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다

전성필,산업1부 입력 2023. 12. 9.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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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필 산업1부 기자


친구 A가 어느 날 자신의 주식 수익률을 카카오톡 단체방에 공유했다. A는 수천만원의 수익을 냈다고 자랑하며 최고급 외제 차를 현금으로 구매했다고 했다. 2020년 하반기 ‘동학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이 주식 시장에 대거 뛰어들었던 시기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기 부양책이 세계 곳곳에서 쏟아졌고, 주식 시장은 유례없는 호황기를 맞이했다. 주식을 샀더니 돈이 복사되더라는 우스갯소리가 현실이 됐다는 경험담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너도나도 ‘주린이’(주식+어린이)가 되었고, 하루에 수십만~수백만원을 단타 투자로 벌었다는 ‘인증샷’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떠돌았다.

덩달아 ‘포모(FOMO)증후군’이라는 말도 유행이었다. 주식으로 얼마를 벌었다는 주변의 ‘간증’이 많아지자 자신만 뒤처지거나 소외된 것 같은 두려움을 가지는 증상을 겪는 사람들이 늘었다. 친구 B도 A의 말에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봤다고 했다. B는 학창시절 학업에 성실히 임해 서울의 최상위권 명문대학교에 들어갔다.

대학교에서 좋은 학점을 유지했고, 이름만 들으면 모두가 아는 대기업에 들어갔다. B는 직장생활 5년 동안 월급의 대부분을 저축하며 주택 구입 자금을 모았다. 성실하게 일하며 돈을 모으면 언젠가는 내 집 마련에 성공할 거라는 희망으로 직장생활을 버텼다. B는 주변에서 가장 성공한 인물로 통했다.

B는 A가 자신보다 덜 성실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다. A는 지방 2년제 대학을 나와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며 월급 대부분을 ‘주식 한방’을 노리며 투자했다. A가 매번 마이너스 수익을 냈던 터라 B는 A가 한심하다는 감정까지 느꼈다. 그러나 A의 수익 인증 이후 B는 극심한 열등감에 시달렸다. A보다 우위에 있던 자신이 주식 투자를 하지 않았단 이유로 바닥으로 떨어졌고 삶의 궤적 전체가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A에게 자산이 역전되는 모습을 보면서 공황에 빠졌던 것이다.

B는 적금을 깨고 곧바로 주식 투자에 입문했다. A보다 똑똑한 자신이 더 큰 수익을 내서 자존심을 회복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B는 A를(혹은 A가 번 돈이라는 욕망을) 욕망하기 시작했다.

B는 그 시기 자신에게 오던 주식 리딩방 스팸 문자에 관심을 보였다. B로서는 리딩방에서 종목을 추천받으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리딩방의 가입비가 300만원이 훌쩍 넘는데도 B는 선뜻 가입했다. 주식 수익을 며칠 동안 꾸준히 내면 아깝지 않을 거란 판단이었다.

B의 확신이 깨지는 건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B는 “사기를 당했다”는 짧은 말을 단체 카톡방에 남겼다. B가 가입한 리딩방에서 추천해주는 종목은 당일 실시간 변동률이 높은 종목을 무작위로 찍은 것이었다. 리딩방에서 매수 사인이 떨어질 때면 이미 그 종목의 가격이 크게 뛴 상태였다. B는 매번 ‘상투’(주가변동의 폭이 클 때 가장 고가권의 주가 수준)를 잡고 돈을 잃었다. 수년 동안 모은 적금이 단 며칠 만에 사라지더라고 했다.

B는 A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욕망을 실천했던 것일까, A가 번 돈 그 자체를 욕망했던 것일까. 명확하게 구분할 수는 없지만, B의 마음속에 있던 무의식적인 위계가 욕망을 자극했던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이런 B를 보며 나도 욕망을 느꼈다는 점이다. 주식에 뛰어들면 뭘 해도 B보다는 낫다고 위계를 생각했다. 업무 특성상 B보다 기업 정보나 투자 관련 지식을 더 가지고 있으니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나는 A를 욕망하는 B의 욕망을 쉽게 욕망했다. 이후 내 주식계좌는 2년 동안 흐름이 멈췄다. ‘국민주’로 불리는 기업의 ‘9층’ 평단가에서 아직 애타게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다.

최근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유명인을 둘러싼 사기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자 이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미 명예와 부를 쌓은 인물도 자신보다 낫다고 생각한 타인의 욕망을 추구하다 가십거리로 전락했다. 내가 유명인과 한 지점에서 만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를 쉽게 비판할 수 없었다. 타인과 살아가는 한, 타인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가 없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기에 측은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이후 A도 주식 시장이 흔들리면서 빚을 지게 됐다. A와 B 그리고 나, 셋은 모두 욕망에 패배했다.

전성필 산업1부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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