리를 지적했다."
Q. '신성한 것은 없다'는 전시 슬로건이 인상적이다.
"전시 제목처럼 세상에 우리가 못 건드릴 것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종교에 농담을 던져선 안 된다거나 거대 브랜드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등의 절대 법칙 같은 것들이다. 세상의 작동 원리에 의문을 던지면 변화를 모색할 수 있다. 전시가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창이 되길 바란다."
Q. 진짜 두려움이 없나.
"항상 무섭다. 하지만 미스치프라는 팀 이름 자체가 무엇을 표방하는지 잘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무거운 주제를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게 우리 팀의 특징이다."


철학을 전공한 가브리엘은 대학 때부터 독특한 프로젝트로 주목받았다. 대표적인 게 레스토랑 팁 자동 결제 앱이었다. 팁을 계산하려면 성별 버튼을 클릭해야 하는데, '여성'을 선택하면 표준 팁보다 22% 낮은 금액이 책정된다. 통상 여성이 남성보다 급여를 22% 낮게 받는 현실을 비꼰 프로젝트였다.
가브리엘은 대학 졸업 후 미국 온라인 매체 버즈피드에서 일하다 창업을 위해 퇴사한다. 2019년 '온라인을 통해 사람들이 무언가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자'는 목표로 미국 뉴욕에서 미스치프 그룹을 만들었다.
스타트업처럼 움직이는 예술 집단
개발자·변호사·재무담당 등의 미스치프 팀원 30여 명은 직군 구분 없이 한 프로젝트에서 함께 일한다. 누구나 아이디어를 내고 제작에 참여한다. 2주마다 작품 아이디어인 ‘드롭’(drop)을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Q. 작품 아이디어를 '드롭'이라 부르는 이유는.
"무수히 발생하는 정보를 따라잡으려면 빠른 속도로 프로젝트를 선보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아이디어를 공중에서 납치하는 듯한 신속성을 표현하는 최고의 단어라 생각한다."
Q. 드롭을 실제 작품으로 만드는 기준은.
"모든 아이디어를 빠짐없이 문서화한다. '컨셉이 과연 흥미로운가', '아이디어를 한 문장, 세 문장, 더 많은 문장으로 설명해도 계속 흥미로운가', '우리가 제작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아이디어를 평가한다. '돈을 벌 수 있는가 잃을 게 뻔한가'도 기준이지만 잃어도 괜찮다. 미스치프 프로젝트 대부분 손실이 더 크다. 첫 관문을 통과하면 6개월 뒤 다시 점검해 프로젝트 착수 여부를 판단한다."
Q. 어디서 작업의 영감을 얻나.
"특정 사람·물건·기업으로 정의하기 참 어렵다. 주변에 펼쳐진 세상 모든 것이 가능성이 된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행동을 관찰하면서 영감을 얻는다. 슬픔·분노·기쁨 등 사소한 감정까지 자극을 준다."
워홀 작품 하나로 10배 수익
아이러니하게도 미스치프는 돈을 꽤 많이 번다. 데미안 허스트의 '스팟 페인팅'에 그려진 점 88개를 조각내 장당 60만원에 판매했다. 작품을 잘라내고 남은 틀까지 알뜰하게 팔아 그림값의 7배 이상 이익을 얻었다. 팝 아트 거장 앤디 워홀 작품 하나를 사서 999개 위조품으로 만들어 10배 넘는 이익을 얻기도 했다. 암호를 알 수 없는 아이폰에 가수 위켄드나 이방카 트럼프 등의 연락처를 담아 3000만원 넘는 가격을 내세우기도 했다. 누구나 암호를 풀기만 하면 유명인과 통화할 수 있다.

Q. 예술의 상업화란 비판도 받는데.
"예술가는 왜 항상 굶주려야 하는가? 우리 머릿속의 수많은 '미친' 아이디어를 세상에 도전적으로 내놓으려면 돈이 필요하다. 소송에 휘말리는 일도 많아 자본의 힘이 꼭 필요하다."
미스치프는 2020년 1월까지 약 15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에 이어 올해까지 시리즈B 투자를 받았다.
Q. 이들이 왜 미스치프에 투자할까.
"미스치프의 미래에 배팅한다고 생각한다. 작품 판매 전까지 상업적인 성공을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테크 기업, 뮤직 레이블 등 여러 분야의 투자사 우리의 실험적 활동에 기꺼이 투자한다. 알렉상드르 아르노 티파니 수석 부사장도 그중 한 명이다."

Q. 예술가와 경영자 사이, 독특한 일을 하고 있다.
"아티스트로서 작품을 만들고 메시지를 던지는 일, 조직을 유지하는 일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게 내가 짊어진 짐이다. 어떨 때는 유리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 위험 요소를 줄이고 비즈니스에만 집중하고 싶은 유혹도 생긴다. 흔들릴 때는 우리 팀이 어디에서 왜 출발했는지 돌아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이번 전시를 통해 지난 4년 반을 회고하며 또 그런 기회를 얻게 됐다."
Q. 내년 목표는.
"생존이다."
서혜빈 기자 seo.hye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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