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의 헌책방] 개그 도전장을 받은 헌책방 주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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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은 조용하고 재미없는 곳이라는 편견이 있다.
이에 지고 싶지 않아서 나 역시 보기와는 달리 개그를 좀 할 줄 아니까 한번 웃겨보라고 받아쳤다.
내가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곧바로 두 번째 개그를 시작했다.
개그맨은 "역시 이런 곳에서 집중 훈련을 한 게 효과가 있었네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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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은 조용하고 재미없는 곳이라는 편견이 있다. 딱히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일단은 주인장인 나 자신이 어딜 봐도 재미있는 구석이라곤 없다. 이를 극복하고자 손님들을 대상으로 몇 번 개그를 시도해봤으나 번번이 차가운 반응만 돌아왔을 뿐이다.
이런 고민을 하는 내게 더욱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건이 얼마 전 있었다.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중년 남자가 거드름을 피우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책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 같아서 나는 찾고 계신 책이 있느냐고 먼저 물었다. 그는 매우 당당하게 책 보러 온 게 아니라고 했다. 그럼 뭘까? 잡상인인데 이렇게 당당할 리는 없고. 그는 미리 연습이라도 한 듯 술술 자기소개를 했다. 소개에 의하면 이 사람은 개그맨으로, 곧 있을 개그 연극 오디션에 참가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한다.
“책방이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재미없는 가게 아니겠습니까? 책방 사장님을 웃길 수 있다면 오디션도 문제 없겠지요.”
상당히 도발적인 손님이다. 이에 지고 싶지 않아서 나 역시 보기와는 달리 개그를 좀 할 줄 아니까 한번 웃겨보라고 받아쳤다. 나는 개그맨을 자극하기 위해 그의 얼굴을 훑어보며 “오디션에 나이 제한은 없나요?” 하고 살짝 비꼬았다. 손님은 오디션 나이 제한에 대해선 말하지 않고 대신 자신이 올해 스물여섯 살이라고만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부분에서 벌써 웃음이 터질 뻔했다. 40대인 나보다도 늙어 보이는데 아직 서른도 안 됐다니! 어쨌든 다시 표정을 가다듬고 준비한 개그를 보여 달라고 했다.
개그 도전자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는 흉내를 냈다. 그는 사뭇 진지한 말투로, “여보세요? 아, 소방서라고요? 네? 우리 집에 불이 났다고요?”라고 한 다음 전화기를 내리고 내게 말했다. “혹시 불 끄는 방법에 관한 책 있나요?” 그런 책은 없다고 하니 다시 전화 통화를 이었다. “불은 그대로 두세요. 책 찾으면 다시 연락드릴게요”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내가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곧바로 두 번째 개그를 시작했다. 속독해 볼 테니 아무 책이나 달라는 거다. 내가 옆에 있는 소설책을 주자 그는 5초 만에 책을 훑어본 다음 다 읽었다며 내게 책을 돌려줬다. 나는 그 책 내용이 뭐냐고 물었다. “너무 빨리 읽어서 내용을 모르겠는데요.”
조금 화가 날 지경이었지만, 일말의 기대감으로 다시 물었다. “그럼 책 제목은 아시나요?” 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본문만 읽었으니 제목은 모르죠”라고 했다. 아, 이대로라면 대한민국의 개그 미래는 그야말로 암흑의 구렁텅이다!
얼마 뒤, 놀랍게도 그는 오디션에 합격했다며 음료수 선물을 들고 헌책방에 다시 찾아왔다. 나는 그저 인사치레로 축하한다고 말했다. 개그맨은 “역시 이런 곳에서 집중 훈련을 한 게 효과가 있었네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나는 이게 칭찬인지 또 다른 도발인지 헛갈려 한참 고민에 빠져야만 했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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