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 이후 말하기도 듣기도 어려워졌다

황명화 2023. 12. 8.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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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재활사의 말 이야기] 신경언어장애 실어증

'언어재활사의 말 이야기'는 15년 넘게 언어재활사로 일하며 경험한 이야기들로, 언어치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쓰는 글입니다. <편집자말>

[황명화 기자]

'어느 날 갑자기 내 말이 사라졌다.'

사실 실어증인 사람은 이렇게 표현할 수도 없겠지만 대신 표현해 보면 이럴 것 같다. 실어증은 정상적인 언어 사용자가 뇌 손상 이후 말-언어 사용에 문제가 생긴 경우를 뜻한다. 흔히 TV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함묵증과는 구분이 필요하며, 함묵증은 심리적 문제에 기인하는 것이 크고 실어증은 뇌 손상에 기인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실어증은 뇌 손상 탓
 
 실어증은 정상적인 언어 사용자가 뇌 손상 이후 말-언어 사용에 문제가 생긴 경우를 뜻한다.
ⓒ elements.envato
 
실어증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말은 비교적 잘 알아듣지만 내 말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보이는 브로카실어증 타입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잘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못 알아듣는 베르니케실어증 타입이다.

물론 각 사람의 언어적 특색이나 변병 부위에 따라 '전 실어증이나 전도성 실어증, 명칭 실어증, 피질하 실어증'도 있다. 오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브로카 타입 실어증과 베르니케 타입 실어증이다.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브로카실어증과 베르니케실어증 둘 중 어떤 형태의 실어증이 삶의 질이나, 살아가는데 더 나은 걸까? 브로카 실어증은 비교적 잘 알아듣지만 대답을 원활하게 못하니 환자 본인은 답답하고, 주변은 편한 상태일 것 같다. 이와 반대로 베르니케실어증은 다른 이의 말은 못 알아듣지만 자기 할 말은 다 하니 환자에게는 더 편한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둘 중 어떤 실어증 형태가 더 낫다는 우위를 가늠할 수는 없다. 둘 다 삶을 지속적으로 영위하는 데 필요한 의사소통은 힘들고, 자신의 상태에 대한 자각이(insight) 생기는 시점에는 양쪽 모두 상처를 받을 테니 말이다. 말로 이런 어려움을 표현할 수 있고 없고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래도 둘 다 말하기가 어려운 건 자명한 문제다. 

살면서 '입만 번지르르하군'이라며 욕하는 사람도 만나고, '왜 저리 말을 안 하는 거야?' 답답한 사람도 만나는데, 앞서 말한 두 실어증도 증세는 이와 유사하다. 그러나 구분되어야 한다. 뇌 손상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발생되는 상황이라는 것.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그래서 언어재활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언어재활치료의 궁극적 목적은 일상으로 복귀해서 아프기 전의 말하기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말하기가 실어증 환자들에게 어려운 일인 만큼, 일상 속에서 타인과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살아가기 위한 의사소통을 하며, 타인의 말을 듣고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언어치료의 의미일 것이다.  

다 큰 어른들에게 "옳지"라니

아이가 처음 말을 배울 때와 실어증 환자들이 말을 배우는 과정은 좀 차이가 있다. 아이들이 말을 배우는 것이 새로 나무를 심는 것이라면, 실어증 환자들은 심겨진 나무들이 꺾이거나 패인 상태이기 때문에 잘 관리해서 다시 나무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상처 있는 상태라서 잘 표현이 안 되고 미숙하더라도, 일단 성장한 나무이므로 생각이나 느낌이 아무것도 없었던 새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상태와는 다른 것이다. 그래서 실어증 환자의 표현의 미숙함으로 단순히 판단해서 안 되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걸 강조하는 건 경험이 많은 나조차도 실수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초기 소아 언어치료에 익숙했던 탓인지 성인 언어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말 습관이 나와서 당황했던 적이 있다. 그건 바로 바른 행동에 대한 사회적 강화 표현인 "옳지!"라는 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랬을까 싶은데, 성인 환자에게 "옳지"라고 습관적으로 말해놓고 혼자서 얼마나 화들짝 놀랐는지 모른다.

성인 실어증 환자는 말만 잘 못 할 뿐이지 감정과 생각은 병 이전의 상태와 유사하다. 마치 아이들을 대하듯이 내가 내뱉은 "옳지"라는 말을 들고 환자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생각하면 죄송하다. 

이는 보호자들도 흔히 하는 실수다. 보호자들 역시 환자의 말하기 상태로 환자의 생각이나 감정 수준을 지레 짐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령, 환자에게 비속어를 섞어 표현하거나 환자들이 알아듣지 못할 거라 짐작하고 환자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할 때, 환자들은(심지어 청각적 이해력이 매우 떨어지는 베르니케 실어증 환자의 경우에도) 힘들어하고 속상해한다. 그런 상황을 목격하면 넌지시 보호자에게 환자의 감정과 생각에 대한 존중을 요청한다. 그제야 아차! 하고 당황하는 보호자들도 있다. 

말하겠다는 용기를 가질 때까지

어쩌면 말하기는 집안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할 때는 별 차이를 모르지만 안 하면 티가 백 배 천 배는 나는 집안일 말이다. 더욱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은 '고립' 그 자체가 될 수도 있다. 브로카 실어증은 좀 더 잘 표현하기 위한, 베르니케 실어증은 좀 더 잘 듣기 위한 치료를 해서 말하기의 균형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렇게 언어치료를 통해 듣고 이해하고 말하는 것이 균형이 맞아질수록 일상생활 수준에서 의사소통이, 말하고 표현하면서 즐기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환자가 치료 중 상황에 맞는 말을 많이 하면서 이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고, 그 피드백이 또 다시 강화가 되어 환자가 아프기 전의 어느 날처럼 다시 말하겠다는 용기를 가지게 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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