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글돈글] 코로나19에 커진 빈부격차…美, 팬데믹 기간에 누가 부자됐나
흑인·히스패닉, 빚 상환에 그쳐
자가 유무가 자산 격차 갈라
경기 둔화에 인종별 빈부격차 확대될 듯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에 큰 자산 격차를 몰고 왔습니다. 경기 침체로 수많은 기업이 구조조정을 하면서 극빈층에 내몰린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일부는 자본시장에 넘쳐나는 유동성 속에서 암호화폐와 주식 투자로 큰돈을 만졌습니다. 특히 미국 사회는 소득과 인종에 따라 이 같은 차이가 두드러졌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집단이 팬데믹 기간에 많은 부를 얻었을까요? 오늘은 팬데믹이 미국 사회의 각 계층의 주머니 사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코로나19의 명과 암에 대해서 알아보려 합니다.
아시아계 순자산 증가율 43%…흑인·히스패닉 빚 갚는데 바빠
미국의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이 한창이던 2019년부터 2021년 사이 미국의 중위 가구의 순자산은 30% 증가하며 16만6900달러(약 2억1874만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코로나19 기간에 외출 감소로 돈 쓸 기회가 줄어든 데다가, 정부가 1인당 1400달러의 지원금을 비롯해 실업수당 연장 등 다양한 경기 부양책을 펼치면서 지급하면서 가계 소득이 자연스레 늘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 인종 중에서도 특히 백인과 아시아계 가구의 순자산 증가율이 도드라졌습니다. 아시아계 가구의 경우 순자산이 32만900달러를 기록하며 코로나19 확산 이전 대비 4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같은 기간 백인 가구 순자산이 23% 증가한 25만400달러로 집계됐습니다.
반면 히스패닉 가구와 흑인 가구의 상황은 달랐습니다. 같은 기간 집계된 히스패닉 가구와 흑인 가구의 순자산은 각각 4만8700달러와 2만7100달러에 불과했습니다. 이중 히스패닉 가구는 팬데믹 기간에 7가구 중 단 한 가구만 부채를 줄이는 데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나머지 6가구는 이 기간에 자산을 축적하기는커녕 빚만 더 늘렸다는 뜻입니다. 흑인 가구는 4가구 중 한 가구만 부채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자가 유무가 자산 격차 갈라…퇴직연금 유무도 영향
미국 정부가 팬데믹 기간에 막대한 규모의 지원금을 풀었는데도 인종 간 자산 격차가 벌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문가들은 주택 소유 여부가 인종 간 자산 격차를 벌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합니다. 같은 저소득층 내에서도 백인 가구는 흑인 가구에 비해 자산을 21배나 더 많이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차이는 자가 유무에 따라 발생한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팬데믹 기간에 주택 가격이 급등했고 상대적으로 주택 보유 비율이 높은 백인과 아시아인은 자산을 빠르게 불릴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주택은 미국 가계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2021년 기준 미국인의 62%가 자가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중 백인들의 자가 보유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아시아계가 뒤를 이었고 히스패닉계와 흑인 가구는 주택 보유 비율이 저조했습니다.
이에 같은 저소득층일지라도 자가 유무 비율이 높은 백인과 아시아계 가구는 흑인 가구보다 많은 자산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2019년부터 2년간 백인과 아시아계 저소득층 가구는 각각 4700달러와 8900달러의 순자산을 쌓았습니다.
반면 흑인 가구와 히스패닉 가구는 같은 기간 자산을 불리기는커녕 빚만 갚는 데 그쳤습니다. 저소득층 흑인 가구는 2년간 부채를 1만100달러에서 4000달러로 줄였고 히스패닉 가구는 1100달러의 빚을 갚아나가며 팬데믹이 끝났을 시점에서는 부채를 모두 탕감해 순자산 0원을 기록했습니다. 소득 수준이 같은 계층이라 할지라도 자가 유무에 따라 자산 격차가 급격히 벌어진 것입니다.
더욱이 WSJ는 아시아계 가구가 401k와 같은 퇴직연금 보유 비율이 높았던 것도 타인종 대비 팬데믹 기간에 많은 자산을 보유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설명합니다.
美 경기둔화에 가계부채 증가…흑인·히스패닉 살림살이 어려워질 듯
그러나 팬데믹이 종지부를 찍으면서 당분간은 인종과 관계없이 대다수의 미국인이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코로나19 기간에 지급됐던 지원금이 끊긴 데다가 치솟던 임금 상승률도 꺾이면서 가계의 소득이 눈에 띄게 줄고 있습니다. 지난해 미국 가계 소득은 팬데믹 기간 대비 9%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고강도 긴축으로 금리가 뛰면서 빚을 갚지 못하는 이들도 급격히 늘고 있습니다. 올해 3분기 미국의 신용카드 연체율은 8.01%를 기록하면서 서 2011년 이래로 1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이중 장기 연체로 분류되는 90일 이상 연체율은 5.78%로, 전년 동기(3.69%)대비 2.09%포인트나 뛰었습니다. 가계부채는 17조3000억달러를 기록하며 전기 대비 2280억달러가 늘었습니다.
하지만 유동성이 넘치던 시기 빚을 갚기에 바빴던 흑인과 히스패닉은 다른 인종 대비 더 팍팍한 살림살이를 꾸려나가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질병의 위기는 인종과 나이, 성별과 관계없이 모두에게 똑같이 찾아왔지만, 위기를 대비할 자산을 쌓을 기회는 동등하게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견조했던 소비가 꺾이면서 미국의 경기가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만큼, 향후 미국 내 인종 간 빈부격차는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됩니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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