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개발은 경제수익 올리는 기회”
세계 에너지산업 지형이 바뀌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해 에너지 전망 보고서에서 태양광·풍력으로 대표되는 재생에너지가 전례 없는 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2027년에는 석탄을 제치고 세계 최대 발전원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사상 초유의 글로벌 에너지 위기로 화석연료보다 안정적이고 저렴한 재생에너지에 투자가 집중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올해 보고서에선 2030년에 전력 생산 투자의 80%가 재생에너지로 몰리고, 특히 태양광 발전 투자가 50% 이상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토마스 카베르거 재생에너지연구소(REI) 이사회 의장은 이런 급진적 변화가 경제·산업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그는 스웨덴 칼메르스 공과대학 교수이자 2008~2011년 스웨덴 국립에너지청 사무총장을 지낸 에너지 정책 전문가다. 현재 제28회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에 참석하기 위해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머물고 있다.
카베르거 의장은 지난 4일 국민일보와의 온라인 인터뷰에서 “지난 10년간 가장 중요한 발전은 태양광, 풍력, 배터리 기술이 획기적으로 저렴해졌다는 것”이라며 “재생에너지 전기의 단위당 가격이 다른 발전원보다 훨씬 저렴하게 거래되는 국가들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후위기를 피하는 것은 더 이상 값비싼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 아니다”며 “재생에너지를 개발하는 건 환경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고, 곧 경제적 수익을 증대시키는 기회”라고 말했다.
한국은 국가별 기후위기 대응 평가에서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는 ‘기후 후진국’이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21년 기준 7.1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31.3%에 비해 턱없이 낮다. 2030년까지 달성 목표로 세운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1.6%+α다. COP28에서 한국이 ‘세계 재생에너지 발전량 3배 확대’ 협약에 동참했음에도 실질적 노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기 어려운 이유로 좁은 국토, 부족한 일사량과 풍속 등을 꼽는다. 카베르거 의장은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 국가는 태양광과 풍력으로 사회를 지탱하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다만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의 단가를 낮추기 위해선 제도적·산업적 경험이 쌓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은 어떻게 변했나.
“일부 국가에서는 태양광·풍력으로 만든 전기의 메가와트 단위 비용이 화석연료 전기보다 저렴해졌다. 화석연료로 전기를 만들면 연료의 절반 또는 3분의 2 정도가 사라진다. 화석연료 자체에 담긴 에너지 함량으로 따져도 재생에너지가 더 저렴해졌다. 운송과 산업 부문에서 재생에너지 전기가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이유다.”
-한국은 원전 중심 정책을 펴고 있는데.
“풍력이나 태양광이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많은 국가의 석탄·가스·원자력 발전소는 수익성을 잃었고 일부는 문을 닫았다. 1인당 원전 설치 용량이 가장 큰 나라였던 스웨덴에서는 수십년간 원자로 절반이 폐쇄됐다. 이제는 어느 나라에서도 새 원전을 짓고 유지하는 것이 태양광·풍력 발전소를 새로 짓는 것보다 더 비싸다.”
-한국에선 여전히 재생에너지가 비싸다는 인식이 크다.
“재생에너지 전기 요금을 낮추는 건 산업의 학습 과정에 달려 있다. 경험이 많을수록 비용이 절감된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설비를 설치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또 합리적인 개발을 허용하는 규정 등 정책도 중요하다. 이 부분이 성공하려면 제도적으로나 산업적으로나 학습이 필요하다.”
-태양광·풍력은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대형 화력발전소는 부품 하나의 문제로 갑자기 가동을 중단할 수 있다. 반면 태양광·풍력 발전소가 많아지고 발전량이 분산되면 유사시에 손실되는 용량이 적어진다. 몇 개의 대규모 전력 생산 장치에 의존하는 시스템보다 단기적으로 더 안정적이고 신뢰성이 높다.
또 화석연료로 만든 전기는 에너지원의 가격에 따라 전기요금이 달라질 수 있다. 이제는 재생에너지 전기와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합성석유 등 연료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게 재생에너지 전기로 연료를 만들면 장기적으로 전력망이 안정화될 수 있다.”
-지리적 여건이 불리한 국가들은 어떤 정책을 펴야 하나.
“지리적 한계 때문에 재생에너지로 사회를 지탱하지 못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고 본다. 모든 집과 주차장에 패널을 설치하는 것만으로도 일부 도로가 태양광 패널로 덮일 수 있다. 논밭에 풍력 발전기를 설치하면 차지하는 면적이 적어 농업에도 잘 맞는다. 한국은 해상 풍력발전을 이용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매우 좋은 바람 에너지 자원을 가진 섬들이 많다.”
-재생에너지가 빠르게 보급된 국가의 특징이 있다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치적 의지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전기가 다른 에너지원보다 저렴해지면서 이 부분의 중요성은 줄어들었다. 이제는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기보다 (개발을) 허용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다뤄지고 있다. 정부가 재생에너지 개발을 방해하고 싶다면 지연시킬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막지 못할 것이다.”
-그린수소와 블루수소 관련 전망은.
“화석 연료를 수소로 대체하기 위한 수소 생산은 진정한 기회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실현 가능하려면 전기가 저렴해야 하고, 저렴한 전기는 태양광이나 풍력에서 나온다. 따라서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한 그린수소는 태양광과 풍력 발전이 많을 때 생산될 것이다. 화석연료를 이용한 블루수소의 경제성은 믿지 않는다. 탄소포집·저장과 함께 화석연료를 사용하면 추가비용이 든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 비용이 화석연료를 직접 사용하는 것보다 저렴한 상황에서 블루수소가 저렴할 수는 없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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