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만듭시다" 영국이 내놓은 아이디어…한·미 펄펄 뛰었다 [BOOK]
DMZ의 역사
한모니까 지음
돌베개
한반도의 분단은 냉전(冷戰)의 부산물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강대국의 대결 속에서 한국인에게 강요됐던 비극이다. 1950~53년 한반도를 피로 물들였던 한국전쟁은 냉전시대에 최초로 발생한 열전(熱戰)이자, 냉전 핵심 당사자들이 직‧간접적으로 참전한 국제전이다.
올해 7월 27일이 그 전쟁을 일시 중지한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이었다. 정전협정은 비무장지대(DMZ)로 상징된다. DMZ는 국제 열전의 산물이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조교수이자 한국전과 남북 접경지역의 역사를 중심으로 분단과 냉전, 통일과 평화 문제를 연구해온 지은이는 DMZ의 정확하고도 상세한 과거사를 통해 평화의 미래를 구상한다.
지은이에 따르면 DMZ는 참전국인 영국의 아이디어였다. 미국 다음으로 한반도에 달려온 영국의 내각과 참모부는, 중공군이 참전한 1950년 11월에 확전을 막을 방안의 하나로 이를 제안했다. 북위 40도선 정도에서 진격을 중지하고 완충지대를 만든 다음, 이 지대에 공산군이 재침략을 위해 집결하면 공중폭격으로 분쇄하자는 의견이었다. DMZ 설치안에는 연합군이 만주를 공격할 의도가 없음을 중국에 알려 군사작전을 조기에 마무리하려는 의도도 담겼다.
사실 영국은 역사적으로 DMZ에 익숙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군은 1919년 베르사유 조약에서 패전국 독일의 서부 라인란트를 DMZ로 설정했다. 1936년 나치가 라인란트를 재무장해 현상을 변경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의 기폭제의 하나로 작용했다. 1923년 같은 패전국인 튀르키예에도 DMZ가 설치됐다. 패전국 영토 처분과 군축이라는 현실 문제를 정리하는 지리적 방안의 하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뒤에도 이탈리아-프랑스, 이탈리아-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그리스 사이에 DMZ가 일시 설치됐다. 48~49년 이스라엘 독립전쟁(1차 중동전쟁) 직후 이스라엘이 이집트‧레바논‧요르단‧시리아와 체결한 정전협정에도 군사분계선 설정과 안전지대‧무인지대‧DMZ 설정이 합의됐다.
“비무장지대는 자유 진영의 패배”라고 주장했던 미국과 한국 정부의 반대 등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 1953년 정전협정을 통해 남북이 군사분계선에서 각각 2㎞씩 물러나면서 한반도 DMZ가 탄생했다. 문제는 기간이 짧았던 해외 사례와 달리 한반도에선 70년이 넘은 오늘날까지 분단의 상징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더욱 문제는 말만 비무장지대이지 실질적으론 무장지대가 돼 있다는 점이다. 설치 초기부터 무장군인인 민정경찰 투입, 경계초소(GP) 설치 등으로 긴장이 고조됐다. 1950년대 말부터 60년대 초까지 소련과 중국의 이념‧국경 분쟁을 지켜본 북한은 독자생존력을 확보하기 위해 4대 군사노선을 도입해 땅굴과 갱도식 진지를 구축했다. 지은이는 북한이 전술핵 공격에 대비해 땅굴을 팠다는 주장을 편다.
지은이는 북한이 이때 쌓은 땅굴 노하우를 북베트남에 지원했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밝힌다. 북베트남과 베트콩을 유명하게 했던 터널 전술은 북한이 원조인 셈이다. 군사적 ‘킬러 문제’에 해당하는 이 전술은 오늘날 가자지구에서도 발견된다.
반대로 오늘날 DMZ의 또 다른 상징이 된 철책은 베트남에서 한반도로 수출됐다. 베트남을 남북으로 나눈 북위 17도선에 적용했던 철책을 1967년 주한미군이 남북 충돌 및 북한군·스파이의 침투를 막을 목적으로 따라 설치한 것이다. 1966년 10월 미국의 린든 존슨 대통령의 방한 당시 북한군이 DMZ에 침투한 사건이 도화선 역할을 했다. 베트남과 한반도가 서로 긴장의 노하우를 교환한 셈이다.
또 하나 주요한 것은 오늘날 DMZ가 오랫동안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덕분에 지구상에서 보기 드문 환경보존지가 됐다는 사실이다. 철새가 머물다 가고 독수리를 비롯한 희귀 생물이 오가는 생태계의 보고다. 지은이는 사실 DMZ에선 군사적 감시 효율을 높이는 초목통제 프로그램이 시행됐다고 지적한다. 정기적으로 벌목과 제초제가 시행된 건 물론 67년엔 고엽제 살포, 68년엔 불모지 장기화 시도 등 생태계가 ‘고난’을 겪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런 생태계 수난이 환경에 대한 글로벌적 관심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DMZ에도 사람이 산다. 과거 판문점 정전회담장 옆 마을인 남측의 대성동 ‘자유의 마을’과 북측의 기정리 ‘평화의 마을’이 그것이다. 이 두 마을은 오랫동안 자유와 평화의 쇼윈도로 경쟁해왔다. 지은이는 과시나 이름 붙이기에 의한 자유와 평화가 아니라 제도적이고 실질적인 DMZ의 평화화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한다.
DMZ는 남북 관계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훈풍이 불면 교류와 평화의 장으로 논의되고, 북풍이 몰아치면 긴장과 불안의 살벌한 현장이 됐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70년 역사를 곱씹어 DMZ의 비극을 극복할 지혜를 찾자고 강조한다. 지금까지 DMZ가 남북한 거리두기의 용도로 이용됐다면 앞으로는 상호 다가가기와 평화만들기의 광장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울림을 준다. 부제 '한반도 정전체제와 비무장지대'.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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