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가 주목한 투자사기... 한국도 예외 아니다

김성호 2023. 12. 8.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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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603] <마진 콜: 24시간, 조작된 진실>

[김성호 기자]

인간이 과거로부터 배우는 능력이 없었다면 오늘 누리는 문명과 영광 또한 없었을 것이다. 역사로, 또 문화로, 인간은 과거의 성취와 실패를 새로이 이해한다. 때로는 자랑스러운 일일 때도 없지 않으나, 때로는 참담한 실패를 꺼내어 이야기해야 할 때도 있다. 그로부터 실패의 원인을 찾고, 그를 되풀이 하지 않는 법을 알게 되는 것이다.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부터 촉발된 전 세계적 금융위기는 부동산을 비롯한 경제 전반에 커다란 침체를 불러왔다.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파생상품이 제약 없이 만들어지고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서 시장과 현실이 큰 괴리를 보인 게 원인이었다.

상환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 대출을 통해 주택을 살 수 있도록 했으나 더 이상 부동산 가격이 오르지 못하는 상황과 맞물리며 대출 상환이 연체되기 시작했다. 검증 없이 안정성 높은 상품인 양 거래되던 부동산 대출 관련 파생상품은 2008년 봄 들어 사실상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굴지의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까지 부도를 선언할 만큼 금융시장에 큰 혼란을 초래한 사건이다.

현대 경제가 대대적 실패를 한 사건인 만큼 영화계가 이에 주목한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2013년 마틴 스콜세지의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2015년 애덤 매케이의 <빅쇼트> 등 직간접적으로 금융실패를 소재 삼은 작품이 연달아 제작됐다. 세계 경제를 뒤흔든 거대한 실패 가운데 어떤 원인이 있는지를 탐구하고, 그 안에 자리한 인간의 욕망을 살폈단 측면에서 사회문제를 다루는 예술의 효용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작품이라 평가한다.
 
 <마진 콜: 24시간, 조작된 진실> 포스터
ⓒ 팝 파트너스
 
2008년 금융위기 전날 밤의 이야기

J.C. 챈더의 <마진 콜: 24시간, 조작된 진실>은 이 같은 흐름 가운데 가장 기민하게 움직인 작품이다. 비로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부터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된 2011년 제작된 작품으로, 경제위기 직전 월 스트리트의 상황을 긴박하게 담았다.

이야기는 2008년 어느날 미국 월 스트리트 한 투자금융회사에서 시작된다. 이날 회사 법무팀 직원들이 사무실 곳곳을 다니며 직원들을 조용히 불러낸다. 마치 저승사자처럼 이들에게 불려나간 이들은 퇴직 통보를 받고 회사 메일이며 업무폰 등의 사용이 정지된 채 내몰리듯 건물 밖으로 내보내진다. 리스크 관리 팀장인 에릭(스탠리 투치 분) 또한 통보를 받았다. 중요한 작업인 듯 모니터를 보고 열중하던 그가 짐을 싼 박스를 든 채 건물 앞에 나서기까지는 몇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에릭은 중요한 자료인 듯 작업하던 일이 담긴 USB를 다른 간부들에게 넘겨주려 하지만 누구도 이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는 결국 저를 배웅하러 나온 팀의 막내 직원 피터(재커리 퀸토 분)에게 이를 건네며 '조심하라'는 말을 남긴다.
 
 <마진 콜: 24시간, 조작된 진실> 스틸컷
ⓒ 팝 파트너스
 
정리해고자가 남긴 파일, 세상을 뒤흔들다

그날 밤, 모든 업무가 끝난 뒤 피터는 에릭이 남긴 자료를 열어본다. 한참을 그를 분석하던 피터가 소름이 끼친 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눈을 씻고 모니터를 다시 들여다봐도 결과는 똑같다. 모니터 안엔 회사가 처한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야기는 그로부터 긴박하게 흘러간다. 피터는 제가 발견한 상황을 간부에게 전하고, 그날 새벽 긴급 이사회가 소집된다. 투자부문에서 전설로 불리는 회장 존 털드(제레미 아이언스 분)까지 헬리콥터를 타고 날아온 이사회 자리에서 피터는 회사가 처한 심각한 위기를 보고한다. 가치를 평가하는 회사의 내부 시스템에 심각한 모순이 있고, 지난 몇 주 간 문제가 수면위로 들어나 피해액이 급증하고 있었다는 것, 이대로 다시 시간이 흐르면 회사의 시가총액을 훌쩍 넘어서는 피해가 누적될 것이란 것이다.

그렇다고 이를 어쩔 수도 없는 것이 회사가 거래해온 파생상품을 어디다 팔자니 곧 터질 폭탄을 남에게 주는 꼴이 아닌가. 가지고 있을 수도 없고, 어디다 내다 팔 수도 없는 이 상품에 대하여 털드 회장은 저들이 똥 덩어리와 폭탄을 곁에 두고 있는 꼴이라고 자평한다. 월 스트리트에서 도는 말로는 1조 원의 가치가 있다는 인간이 아닌가, 털드는 그 자리에서 향후 세계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결정을 내린다. 상품을 모두 팔기로 한 것이다.
 
 <마진 콜: 24시간, 조작된 진실> 스틸컷
ⓒ 팝 파트너스
 
돈 놓고 돈 먹기, 자본주의의 민낯을 보이다

그로부터 영화는 '24시간, 조작된 진실'이라는 부제의 의미를 그대로 내보인다. 회사가 향후 문제가 생길 게 분명한 상품을 고객들에게 팔아치우기로 결정하면서 이에 관련된 인간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내는 것이다. 천문학적 금액의 상품을 소문이 나기 전까지 단 몇 시간 안에 팔아치우기 위해선 긴박함과 비밀엄수가 생명일 수밖에 없다. 직원들에게 일 년 연봉을 훌쩍 뛰어넘는 성과급을 약속하며 이를 팔아치울 것을 독려한다.

어떤 이는 제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지만, 어떤 이는 윤리적 갈등 앞에 놓인다. 박살날 것이 분명한 상품을 산다는 건 그에게 파산의 위험을 떠넘기는 일이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오래 거래해온 상대방일수록 쉽게 위험에 노출되고 더 큰 부담을 떠안는 문제가 거듭된다. 스스로의 윤리관을 건드리는 이 같은 결정 아래서 사람들은 '원래 이 판이 돈 놓고 돈 먹는 것 아니냐', '세상은 승자가 지배하는 것'이라는 둥의 자기 합리화하는 이야기를 쏟아낸다.

<마진 콜: 24시간, 조작된 진실>은 기실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가 있는 곳은 어디나 비슷한 문제가 있게 마련이다. 자본주의는 저 옛날 네덜란드 튤립투기사건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이르기까지 과열된 거품이 일시에 빠지며 수많은 투자자를 나락까지 보내는 일을 반복하곤 했다. 혹자는 이것이 자본주의에 내재된 기능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과열된 투자가 시장을 자극하여 산업을 일으키듯이, 반대편에선 한 번씩 거품이 빠지고 투자가 무너지기도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마진 콜: 24시간, 조작된 진실> 스틸컷
ⓒ 팝 파트너스
 
라임사태, 동양사태... 한국도 예외 아냐

그러나 무시되어선 안 되는 진실이 있다. 기업 최상단에서 그럴 듯한 논리 아래 고고하게 결정을 내리는 이들과 달리, 일선에서는 상대를 속이고 문제가 있는 상품을 팔아치우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부도 가능성을 알면서도 그 상품을 허위로 부풀려 팔아치우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일이 금융의 역사에서 반복돼 왔다. 멀리 갈 것 없이 한국에서도 수십만 명이 이와 관련한 피해를 보지 않았나.

코스닥 기업들의 전환 사채(CB)를 편법 거래하면서 부정하게 수익률을 관리해 정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2019년 라임펀드 사태가 그러했고, 또 4만여 명의 피해자를 발생시킨 대규모 사기성 기업어음(CP) 발행 사건인 2014년 동양그룹 사태 또한 그러했다. 둘 모두 피해액이 1조 원을 크게 상회하는 대규모 사건이었음에도 피해구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피땀 흘려 번 돈을 사기에 가까운 상품으로 날려버린 이들 가운데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도 적지 않지만, 언론 또한 그를 제대로 조명하지 않는다. 오로지 피해자들만이 불완전판매냐, 사기냐를 두고 지난한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할리우드가 <마진 콜: 24시간, 조작된 진실> 같은 영화를 통해 이를 소화하는 과정은 그래서 인상적이다. 특히 투자금융회사 간부들이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청소부 아주머니를 가운데 두고서 수백억이 넘는 돈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장면은 자본주의가 내포한 맹점을 시사한다. 실제 사람과 세상을 이롭게 하는 노동과 돈이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지에 대하여, 이들이 아무렇게나 다루는 자본이 누군가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에 대해 오늘의 시민은 더 큰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한류를 위시해 어느 때보다 높아진 한국 문화의 위상에도 실제 사회문제를 다룬 작품이 충실히 제작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은 여러모로 아쉽다. 2018년에야 20년도 더 지난 IMF 금융위기 문제를 다룬 <국가부도의 날>을 만난 한국은, 2023년에 들어서 40년도 더 된 <서울의 봄> 이야기에 환호하고 있다. 이것이 결코 정상은 아니다. 문화예술의 바람직한 태도 또한 아니다. 한국 예술계는, 또 이를 향유하는 시민들은 더욱 기민해져야 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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